한류스타 보다 지금은 꽃게가 좋아
한류스타 보다 지금은 꽃게가 좋아
  • 변인수 기자
  • 승인 2018.11.18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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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진도군 서망항 꽃게 아가씨, 문창현 씨

[현대해양] 꽃게 주산지로 유명한 진도 서망항. 청바지를 입은 젊은 아가씨가 장화를 신고 부둣가를 활보한다. 늘씬한 키, 또렷한 이목구비, 물량장 위에서 패션쇼가 열린 것처럼 걸음이 멋있고 당당하다. 거친 바다, 거친 일을 하는 인부들, 어항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낯선 풍경이다.

배에서 내린 외국인 노동자들이 지나치며 뒤를 돌아본다. TV에서나 볼 법한 멋진 아가씨의 등장이 신기한 모양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이 여성은 진도 서망항 진도수협 위판장 중매인 문창현(29)씨다.

 

‘바다환’, 바다를 품다

서울서 생활하던 그는 3년차 귀어인. 부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왔으니 U턴형 귀어다. 연고 없이 귀어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없었다는 겸손도 갖췄다. 지난해 신문이나 여성잡지에 ‘진도 꽃게 아가씨’로 소개되면서 유명인이 됐다.

그는 어엿한 유통업체의 대표다. 꽃게, 전복을 비롯한 서망항에서 나는 각종 수산물을 사고파는 중매인이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수산물유통업체를 인수해 지난해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업체명은 ‘바다를 품는다’는 뜻의 ‘(주)바다환’.

젊은 여성 CEO라고 얕보면 안된다. 바다환은 서망항 수십 개의 유통업체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연매출액은 40~50억 가량. 입이 ‘떡’ 벌어지는 큰 규모다.

문씨를 인터뷰하겠다고 하자, 어머니가 더 신나 보였다. 딸이 어촌에서 꽃게만 팔기엔 청춘이 너무 아깝다는 어머니. 평생 꽃길만 걸었으면 좋았을 딸이 꽃게와 함께 걷게 됐다며 아쉬움을 털어 놓는다. 꽃길을 걷든, 꽃게를 팔든 이 미인은 꽃과 인연이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 어머니에게 창현씨가 못마땅한 눈치를 보낸다. 모녀지간이기에 가능한 모습이다.

서망항은 꽃게 주산지로 유명한 곳.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25%를 차지한다. 지난해는 역대 생산량 최고 기록을 갱신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올해는 주춤이란다. 공교롭게도 지난해까지 서망항에서 열렸던 꽃게축제가 수산물 축제로 병합되면서 완도읍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돼 아쉬움도 크다.

꽃게잡이 어선들과 운반선들이 들아오면 어항은 활기를 띤다. 40kg 씩 담긴 꽃게 상자가 어획물 운반선에서 부두로 내려지면 위판이 시작된다. 배에서 내린 꽃게는 곧바로 바닷물에 넣어져 살아있는 상태로 위판된다. 그래서 상품의 질도 우수하단다. 서망항 사람들은 꽃게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통발로 잡는 꽃게는 그물로 잡는 꽃게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아 훨씬 달고 맛있습니다.”

일년 중 두 번 제철을 맞는 꽃게는 봄에는 암꽃게, 가을에는 숫꽃게가 유명하다. 봄꽃게는 산란 전이라 알이 차고 내장이 많아서 맛이 좋다. 수놈은 알이 없는 대신 살이 꽉 차 있다는 현지인의 설명이다.

방문 당시 가게는 한산한 편이었다. 작업 중인 꽃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직원 몇 명이 앉아 도란도란 고기를 손질할 따름이었다. 요 며칠간 바람이 몹시 불어 조업이 어려웠단다. 그래선지 어항에 정박 중인 통발어선들이 많다.

원래라면 꽃게 작업으로 쉴 틈이 없어야할 시간이라 애가 타는 그다. 지난해 이맘때면 하루에 40~50가구(한 가구는 50kg)씩 물량을 소화해 냈으나 올해는 30% 수준이라고. 바람 때문에 양식장 작업도 중단돼 전복 출하도 멈췄다.

