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청년들, 태평양에 도전하다
히말라야 청년들, 태평양에 도전하다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2.07.03 15: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원양어선에 승선한 셰르파 후손들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지난 5월 중순, 김해공항으로 세 명의 이방인이 입국했다. 20대 청년인 그들의 입국 목적은 북태평양으로 출어하여 꽁치잡이에 나설 한국 원양어선에 승선하기 위해서였다.

 놀라운 것은 그들 세 명 모두 바다와는 거리가 먼 네팔왕국 출신이라는 점. 중앙아시아 황량한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그 나라는 지구상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을 비롯하여 마나슬루며 안나푸르나 등 허다한 설봉(雪峰)이 즐비한 언필칭 세계의 지붕이 아닌가. 따라서 네팔 인이라면 고산 정복에 나선 등산인들에게 길을 안내하거나 짐을 날라다주는 셰르파(Sherpa)를 떠올리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바로 그 고산족 청년들이 바다에 도전하겠다며 한국을 찾아온 것이다.

 선원수첩도 아닌 여권 하나가 고작인 그들 세 명은 김해공항에 내리자마자 외국인 선원수입을 담당하는 인력사(人力社) 직원을 따라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온 다음, 공동어시장 앞 ‘1자 부두’에 정박 중인 500톤급 꽁치잡이 배에 올랐다.

 신규 세 명 선원들은 간단한 면담 절차를 거친 다음 등짝에 ‘101 동해호’라는 선명이 박힌 재킷을 한 벌씩 나누어 받았다. 이로써 세계의 지붕으로부터 온 네팔 청년들은 사상 최초로 선원이 되는 관문을 통과한 셈이 되었다. 160cm를 조금 넘는 작은 체구지만 건장했고, 모두 영어를 잘 구사하고 있었다(인구 2천만이 넘는 네팔에는 몇 종의 영자신문이 발행될 정도로 영어교육이 탄탄하다).

 배에는 선장을 비롯하여 기관장, 통신장, 갑판장 등 10명의 한국인 사관들이 이미 승선해 있었다. 이로써 배에는 모두 13명이 되었다. 하지만 어장에 나가 정상조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스무 명 이상의 선원이 보충되어야 한다. 앞으로 추가될 선원은 모두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필리핀과 베트남 출신들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인도네시아 등 3개국 선원들의 승선은 곧 출항에 들어갈 배가 닻을 끌어올리고 엔진을 건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인도네시아 등 외국인 선원들의 승선이 맨 나중으로 미루어지고 있는 것은 행여 기회를 엿보아 어디로인가 도망치는 일이 잦아서였다. 그들 역시 승선을 전제로 입국하였지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대신 자신들을 받아줄 어느 마땅한 국내 중소기업체의 공장 등지로 숨어 들어가 그곳에서 일하는 게 훨씬 낫다고 여기는 탓이었다. 

 날로 악화되기만 하는 선원부족 사태

 만약 그들 외국에서 수입된 선원들이 없다면 한국의 원양어선들은 벌써 오래 전에 출어를 포기하는 사태에 직면하고 말았을 것이다. 나라 경제사정이 나아지고, 웬만큼 먹고 살만 하니까 한국의 젊은이들이 3D업종의 하나인 원양어선에의 승선을 기피하게 된 게 그 원인이었다.

 한 어선이 정상적인 조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의 정원(定員)이 채워져야 한다. 그래서 각 선사들은 모자라는 선원을 보충하는 방법으로 임금이 저렴한 외국인 선원들을 수입하여 쓰기 시작하였는데, 처음 단체로 승선한 조선족 선원들이 참치잡이 배인 ‘페스카마’ 호에서 조직적으로 반란을 일으켜 선장을 비롯한 한국인 사관들을 모두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후부터는 수입선원을 어느 한 나라에 국한시키지 않고 국적을 분산시켜 다국화(多國化)하는 방법을 채택하게 된 것이었다.

 그 효과는 물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동남아 출신 선원들이 요령을 피우거나 꾀를 부리는 등으로 말썽을 피우기 시작하자 이제 와서는 그 대상국을 바다와 아무 인연도 없는 네팔 청년들에게까지 손을 뻗치게 된 것이었다.

 그들 히말라야 산맥의 셰르파 후손들을 생면부지인 태평양 출어에 가담토록 한 것은 매달 지급되는 고정급(固定給)이라는 당근이었다. 외국인 선원들에게는 보합제(保合制) 대신 일정액의 월급이 지급된다. 가령 승선경력이 10년을 넘는 인도네시아 출신 기관원 웰렘 스테파누스(46세)는 뛰어난 용접기술을 인정받아 월 650달러를 받고 있고, 승선기간이 1∼2년차인 여타 선원들은 300달러 정도씩을 받고 있다. 반면 이번에 첫 승선한 네팔 선원들에게 책정된 초급은 250달러씩이지만, 300달러 남짓한 그 나라 국민소득을 감안하면 큰돈인 셈이다. 따라서 이번에 첫 승선한 네팔 출신 선원들은 한국 원양어선에의 승선만으로도 ‘코리안 드림’을 성취한 셈이고, 그 유혹이 한국 땅에 발을 딛도록 한 동인(動因)이 된 셈이었다.

 네팔 출신 선원들의 꿈도 야무졌다. 매사 의욕적이면서 성실한 자세가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워낙 처음 겪는 환경이니만큼 선상작업이 매끄러울 리 없다. 예를 들어 갑판 양쪽으로 즐비한 집어등(集魚燈)을 고정시키는 작업만 하더라도 10여 미터 길이의 로프를 건사하는 데도 두어 시간씩을 허비하는 형편이니 말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인 선원들은 다그치거나 윽박지르지 않았다. 일단 어장에 나가면 그들이 할 일이라야 잡은 꽁치를 크기대로 선별하여 냉동팬에 나누어 담는 단순작업이 고작이기 때문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는 한국 원양어선의 선원 수급과 관련, 또 하나의 걱정을 하게 된다. 원양어선이 모자라는 일손을 보충하는 방법으로 이제는 멀리 중앙아시아 고산족인 네팔인에게까지 손을 내밀어야 하는 상황에서 과연 향후의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 계제에서 ‘제아무리 열악한 상황이 오더라도 인류가 생존하는 한 어업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원양산업협회 장경남 회장의 말이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한 척의 고깃배가 정상적인 조업을 하기 위해서는 첫째 튼실한 배가 있어야 하고, 다음에는 그 배를 운용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조업을 감당할 일손이 부족하니 도대체 무슨 재주로 배를 운용할 수 있을 것인가.

 선원부족 사태는 비단 원양어선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근해 출어선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상대적으로 덜 고되고 작업환경이 월등하다는 외항선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제는 ‘바다를 정복하는 자가 세계를 제패한다’는 말도, ‘미지의 세계인 바다에 꿈과 희망이 있다’는 말도 모두 공허한 염불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갖가지 유용한 천연자원과 인류식량의 보고인 바다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가령 우리의 젊은 청년들이 바다에 매력을 갖고 해양개척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도록 기초 교육단계에서부터 그 기틀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대두된다. 그 방법으로 지금은 간판조차 없어진 수산계 고등학교의 부활과 일정기간 승선하면 병역의무를 면제토록 하는 등의 특별법 제정이 그것이다. 천혜의 어자원 보고인 3면 바다를 낀 바다의 나라- 한반도에서 국민생선인 고등어나 꽁치를 수입해 먹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상의 가장 기초적 작업인 로프 사리는 일에도 서투르기 짝이 없는 네팔 출신 선원들을 보면서 느낀 심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