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⑥ 대통령을 낳은 작은 섬마을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⑥ 대통령을 낳은 작은 섬마을
  • 김준 박사
  • 승인 2018.08.2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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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현대해양] 한국정치가 요동칠 때, 남북관계가 변곡점을 맞이할 때면 어김없이 정치인들은 목포에서 배를 탄다. 통과의례처럼 찾는 곳,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하의도, 작은 어촌 후광리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만나 ‘판문점 선언’을 할 때도 그랬다. 김대중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버지 때문이다.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이 살아오신 아버지였지만 늘 ‘선생’이라 불렀고, 그리고 최고 ‘연설가’라고 기억했다.

말끝에는 직접 연설을 들었다고 자랑하셨다. 그 나이가 되어 아이 손을 잡고 딱 한 번 아버지가 자랑하는 그 대통령의 연설을 들었다. 비록 그 선거에서는 졌지만 아버지 말씀 이 진실이라는 것은 확인했다.

‘종전선언’이 언론에 심심찮게 언급되는 어느 여름날, 목포항에서 하의도로 가는 배에 올랐다. 하의면은 능산리, 대리, 어은리, 오림리, 옥도리, 웅곡리, 후광리로 나뉜다. 두 어시간만에 여객선이 닿은 곳은 면사무소가 있는 웅곡리다.

이곳을 기준으로 남쪽으로 신의면 상하태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오림리와 어은리가, 북쪽에 후광리가 자리해 있다. 그 사이에 대리가 있다. 능산리와 옥도리는 능산도와 옥도라는 따로 떨어진 섬이다.


‘갯가’에서 태어난 큰 인물

곧바로 후광리로 항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우리나라 제 15대 대통령 김대중이 태어난 곳이다. 생가는 갯벌을 사이에 두고 가까운 개도에서 시작해 저도, 간암도, 문병도, 장병도가 둘러싸고 있다. 갯밭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 너머로 도초도, 비금도, 안좌도, 장산도가 둘러싸고 있다. 후광리는 갯벌로 둘러싸인 섬 속에 섬이었다. 원을 쌓아 물길을 막고, 논과 염전을 조성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후광리 너머 소포리 뒷들과 역구미도 모두 원을 막아 만든 논과 염전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는 후광리에서도 ‘작은마을’인 원후광이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목포북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생가는 헐리고 집터는 마늘밭으로 변한 것을 문중과 독지가들이 중심이 되어 1999년 생가 6칸으로 안채와 창고 1동, 부속건물 등을 복원했다. 당시 생가가 복원되었지만 그 흔한 영상물과 기록들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 하의3농민운동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

지금도 주말이면 제법 사람들이 찾지만 상주하며 안내해 주는 사람이 없다. 겨우 차가 한 대 지나갈 정도로 좁던 길은 넓혀졌고 DJ의 정치역정을 기록한 사진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후광리는 큰 마을이다. 그곳에는 끝없는 수평선도, 푸른 바다도 없다. 질퍽한 갯벌과 눅눅한 갯바람 그리고 소금밭만 있을 뿐이다. 마을을 찾아가던 날도 그랬다. 10여 년 전과 다른 점이라면 겨우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었던 길이 2차선 포장도로가 뚫린 정도다.

하의도는 소금밭이 많았다. 특히 후광리는 근대염전이 만들어지기 이전 ‘화렴’이라 부르는 소금을 만들었던 옛날 소금밭이 있던 곳이다. 대통령 생가 앞에 있는 염전들은 모두 화렴을 만들었던 곳이다.

화염은 자염이라고 하지만 주민들은 ‘활염’이라 부른다. 갯벌을 일궈 짠물을 만들고, 짠물을 가마솥에 넣어 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얻는 전통방식이다. 이런 전통소금은 갯벌이 발달한 지중해 연안, 동남아, 그리고 가까운 중국과 일본에서도 널리 행해졌던 제염법이다.

한 때 후광리에 자염터와 가마가 복원·전시되기도 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관리할 사람이 없고, 터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그렇지 않아도 볼거리가 없다고 야단이면서 있던 것은 없애고, 큰 예산을 들여 해양테마파크라며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근본은 없애고 새로운 것만 찾는 세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갯벌을 막아 논을 만들다

하의도 큰 들판은 모두 갯벌을 막아서 조성한 곳이다. 산을 개간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바닷물을 막아 갯벌을 논으로 만드는 일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지금처럼 흙과 돌을 파고 실어 나르는 중장비가 있을 리 없었으니 등에 지고 머리에 이어 날랐을 것이다.