(주)바다환에서 일하고 있는 10명에 가까운 직원들은 모두 외국인. 러시아나 중국인이다. 젊은 사람이 떠난 어촌에 그 자리를 대신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풍경은 그리 낯설지 않다. 오히려 문 씨처럼 어촌에 돌아오는 젊은이가 훨씬 더 낯선 시절이 됐다.

“한창 톱밥꽃게 포장할 때는 12명 이상, 20명까지 직원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현재는 상주직원 4명에 작업이 있을 때마다 직원을 충원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꽃게가 톱밥과 함께 있는 이유는 신선도 유지 때문이다. 톱밥은 열전도율이 낮아 저장 온도를 낮출 수 있고, 꽃게가 호흡하는데도 지장 없다. 또, 꽃게가 톱밥을 모래로 착각해 잠을 자기 때문에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푹 자고 나면 살도 더 많고 맛도 더 있단다.

이렇게 마트 등에 납품된 톱밥 꽃게는 행사용 상품으로 인기가 좋다.

연애고 결혼이고, 지금은 일·일·일

창현 씨에게 지금 하는 일의 과정을 자세히 물어봤다.

꽃게를 매입하면, 우선 무게별로 선별작업이 시작된다. 좋은 게, 물렁한 꽃게, 죽은 꽃게 등 쓸 수 있는 것, 없는 것으로 분류하고, 이것을 다시 대·중·소, 암컷·수컷, 상·중·하품으로 분류해 그물망에 10키로 단위로 담는다. 이것을 ‘망짓기’라 부른다.

망에 담은 꽃게 들은 오후 5시 즘 들어오는 물차에 실어 판매처로 보내고, 거래처에 그날의 경매·매입단가 및 상차한 물건의 양을 송부한다. 다음날 새벽시장에서 경매를 거친 상품의 출하명세를 수신해서 손익계산을 한다. 마진율은 그때그때 다르다. 시세가 그때그때 달라지고, 거래처마다 판매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꽃게의 주 판매처는 노량진·가락동, 강서 시장 등이다. 이들은 위판으로 팔고, 나머지는 개인 거래처에 공급한다. 냉동 꽃게들은 게장 업체에 납품한다.

경매가 주말에도 있기 때문에 대표직을 맡고 부터는 따로 쉬는 날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지난해 신문과 잡지에 소개된 이후 언론사의 섭외가 쇄도했지만, 꽃게가 사시사철 나고. 꽃게 금어기 때는 오징어 등 다른 어종이 나기 때문에 미뤄둔 인터뷰만 셀 수 없을 정도다.

“바닷가는 쉬는 날이 따로 없어요. 바람이 엄청 불거나 태풍이 오는 날이 쉬는 날입니다.”

문 씨를 보고 싶은 친구들이 오히려 주 5일제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이러다가는 연애도, 시집도 보장할 수 없겠다는 문 씨.

“일하다 스트레스 쌓여서 정말 견디지 못하겠다 싶으면, 아버지에게 일을 맡기고 일주일 정도 훌쩍 떠나기도 했어요.”

완도가 고향인 아버지는 꽃게를 따라 우리나라 곳곳을 누비다 15년 전부터 이곳 진도 서망항에 정착했다. 서망항은 우리나라 꽃게 공급량의 25% 담당하고 있다. 꽃게 시장이 호황일 때는 크게 사업을 확장하기도 했다. 그러다 몇 해 전부터 건강이 나빠지면서 누군가 사업을 이어갈 사람이 필요했다.

오빠들도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 일을 해본 경험이 있었지만, 각기 자신들의 삶이 있었기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2남 2녀 중 셋째인 문 씨가 사업을 이어받았다.

걱정했던 중도매인 자격증은 수협에 신청해 비교적 쉽게 취득했다. 그렇게 문 씨는 빨간 모자 중매인이 됐다.

부모님은 그동안의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문 씨를 돕고 있는 중이다. 문 씨가 고용주인 셈이다. 올해처럼 상황이 나쁠 때는 아버지, 어머니께 ‘열정 페이’로 최소한의 성의만 표시해야 한다.

