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현의 양망일기 ⑨ ‘물고기전쟁’을 아시는가
하동현의 양망일기 ⑨ ‘물고기전쟁’을 아시는가
  • 하동현 작가
  • 승인 2018.11.0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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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류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1, 2차 세계대전이나 한반도 국토분단 남북전쟁 같은 블록버스터급만 있는 게 아니다. 고래싸움에 등 터질 꼴 같은 불안을 야기하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같이 세상에는 벼라 별 다양한 형태의 전쟁과 전투가 존재한다.

원양어선에서의 고기잡이도 전쟁과 다를 바 없었다. 누차 언급하지만 고기를 못 잡는 선장은 전쟁에 패한 장수에 비견되던 시절이었다. 국민들의 단백질 공급을 위해(?) 대포를 장착한 경비정을 따돌리며 도둑고기잡이는 기본이요, 경비정 출현날짜에 대한 고급정보를 캐내는 첩보전에다, 입어수역에서 잡은 어획량 보고를 속이는 심리전까지 경험했던 세대다. 본분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에 앞서 피를 말리는 고역이었다.

9월 초, 뉴스에서 ‘가리비전쟁’이라는 제하의 영국과 프랑스 간 어선들의 충돌사건을 접했다. 혹자는 무지렁이 어민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할지 모르겠으나, 자국의 어족보호라는 거창한 구호에 앞서 생업기반이 흔들리는 어민들의 처절한 몸부림이기에, 나도 감히 ‘전쟁’이라 이름붙인 보도매체들의 표현에 동조하며 관심을 가지고 살펴봤다. 그리고 ‘현대해양’에서 변인수 기자의 ‘자율적 휴어제’와 ‘노르웨이 고등어의 습격’ 같은 심층취재 기사를 다시 읽었다.

‘한일어업협정’의 체결지연과 연계해 만감이 교차한다. 바다는 식량안보차원에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우리의 영토라는 말을 다시 떠올린다.

 

2 명분도 실리도 없는 기상천외한 전쟁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전쟁의 발발 요인에는 정치경제적인 거창한 것들보다 쌍방 간에 격화된 감정이 먼저다.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중미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간에 벌어진 ‘축구전쟁’이 대표적이다. 길게 가지도 못해 100시간 전쟁이라 불리기도 한다.

1970년 개최 될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두 나라 간 벌어진 3차에 걸친 예선전에서 시작된다. 경기에 패한 엘살바도르의 열혈소녀가 권총자살을 하고 시합 때 마다 이어지는 관중들 간의 시비가 도화선이었다. 불법 이민자와 영토문제에다 구겨진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홧김에 상대국 이민자들을 두들겨 패던 동네 다툼이 전쟁으로 단숨에 승격해버렸다.

포퓰리즘에 빠진 두 나라 정치수뇌부들의 행태도 막상막하다. 어쨌거나 국가의 이름과 명운을 걸고 행한 전쟁이기에 시작은 창대했지만 종말은 개꼬리 신세를 면치 못했다.

막상 전쟁이라고 엎어놓고 보니 전비를 ‘삥땅’치는 부패한 군부와 ‘당나라군대’ 같은 오합지졸들 간의 ‘개싸움’이 제대로 될 리도 없었다. 미국이 개입해 중재하면서 5일 만에 양쪽 다 못이기는 척 주저앉아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두 나라가 함께 전쟁의 심각한 후유증으로 망조의 내리막길을 걷는다. 중재한다는 구실로 슬그머니 군대 주둔시키고, 야금야금 이민자들을 침투시켜 경제적인 부를 긁어낸 미국만 국제사회에서 어른 대접을 받으며 폼도 잡고 이익을 챙긴 사례다. 서로의 입장이나 이견을 헤아릴 대화나 협상은 꿈도 못 꿀 형편이던 한심한 전쟁이다.

현역 때부터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폈던 ‘물고기전쟁’을 정리해본다.

먼저 1958년부터 1976년까지 영국과 아이슬란드 간 세 차례에 걸친 이른바 ‘대구 전쟁(Cod war)’이 있다. ‘피시앤칩스’ 주재료인 대구의 막대한 소비를 충당키 위해 영국어선들이 아이슬란드 해역까지 마구잡이식 어획에 나선 탓에 벌어진 무력충돌이다.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에서는 어업이 나라 경제의 9할을 넘게 책임지던, 거의 유일한 밥줄이던 때다. 대구의 황금어장을 멋대로 드나들며 조업하는 외국 어선들의 남획에 골머리를 싸매다가, 1958년 EEZ(배타적 경제수역 개념이 정립 안 된 시절이니 사실은 영유권 정도로 보는 게 맞겠다)를 기존의 3마일에서 4마일로 늘렸다가 12마일로 확대 공포한다.

