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논리, 지역의 철학
도시의 논리, 지역의 철학
  • 이준희 성균관대 영상학과 교수
  • 승인 2018.08.0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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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희 성균관대 영상학과 교수

[현대해양] 수 년 전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고군산군도의 ‘선유도’에서 민박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선유도’를 잇는 다리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신시도’는 이미 새만금 방조제를 통해 육지와 연결된 상태였다. 

새만금을 왕복하는 중간에 자전거를 타고 신시도에 들렀고, ‘선유도’에는 군산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같은 지역인데 육지의 정서와 섬의 정서가 동시에 존재하는 흥미로운 곳이었다.

개인적인 인상이지만 ‘신시도’와 ‘선유도’의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신시도에서는 이미 도시의 논리다 싶은 효율성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서도 공간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선유도’, ‘무녀도’ 등 아직 섬의 정서를 가진 곳들의 분위기는 달랐다. 엄밀히 말하자면 각종 식당과 숙박업소에서 나온 호객행위로 북적이던 선착장에서는 도시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반에 나머지 지역에서는 뭔가 거기만의 독특한 색과 맛 그리고 향기가 살아있었다.

지역에 다리가 놓이는 것에 대해 민박 주인은 “이제 늙었으니 긴급할 때 도시의 병원 갈 때 좋아진 점 이외는 나빠지는 것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여운이 길었다. 이전에도 지방이나 이른바 낙후된 지역의 발전은 늘 논의를 거쳐 추진됐지만 내용의 상당부분이 “서울처럼 되는 것”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서울처럼 된다는 것은 효율과 확장이 중심이 되는 것이었고 프랜차이즈 업종의 등장을 의미했다. 그리곤 이제 누구나 알게 된 단어 ‘젠트리피케이션’이 필연적으로 등장한 것. 어딜 가나 비슷한 분위기가 존재하고 같은 음식을 먹을수 있고 비슷한 생활환경을 추구하게 되지만 때로는 그 대가를 회복할 수 없는 것으로 치루기도 한다.

가끔 지역을 방문하면 무분별한 도시의 논리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저 건축물이 왜 저기에 지어져 있으며, 왜 저런 디자인이 마을에 들어와 있을까?젠트리피케이션의 가장 무서운 점은 대도시의 논리가 지역의 철학을 철저하게 무력화시킨다는 데 있다.

지방이라고, 시골이라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발전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지역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받아야 하고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더 값어치가 있다면 거부하는 것이 맞다. 다만 그것을 거르는 기준이 지역의 철학이 돼야 하지 않을까. 부러운 형태로 발전한 해외의 지역들에는 공통적으로 그런 것들이 있다.

지역의 철학은 거기 사는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살아온 방식과 살아갈 방식에 대한 합의이다. 고군산군도의 선장님 같은 분들이나 갓 귀어 한 젊은 부부들의 생각일 수도 있다. 장소나 설화, 풍경과 향내와 노을과 바람소리까지도 모두 마을의 철학이 된다.

어디선가 나타난 전문가나 정치인들이 섣부르게 지역발전을 논하면서 어디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이야기하기 전에 약간의 도시스러움을 위해 어떤 것들을 희생할 수 있는지 주민들이 판단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공유된 철학이 탄탄할수록 분쟁도 적다. 미리 해둘수록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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