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파의 바다인식
향파의 바다인식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18.08.2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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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파 이주홍

[현대해양] 향파가 펼쳐놓은 작품들 속에서 해양인문학적 해석을 펼쳐내려면, 우선 향파가 인식한 바다에 대한 논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가 태어난 고향이 합천이란 점에서, 유년 시절에 바다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것은 자연스럽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15살이 되어서야 바다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으로 드러난다.

내가 진작 이 장자(莊子)의 소요유편(逍遙遊篇)을 읽었더라면 바다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이란 공간개념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사방을 산으로 에워싼 두메고을 합천(陜川)에서 어린 날을 보낸 나는 바다라는 것이 큰 못만큼 밖에 안 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합천에는 잉어가 많이 나기로 유명한 정양(正陽)못이 있다. 그래서 바다라는 것이 아무리 넓다하더라도 그 정양(正陽)못 몇 개쯤이나 되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늘과의 對話者」중에서, 수대학보 75호, 1966년 9월 25일)

유년 시절 향파는 바다의 모습은 육지에서 바라본 물이 담긴 못 몇 개가 합쳐져 있는 공간쯤으로 인식했다. 육지 그것도 산골에 묻혀 살면서,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바다를 인식하는 바를 알 수 있다. 바다가 어찌 못 몇 개의 크기로 설명될 수 있으랴.

향파의 바다 인식은 실제 바다 속에 서게 됨으로써 제대로 된 바다와 만난다.

 

국도(國島)에서 비로소 바다를 인식하다 

내가 바다를 처음 본 것은 열다섯 살 때 인천엘 가서다. 그러나 과학을 하느라 밥을 몇 때씩이나 굶던 때의 기아의 여행이어서 그 훤출히도 넓은 바다는 도리어 내게 고독과 절망과 두려움만 몰아다 주었다. 그러다가 정말 바다다운 바다는 몇해전인가 국도(國島)에 가서 실감할 수가 있었다. 내가 발을 붙이고선 그 섬 이외엔 글자 그대로 일망무제한 대공간! 바다는 영기(靈氣)를 품고서 저 장장한 하늘과 대화 하고 있는 오직 하나만인 생명체인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세월의 증언자 바다! 바다는 어구(漁具)와 산호(珊瑚)의 울안이기 전에 먼저 이 지저분한 육지에 대한 냉엄한 비평자인 것 같게만 생각이 된다.

(「하늘과의 對話者」중에서, 수대학보 75호, 1966년 9월 25일)

향파가 정말 바다다운 바다를 인식하게 된 것은 국도에서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그 국도에서 인식한 바다는 영기를 품고서 저 하늘과 대화하고 있는 오직 하나만인 생명체이다. 그리고 세월의 증언자이며 지저분한 육지에 대한 냉엄한 비평가이다.

이는 어떤 의미로 바다를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전통적으로 인간은 하늘과 땅을 세계인식의 기본적인 인식틀로 여겨왔다. 그러므로 천지인(天地人)이란 삼재사상은 오랜 동안 우리의 문화 속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주의 중심체를 천지(天地)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향파는 바다 한 가운데 위치해 있는 섬의 경험을 통해 천지인의 개념을 벗어나고 있다. 천지인을 넘어 천해 지인(天海地人)의 사유를 하고 있다. 즉, 땅보다 바다가 우선적이며, 바다는 땅을 비판할 수 있는 냉엄한 비평가로서 부각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바다와 하늘을 우주의 중심체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자들의 삶의 모습을 한 편의 시로 노래하고 있어 주목된다.

바람벽 같은 / 바위 새에
새집 같이 / 붙어 있어
열네 집 / 집집마다
고구마만 /먹고
꽃 피면 / 봄이 온가
피를 뿜어 / 동백인데
날 새면 / 미역 따고
또 날 새면 / 홍합 따고
올 이도 / 갈 데도 없이
한바다에서 하늘하고만 사는 / 내 고장 국섬

「( 국도에서」수대학보 12호, 1957년 4월 10일)

* 이 시는 「팔손이 나무 통신- 국섬에 사는 미지의 여인에게」로 개명되어 발표되기도 했다.

 

천해지인(天海地人)의 사유 공간, 바다

향파가 바다를 제대로 인식한 계기를 마련해준 국도는 경상남도 최남단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섬의 왼쪽 위로는 통영의 욕지도가 있고, 오른 쪽에는 매물도가 있다. 바로 앞은 망망대해인 대한해협이다. 임진왜란 때 한 주민이 이곳에서 나는 대나무를 가지고 화살을 만들어 수군과 주민들과 함께 싸워 이겼다고 해서 나라에서 이 섬을 보배라면서 지어준 이름이 국도라고 전한다.

이 섬에서 향파가 사유한 바다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늘 하고만 사는 곳으로 명명될 수 있다. 천지(天地)에 대한 인식은 사라지고 천해(天海)에 대한 사유만 가능하게 한 공간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바다를 통해 천지인의 삼재를 넘어서는 천해지인의 사유를 내보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바다 한 가운데서도 인간의 삶의 일상이 계속되고 있고, 생명의 생성과 소멸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바다는 세월의 증언자가 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삶의 리듬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진행되고 있기에 인위에 의해 부자연스러워지고 더러워진 육지의 삶을 되비춰줄 수 있는 비평적 거울이 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다는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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