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상장제는 수산물 유통의 질서
의무상장제는 수산물 유통의 질서
  • 정만화 수협중앙회 상무
  • 승인 2018.08.01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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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판수수료 지속적으로 낮춰 생산어민의 경제적 부담 덜어줘야

[현대해양] 수산업은 바다라는 공유지에서 유용수산자원 획득을 위해 이뤄지는 경제활동이다. 지속 가능한 수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산자원의 생산과 유통을 어떻게 제도화 할 것인가가 주요 쟁점이다.

의무상장제가 탄생하게 된 계기는 수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경제적 수탈을 일삼는 전근대적 상업자본가인 수산물 객주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이들 객주는 고리대금으로 수산물의 유통과 수산금융을 장악해 어민을 착취했다. 수협의 의무는 이러한 중간상인으로서의 객주의 배제였다.

객주를 배제하기 위해서는 객주의 자금을 수협이 공급해야 했다. 수협중앙회가 조합에 자금을 지원해 어민이 조합 위판장에 위탁하는 수산물에 대한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해야 객주세력의 부당한 횡포를 근절할 수 있었다. 따라서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일선조합에 위판장을 건립하는 것이었다.

어획물 및 그 제품의 양륙 매매에 관한 제한 또는 금지는 유통질서의 통제, 불법 어획물 거래의 단속 및 방지를 위한 목적 외에 투기상인의 농락에 가격이 조작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의무상장제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객주의 횡포를 물리친 의무상장제

판매장소 지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협의 투쟁은 1974년부터 4개년에 걸쳐 진행됐다. 완도수협, 진도수협, 해남수협, 신안수협이 공동으로 대처해 목포수산청과시장주식회사와 처절한 법정 투쟁을 벌였다. 목포항을 중심으로 한 상인객주들은 서남해안의 양식어민들을 대상으로 어떤 간섭이나 저항 없이 해마다 많은 상업이윤을 취해오고 있었다.

이에 수협중앙회와 목포수협, 신안수협이 공동으로 1972년에 목포공판장을 개설, 위판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자 객주상인세력들은 목포수산청과시장으로 직결해 농수산물도매시장법과 목포시가 허가해준 허가내용 및 자체업무규정에 따라 이 지방산 건해태와 미역 등을 수매할 수 있다며 어민들로부터 수산물을 직접 수매했다.

수협은 수산자원보호령 제19조 및 제21조의 규정에 따라 생산어민들로부터 직접 매입하는 것을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수협 직원이 자기들이 김을 사는 것을 부당하게 저지한다고 고발해 완도수협 4명이 벌금형, 5명은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뼈아픈 사실도 있다. 뒤에 대법원은 건해태의 판매장소가 지정고시됐으므로 목포수산청과 측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수산자원보호령과 농안법 상의 규정이 상충되는 것은 두 법률이 서로 다른 취지로 제정됐기 때문이다.

 

의무상장제는 공유재를 대하는 자세 

의무상장제도는 ‘행정규제의 완화’라는 명목으로 충분한 심의, 토론 없이 어획물의 자유판매품목을 3차에 거쳐점차적으로 확대하다가 1997년 9월 1일을 기점으로 완전자유판매제로 바뀌었다.

완전 자유판매제, 혹은 임의상장제는 조합원의 자유로운 선택의사에 따라 조합에 위탁을 하거나 상인에게 직접 파는 것이다. 경쟁의 원리에서 보면 타당성이 있으나 이는 사유재에 적합한 제도이다. 의무상장제도의 의미와 내용을 ‘규제’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의무상장제 시행 당시에는 객주 배제에 그 의미가 있었다면, 지금은 △수산자원 보호 △원산지 증명 △방사능과 항생제 등의 식품안전검사 △TAC(총허용어획량) 관리 △수산통계 기초자료 제공 등 공유재 유통의 새로운 질서를 위해 필요하다.

최근에 유통개혁의 불씨를 되살리겠다는 민물장어양식수협 김성대 조합장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의지로 ‘수산물 유통의 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7조의 2(매매장소 제한 수산물)에 처음으로 뱀장어가 지정됐다. 이는 의무상장제를 재도입하기 위해 헌신한 수산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역사’였다.

수산업법은 수산물이 공유재이기 때문에 규제의 성격을 띠고 있는 법이다. 수협의 위판장은 수산자원보호를 위한 체포금지 어종, 금어기, 체장제한 등 규제를 감시비용 없이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동시에 수산통계 등을 처리하는 종합성적표이다.

정부는 어민의 조업을 위해 어선건조자금, 면세유류, 정책보험, 어업통신, 영어자금, 위판장의 건립뿐만 아니라 시설 개·보수, 현대화 자금까지 지원하면서도 임의상장제 도입으로 위판장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공유재에 대한 적합한 규제 감시를 포기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과거의 의무상장제를 시대정신에 맞게 계통조직 간에 이뤄지는 판매제도, 즉 생산어민과 수협의 자율적 약속을 규범화한 새로운 법질서로 만들어야 한다(필자는 이를 ‘계통판매제’라 부르고 싶다). 계통판매제의 도입은 지속 가능한 수산업을 위한 수산자원의 생산과 유통을 제도화 하는 순기능을 할 것이다. 물론 계통판매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려면 수협의 결단과 어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먼저, 수협은 어민을 위해 영어자금을 확대 공급하고 어선담보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생산자가 상인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또 위판수수료를 지속적으로 낮춰 생산어민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줘야 하며, 수수료 중 일부는 바다살리기 기금 등으로 적립해 수산자원 조성에 수협이 자율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수산물은 후손에게 물려줄 인류의 공동재산이기 때문이다.

PROFILE 정만화 수협중앙회 상무

정만화 상무는 부경대학교 수산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부터 수협중앙회에서 회장 비서실장, 연수원장, 감사실장, 상호금융부장,기획관리부장, 조합감사실장, 수산경제연구원장, 중국 위해수협국제무역유한공사 대표 등 요직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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