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항해·통신 장비시장 해외업체가 장악
선박 항해·통신 장비시장 해외업체가 장악
  • 최정훈 기자
  • 승인 2018.08.1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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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 레이더도 제대로 못 만들어...e-Navigation 선점에 차질

[현대해양 최정훈 기자] 지난달 우리나라는 7년 전 중국에 빼앗긴 조선업 1위 자리를 재탈환 했다.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며 중국과 일본이 앞 다퉈 글로벌 조선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지만 고부가가치 선박에 강점이 있는 우리나라가 당분간 우세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를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핵심 장비들은 외국기업들이 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선박의 중추신경이라고 할 수 있는 항해·통신장비에서 일본, 유럽, 미국이 시장을 장악했다는 사실은 업계가 감추고 싶은 대목이다. 앞으로 초고속해상통신망, 자율운항선박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겉만 번지르르 한선박을 건조하는데에서 나아가 소프트웨어격인 항해통신장비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항해실습 중인 경상대 해양과학대 학생들

단순장비만 국산, 고급장비는 외제

선박 핵심부인 선교(Bridge)는 선내 곳곳을 감시·관리·조종할 수 있고 항해통신기기와 각종 센서를 이용해 외부와 정보를 수집·활용하는 컨트롤타워이다. 그런데 국내 조선업계가 강점이 있는 고부가가치 선박의 선교 항해통신장비도 거의 외국제품들로 채워져 있다.

현대중공업 10년차 시운전팀 관계자는 “주로 해양플랜트 선박에 탑재되는 동적위치유지체계(Dynamic positioning System)는 노르웨이 콩스버그(Kongsberg) 같은 글로벌 조선기자재 전문기업의 장비들이 대부분이다”며, “그에 따른 수리·관리 등의 서비스도 독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관계자에 따르면 LNG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에 장착되는 레이더, 위성통신기, 전자해도(ECDIS) 등 50%가 해외장비들이 장악한 상태다. 국내 조선소에서 선박을 건조하더라도 여전히 선주들은 검증된 항해통신장비를 장착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어선 레이더도 못 만들어

9,000여척에 그치는 국적 상선과 비교해 6만6,000여척에 이르는 거대한 국내 어선장비시장은 어떠할까? 어선 선교의 장비는 크게 어군탐지기, 레이더, 통신기로 나눠진다. 우리나라 GPS, 통신장비들은 대부분 어선에 안착됐지만 고급기능이라 할 수 있는 어군탐지기, 레이더에서는 국산장비를 찾아보기 힘들다.

해남에 위치한 어선조선소에 근무하는 현장감독자는 “20년 넘게 어선선교 건조작업을 하면서 통신장비는 삼영ENC, 해양오릭스 등 국내 장비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레이더, 어군탐지기는 일본제품이 대다수고 그 외에 외국장비를 종종 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국내 레이더 기술이 외국 수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KOMERI, 원장 공길영)관계자는 “선박에 가장 많이 쓰이는 레이더도 국내기술 수준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며, “우리나라에 레이더를 만드는 업체가 있지만 대부분 육상용으로 제작하고 있다”고 밝혔다. 변화무쌍한 해상 상황에서 활용할 레이더 개발에 육상의 그것보다 상당한 투자가 필요한데 영세한 장비업체들은 수 억원이 들어가는 기술개발에 엄두가 안 나는 실정이다.

일본의 JRC, Pruno와 같은 항해통신장비 업체들은 이미 1970년대부터 레이더 개발에 집중해 현재 가장 정교한 수준의 기술을 보유했다는 평이며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삼영ENC 내부협력(IR)부서 관계자는 “레이더 기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물표 추적 플로팅 기술(Automatic Radar Plotting Aid)도 일본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며 “기술 R&D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업체는 많지 않다”고 밝혔다.

몇몇 국내업체들이 레이더 장비를 국내시장에 내놨지만 어민들의 수요가 낮아 경쟁력을 상실했다. 국내 어군탐지기도 국내시장에서 인지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 전언이다. 인천수산기술지원센터 산하 어선이동수리소에 근무하는 작업자는 “국내 어군탐지기는 외제에 비해 성능이 안 좋다는 평이다”며 “국산제품은 소규모 어선에서 종종 볼 수 있고 규모가 있는 어선에서는 대부분 일본제를 쓰고 있다”라고 밝혔다.

국내 업체 중에서는 삼영ENC와 해양오릭스는 어군탐지기를 선보여 업계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국산장비가 어획의 성패를 좌우하는 물고기 탐색을 제대로 해줄지에 대해 어민들은 여전히 미온적인 반응이다.

▲ 일본 제 레이더를 점검중인 엔지니어

통신장비에도 불신의 눈초리

한편, 국내 어선시장을 석권한 통신장치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업체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전국의 2톤 이상 어선에 설치된 위치발신장치(V-pass)때문이다. 해상사고의 80%에 육박하는 어선들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기 위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해양수산부가 총 350억원을 투입해 어선 6만6,000척에 V-pass를 설치했다.

하지만 초기부터 잦은 고장으로 선원들의 불평이 나돌더니 실제 사고발생시 구조신호가 먹통이 되는 중대한 결함들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어민들의 신뢰는 끝을 모르고 추락했다. V-pass 설치사업이 4차까지 진행되는 동안 1, 2차 사업 업체들의 도산으로 A/S가 되지 않는 일도 발생했다.

목포의 어선에서 근무하는 한 선원는 “해상에서 V-pass 스스로 신호를 간헐적으로 잡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때, 해경은 어민들이 고의로 전원을 차단하는 것으로 여겨 잦은 실랑이가 벌어진다”며, “실제로 사고 발생했을 때 V-pass 내 자동위치발신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지도 신뢰할수 없다”고 말했다. 또다시 어민들은 국산장비의 수준을 체감한 대목이다.