콧방귀도 안 뀌고 아이슬란드 앞바다에서 보란 듯이 조업을 계속하던 영국이 자국 어선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위협사격을 해대는 경비정에 맞서 대형 전함까지 들이댄다.

고작 경비정 몇 척 정도가 아이슬란드의 전력이 전부일 지경이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됐지만, 대국이랍시고 체면상 영국이 슬그머니 물러서면서 유야무야 되어버린다.

2차 전쟁은 1972년 아이슬란드가 EEZ를 50마일로 확대한다는 선언으로부터 시작된다. 고기잡이로만 연명하는 가난한 흙수저 국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자구책이었다. 50마일 내로 침범하는 외국 어선은 무조건 나포한다 천명하고, 실제로 영국 어선의 그물을 손상시키며 조업을 가로막았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극한전술까지 들고 나왔다.

아이슬란드가 지정한 수역에서만 조업하고 배정된 할당쿼터를 넘기지 않는다는 조건에 영국이 합의했지만, 임시땜빵격인 한시적 조건이라 몇 년도 못가 구속력을 잃어 세 번째 충돌이 일어난다. 외교단절선포는 물론이요 열 받은 아이슬란드 청년들이 영국 대사관을 습격하며 양국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미국과 나토가 중재에 나선다. 아이슬란드를 소련의 진출을 가로막을 전략적 요충지로 은근히 감싸고, 국제적으로 경제수역 개념이 정립되면서 곡절 끝에 아이슬란드에 유리하게 200마일까지 EEZ를 확대하게 된다. 막강한 해군력까지 동원하려 했던 영국은 과욕을 부렸다는 망신에 더해 대구잡이 업계에서 수 만 명의 실업자를 양산하는 굴욕까지 떠안게 되어버렸다. 덩치에 밀리던 아이슬란드가 임전무퇴의 ‘깡다구‘로 내리 3연승하는 위업을 이루어낸 것이다.

이왕 사생결단을 내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정치 논리가 개입되어 이 눈치 저 눈치에 뭉그적거리다가 자원고갈에 어장 황폐화는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닌가.

1995년의 캐나다와 스페인간의 ‘가자미전쟁’도 있다. 뉴펀들랜드(캐나다 동남부, 세인트로랜스만 입구의 섬) 해역 대구와 가자미의 황금어장 ‘그랜드뱅크’에서 유럽어선들의 남획으로 어획량이 급감했다. 수산업 관련 회사들이 줄 도산하는 등 위기에 놓인 캐나다가 치어 남획을 막으
려 망목(網目-그물 코 사이즈)을 넓게 제한하는 엄격한 규정을 내밀었다. 그 와중에도 스페인 어선들이 불법 어구를 사용하자 어선 한 척을 기관총을 난사하며 나포해버리고 스페인은 전함을 급파하며 맞불을 놓는다.

나포지점이 공해상인 이유로 국제여론이 스페인에 유리해지며 억류한 선원들을 석방하고 금전적 보상까지 해주게되지만, 소송과정에 여러 국가들이 개입하고 경제수역 개념이 정립되면서 국제사법재판소는 결국 캐나다에 승소판결을 내린다.

당시 자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업고 이 전쟁 같은 대결과 지난한 소송을 이끌었던 캐나다 해양부장관은, 국가의 자존심을 지켜내며 미스터 ‘터보네이터(가자미 ‘Turbot’과 종결자를 뜻하는 영화 ‘Terminator’의 합성어)’로 칭송받는 인기를 누렸다.

올해 8월, 프랑스와 영국이 ‘가리비(scallop)’ 때문에 한판 맞붙었다. 프랑스가 자국의 영해(12마일)를 침범하거나, 바로 바깥지점에서 가리비를 긁어 담는 영국 어선들에게 화염병을 투척하며 배를 들이받는 광란의 공격을 감행한다. 배들이 파손되어 철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프랑스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해군함대까지 배치시키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가 자원고갈을 막기 위해 지정한 금어기간에도, 길이 15미터 이하 소형어선은 예외로 시기제한을 적용하지않는 영국의 처사에 불만을 품어 일어난 충돌이다. 물속에 떠다니는 어획물에 국적이 어디 있느냐, 영해침범만 아니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영국의 입장이다.

북한 수역에 중국어선들의 입어를 무차별적으로 허가해 1,500 척이 넘는 배들이 싹쓸이 하는 바람에, 회유성 어종인 오징어가 남쪽으로 내려오지도 못해 어획량이 급감하는 우리 형편을 겹쳐보면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간다.