 

한류스타의 꿈을 뒤로

귀어를 결심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꿈을 놓는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무용을 해왔다는 그녀가 가슴 속에 품은 꿈은 연기자, 배우였다. 그래서 대학시절 연기영화학과로 전공을 옮겼고, 졸업 후에는 극단에서 생활하며 배우의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런데, 극단 생활은 월급은 커녕, 오히려 돈을 내면서 활동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어딜 가나 현실의 벽은 늘 존재했다.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은 있었으나 언제까지나 기댈 수만은 없는 일. 단편 영화에도 출연해 가며, 꿈을 키워 나갔던 문 씨. 타고난 소질이 있어 아이돌 그룹 소속사에서 연습생 과정을 밟기도 했다. 그러나 계약상 문제로 연기에 대한 꿈을 접어야한 했고, 데뷔도 차일피일 미뤄졌다.

서울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문 씨에게 먼저 손을 내민 쪽은 아버지였다.

“보여 지는 일에 종사하던 사람이 어촌에 오고 싶었을까요? 아버지의 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로도 몇 번, 싫다싫다 하다가 귀어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죠.”

예·체능에 대한 꿈은 나이가 들어서도 취미로 가능할 것이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녀도 이곳 어촌이 싫지만은 않았다. 맑은 공기와 시원하게 트인 바다는 서울 생활에 찌든 마음을 정화시켜줬고, 새로운 힘을 주는 원천이 되기도 했다. 명절에 한 번 씩 들를 때마다 서울로 가기 싫은 걸음을 억지로 떼곤 했다.

“여기는 즐길 거리가 없어요 마트도, 영화관도, 술집도 없어요. 이성 만나는 건 하늘의 별따기구요. 그야말로 넓은 바다랑 맑은 공기 밖에는 없죠. 참, 건강하고 건전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판매 다각화를 통한 고부가가치 식품유통업체의 꿈

처음에는 이 일에 적응하는데 무척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적응하게 됐다는 문 씨다.

“처음에는 아침잠이 많아 새벽일 하는 게 힘들었어요. 배들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자다가 일어나서 나가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량이 많을 때는 새벽 1~2시에 일이 끝날 때도 있는데, 그러면 잠을 거의 못자는 것이죠.”

현장일이 너무 바빠 식사 때를 놓치는 경우도 많고, 일단 일 앞에서면 밥생각도 잊어버릴 정도였단다. 작업이 끝나서 씻고 누우면 바로 잠들어 버리는 일과. 딴생각 할 틈이 없어서 오히려 좋았다고.

평소 무용으로 다져진 체력이라 육체적 피로는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경매 용어부터, 어업 용어, 포장재질 용어, 수산물유통 용어 등 전문용어가 벽이었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지만, 이것도 자꾸 하다 보니 눈치껏 알게 되더란다. 생각보다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며 그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고.

문창현 씨는 꿈이 있다. 수산물 유통 중심의 바다환을 고부가가치 식품업체로 발전시키는 것. 사서 판매하는 단순 유통방식에서 가공까지 겸비한 유통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HACCP 인증을 받은 가공공장에서 꽃게장, 전복장 등 가공식품을 만들어 마트나 학교급식으로 납품하겠다는 계획이다. 더 나아가 브랜드화가 되면 금상첨화다.

온라인 판매도 확대할 계획이다. SNS 공동구매도 진행하고 있다. 며칠 진행하면 기간 당 100건 이상 씩 주문이 들어온다. 한번 진행에 500~1,000만원 이상 매출을 올리니 시작 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요즘 1인 가구가 많아요. 게장, 전복장, 문어장에 대한 수요가 높아요. 솔직히 싸지는 않기 때문에 재료를 다 오픈해 버립니다. 그 점이 더 소비자들에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산지직송이라는 장점도 있구요.”

지금까지 부모님 중심의 운영방식은 확실히 안정적이라는 측면에서는 옳다. 그러나 수산물의 생산은 바다, 자연이 하는 일이고, 예측이 어렵다. 올해처럼 생산량이 급감하는 일이 생기면 발전 가능성도 떨어진다.

판매다각화와 유통과정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바다환을 지속 발전,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꼭 실현해 낼 것이라고 다짐하는 그녀다. 바다환은 최근 진도군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서망항 인근에 수산물 가공공장 부지를 확보했다. 성공한 젊은 여성 귀어인의 꿈이 멀어 보이지만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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