그냥 오가는 것도 힘든 갯벌인데, 논 한 뙈기 소금밭 한 뙈기가 그렇게 마련되었다. 그 땅이 목숨보다 소중하고 귀했을 것이다. 농사지을 땅만 있으면 먹고 살 수 있었기에 내 땅을 마련하는 것이 소원 중에 소원이었다.

뻘섬 봉도로 가는 길 오른쪽에 남자들 불알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누군가 오줌을 싸다가 급하게 도망가느라 놓고 갔다던가. 아들을 원하는 어머니들은 바위를 보고 아침저녁으로 치성을 드렸다. 영험한 바위다.

시골에는 하나쯤은 꼭 있는 이야기지만, 고향사람들은 붕알바위 이야기만 나오면 밤새는 줄 모른다. 그 바위가 한때 ‘양세바위’로도 불렸다. 그 내력을 쫓아가면 ‘하의도농민항쟁’으로 이어진다. 그 이야기는 대리 ‘하의3도농민운동 기념관’에서 풀어볼 수 있다.

▲ 하의3도 농민항쟁의 상징물이 된 양세바위

발단은 선조의 딸 정명공주에게 주어진 20결 절수지가 남편 홍씨 집으로 넘어가면서 무려 일곱 곱절에 이르는 땅으로 둔갑했다. 주민들은 이제 홍씨 집안과 조정 두 곳에 세금을 바쳐야 했다.

일제강점기에 그 땅은 권력과 자본을 쥔 은행장과 갑부 손을 거쳐 일본지주에게 넘어갔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 아래에 신한공사라는 곳으로 이전되었다. 해방이 농민들에게 자기 땅을 갖는 해방이 아니었다. 이에 오림리를 중심으로 대리와 웅곡리 주민들이 소작쟁의를 주도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소작쟁의는 토지탈환운동으로 시작되어 항일민족운동과 사회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오림리 젊은이들이 큰 희생을 치렀다. 심지어 ‘공산도배의 책동’이라는 연좌에 묶여 후손들도 피해를 입었다.

이 과정에 오림리 붕알바위가 ‘일토양세’ 저항을 상징하는 ‘양세바위’로 불렸던 것이다. 하의3도 농민항쟁은 1950년대 중반이 문제의 땅을 농민에게 적산불하로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의3도 주민들의 농지탈환운동을 기념해 2009년 대리초등학교 자리에 ‘하의3도농민운동기념관’을 개관했다.

개관식이 있던 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참석했다. 이어 덕봉서당과 큰바위얼굴이라 스토리텔링한 죽도에 들려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 바위가 하의도 여행객들이 꼭 찾아 사진을 찍는 장소가 되었다.

남구지부터 큰바위얼굴까지 해수욕장과 해식애가 아름다운 해안도로로 이어져 있다. 아직 포장이 되지 않아 더 정겹다. 멀리 우이도가 보이고 가깝게는 신도와 대야도와 능산도 등 크고 작은 섬이 이어져 있다. 이들 사이로 지는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 하의도 염전

피섬지역 일주도로 옆에 있는 죽도의 남쪽에 해식애의 모양이 신기하게 사람얼굴을 닮았다. 그런데 죽도 전체를 보니 머리에 털과 발톱 그리고 꼬리까지 영락없이 사자모양이다. 바위만 보면 사람 얼굴이지만 섬을 보면 사자얼굴이다.

죽도 주변에서 나는 돌미역, 전복이 유명하다. DJ는 이곳을방문 하고 몇 달 후 모든 것을 정리했다는 듯이 영면했다. 내 땅에다 제대로 쌀농사를 지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사람들, 그 땅이 농민들 속만큼이나 타들어간다. 소금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소금 값이 작년에 이어 반 토막이다. 몇년은 두고두고 먹어도 남을 소금 한 가마니가 커피 반잔 값이다.

하의도와 상하태도는 작년에 다리로 연결되었다. 그 덕에 여행객들이 들어오면 후광리와 농민운동기념관 그리고 큰 바위얼굴을 거쳐 신의면 소금밭을 돌아본다. 하의도와 상하태도 여행코스다. 이젠 섬도 어촌도 여행자들이 지켜야할 때다.

소금 한 가마니 주문하는 것으로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있다. 주변에 갯벌천일염을 선물하고 소금밭의 가치를 알려준다면 멋진 여행자로서 자격이 충분하다.

 

Profile 김준 박사

어촌사회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고, 지속가능한 어촌과 어업, 주민이 행복한 섬마을과 지속가능한 섬살이에 관심을 갖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섬정책, 어촌정책, 지역관광, 지역문화 정책을 마련하는 일을 하고 있다. 쓴 책으로 섬살이, 섬문화답사기, 어촌사회학, 바다맛기행, 어떤 소금을 먹을까, 물고기가 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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