정치권이 개입되어 설왕설래 끝에 합의를 도출하려했지만 실패했단다. 영국측이 소형선들에게도 금어기를 적용 할테니 그에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면서, 고등어 어획 쿼터를 늘여줄 것을 제시했다는데 프랑스 측에는 씨알도 안 먹히는 모양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무슨 개소리냐’ 정도의 반응으로 협상은 파투가 났다.

영국이 내년으로 임박한 ‘블랙시트’ 이후 EU회원국들의 해역에 입어해야 할 규정들을 염두에 두고, 추후 유리한 협정을 위해 무게감이 떨어지는(?) 이번 협상에 미온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2차 대전에 연합국들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함께 이끌던 동지적 관계인 두 나라의 분쟁은, 바로 그 해역에서 경제전쟁에서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3 며칠 전 바다가 거칠어 서귀포에 입항했다는 대형선망 선장 동기의 전화를 받았다. 부두에서 한잔 걸치고 귀선하는 길이라 했다. 북태평양 명태잡이 배 선장에서 물러났다가 죄다 엎어먹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 다시 선망으로 나섰던 친구다.

3년째 한일어업협정이 결렬되어 국민생선이라 일컫는 고등어 어장이 줄어든 상황이라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엉뚱한 어장에서 고기가 많이 잡혀 정신이 없었단다. 물속 일이 반은 하나님 소관이고 많이 잡혀도 안 잡혀도 걱정이지만, 사이즈가 잘고 ‘핫빠리’ 난류성 점고등어 비율도 높은데다가, 기계화, 자동화로 체계적인 생산시스템을 갖춘 사이즈 좋은 노르웨이산 고등어 수입량이 급증해 경쟁력까지 뒤쳐져 안팎곱사등이 신세란다.

일시적인 풍어현상은 차치하고 안정된 어장확보를 위해 ‘받을 것 받고 줄 것은 주며 빨리 협상하자’는 의견과 ‘이참에 파기해버리고 현실에 맞는 경계획정을 다시 정하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단다.

일본이 표면적으로야 연승어선의 불법조업에 대한 불만으로 감축과 동해중간수역 대게어장 교대이용에 대한 이견 같은 것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내면에 숨은 정치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는 한 발짝 더 나간 의견도 있다. 독도의 주권문제를 덧입혀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전략도 숨어있다는 뜻이다.

‘끝장해결’이 아니라 ‘협상’인 한일어업협정은 문자 그대로 어업에 관한 협정일진데, 우리 어선의 EEZ 어장 의존도가 큰 약점을 붙들고, 후쿠시마 인근 해역 수산물 수입금지에 대한 보복성 대응처럼 보이는 경제적인 셈법도 가지고 있을 거라는 말들도 나온다.

안전한 식탁을 위해서 위험한 수산물 수입은 당연히 금지되어야하고 독도를 둘러싼 논쟁은 일고의 가치도 없지만, 영토문제와 산업현장의 논리가 얽힌 복잡한 함수식을 풀어나가는 범정부적인 대응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선배관계자들의 말을 경청해봤다. 기왕에 다 나왔던 말들이라 새로울 것도 없었다. ‘자율적 휴어기’같이 자원관리체계를 강화해야하며, 치어 남획을 포함한 불법어업을 강력히 근절해 의견이 충돌하는 부분에 가시적으로 효과를 내고, 어려움에 처한 업계내부의 피를 짜는 자체 원인분석으로 부실한 척수는 과감히 줄여야 한단다. 이상과 현실에는 괴리가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결국 언젠가는 밀어붙여야 할 일이란 말이다.

당장 연승의 감축이 어렵다면 교대순환제로 우선 입어시키거나, 감축예산을 확보하는 등 합리적인 지원책과 대체어장을 찾고, 관주도의 협상체제에 더해 전문집단인 직능단체들의 민간물밑협상도 병행해 효율적인 결과를 도출해 내야한다는 의견들도 따라붙었다.

이것도 국격에 관계되고 수산인들의 사활이 걸린 총칼 없는 전쟁이라 말 할 수 있을까. 협상이란 내 주장만 목 터져라 외쳐대는 게 아니라, 상대의 의견을 듣고 불만과 요구사항을 취합해 이견을 좁혀나가는 과정이다. 안팎으로 얻어터지기만 하는 ‘쪼다’ 꼴 나기 전에 관의 정책과 민의 협조로 원만한 협상이 조속히 이루어지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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