FMI(Future market insight) 리서치 기관은 해상전자장비 관련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어선 해상전자장비 시장규모가 2018년 9억6,000만 달러에서 2028년 19억 달러로 확대된다고 밝혔다. 특히, 해상통신장비는 비단 어선뿐 아니라 레져보트, 요트, 함정까지 내다볼 수 있는 시장이다. 자국어민들도 외면하는 제품으로 국내업체가 세계시장에 발을 내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부정적인 전망이 강하다.

 

껍데기만 성장한 조선업

1970년대부터 조선산업이 정부의 주요 육성산업으로 채택되면서 현대를 시작으로 삼성, 대우가 조선업에 뛰어 들었다. 지난 40년간 조선업은 성장주의라는 시대적인 분위기를 타고 빠른 속도로 성장을 거듭해 세계 최정상에 올랐지만 정부와 업계는 외형 부풀리기에 혈안이 됐지 조선기자재산업은 등한시 했다.

이현철 한국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본부장은 “조선산업이 태동부터 조선에 초점을 맞췄지,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기자재를 주목하지 않았다”며, “조선업이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굴지의 기반산업으로 성장는 동안 조선기자재 산업은 후방에서 각자도생해야 했다”고 밝혔다.

1971년 삼양무선공업으로 시작된 사라콤은 국내 조선업과 함께 성장해 세계 4대 해양통신장비업체로 비약적으로 성장한 사례가 있었다. 2000년에는 조선해양 IT업체로는 처음으로 코스닥에 상장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부도로 없
어졌다.

▲ 통신기로 상대 선박과 교신 중인 항해사


국제인증 넘어야할 산

FMI 리서치 기관는 글로벌 해상전자장비 시장이 2018년, 41억 달러에서 2028년, 77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항해통신장비에는 위성항법장치(GPS), 단파통신장치(VHF), 중파고주파통신장치(MF/HF), 레이더, 자동항해장비(Autopilot) 등 다양한 제품군이 있지만 우리 제품에 대한 글로벌 선주들의 인지도는 전무하다.

2010년대 세계 조선소 10위권 안에 7개 조선소가 국내에 있었지만 국내 해상전자장비 업체들은 이와 같은 기회 에 시장을 적극 활용하지 못했다. 국내 기자재 업체들은 국내 조선소 납품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해 글로벌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부산 소재의 해상전자장비 업체 종사자는 “어선이든 상선이든 신조는 거의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며, “중동, 아시아, 유럽 수출에 생존이 달렸다”고 밝혔다. 국내업체들은 최근까지 중국 소규모 어선 등에 장비를 보급하며 어느 정도 선전을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서도 자국 내 장비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어 이 시장마저도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그는 “이전에는 무선통신, 항해용기기에 대한 ‘ISO 인증’ 정도 받으면 문제가 없었지만 현재는 각국 선급 인증을 요구하는 선사들이 많다”고 밝혔다. 입항국가에서 항해통신장비에 대해 공인된 인증을 요구하고 있어 업체들이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획득해야할 인증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머스크, MSC 등 유럽 선주들의 시선을 끌려면 유럽 MED(Marine Equipment Directive)인증은 필수인데 취득하기 까다롭고 비용도 상당한데다 획득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는 “대부분 업체들이 영세하고 인증취득에 상당한 투자가 부담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며, “정부 주도로 종합적인 인증센터를 만들어 업체들의 판로를 적극적으로 개척하는데 지원해 줄 것”을 제안했다.


항해통신장비 경쟁력이 곧 e-Navigation 선점

최근엔 e-Navigation이 화두다.

음성교신과 항해사의 눈으로 항해하던 기존의 선박항해방식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e-Navigation이란 선박운항관리 기술에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육상과 선박 간에 실시간 해양안전정보 전송이 가능해지는 서비스 형태를 말한다.

도덕희 한국해양대학교 교수는 “초고속 테이터 통신망이 해상에 구축되면 장비들이 실시간 위험정보를 수집, 업데이트, 관리가 가능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게 된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해상에 고립된 항해사들이 통신기기를 통해 선박항해정보들을 관제소(VTS)에 보고하고, 입출항시 선박 상태를 수속서류에 기입해 당국에 제출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해상에서 초고속 데이터통신망 시대가 열리면 실시간 항해정보들이 자동으로 전송돼 항해사는 안전운항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MF·HF·VHF 대역 및 위성을 통한 장거리 음성통신 위주의 방식에서 데이터, E-mail까지 송수신 할 수 있는광대역 디지털 무선통신이 해상에서 전개된다.

해양수산부(장관 김영춘)는 지난 2015년 7월 e-Navigation전략이행계획을 발표하면서 “e-Navigation 국산화를 추진하고 ICT를 융·복합한 항해통신장비의 상용화 및 기술개발을 지원해 나가겠다”며, “세계가 앞 다퉈 e-Navigation 구축에 집중하고 있어 국내 기업의 세계시장 진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해상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 공유가 이뤄지면 자율운항선박 시장에서도 우위을 선점할 수 있다. 무인선을 원격으로 조종되기 위해 보안, 제도, 보험 등 풀어야할 문제들이 산적해있지만 e-Navigation 구축이 전초적 단계다.

이현철 한국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본부장은 앞으로 펼쳐질 e-Navigation과 자율운항선박 시장에서 국내 항해통신장비 업체들의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율운항 선박이나 e-Navigation은 하루아침에이뤄지지 않는다. 그전에 기반기술을 탄탄하게 다지고 실용화 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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