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올곧게 나아가려면
나라가 올곧게 나아가려면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1.11.3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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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순간 와해된 민주주의의 꽃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본 칼럼 난(欄)이 개설된 지 어언 6개년이다. 그 긴 세월을 달려오는 동안 지금껏 단 한 번도 주제(主題)인 ‘바다’에서 일탈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 달만 살짝 외도(外道)를 해볼까 한다.

 어느 대학생의 장래 포부다. 
 “그야 금배지지요.”
 금배지라면 국회의원이 자랑스레 옷깃에 부착하는 쇳조각 아닌가. 워낙 자신 있어 보여서 재차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건가?”
 대학생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무 주저함도 없었다. 세상에, 국회의원을 동네 아이 부르듯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그러려면 우선 언변 솜씨도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정치철학 같은 것도 확고해야지 않아?”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우선 시민운동이나 열심히 하고, 일단 의사당에 들어가 표결할 때는 무조건 반대  버튼만 누르면 되니까요.” 
 거침이 없었다.
 “그럼 야당을 하겠단 말인가?”
 “선배들 모두 그랬으니까요.”

 어이가 없었으나 결코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사 ‘386세대’는 민주화운동하다가 감옥 갔다온 훈장으로 여의도 진출에 성공하였고, 이번 박 아무개는 시민운동으로 얼굴을 알린 다음 순전히 ‘안풍(安風)’ 덕으로 서울시장에 당당히 당선되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지난 서울시장 선거는 반세기 넘어 다져진 한국의 정치판도가 하루아침에 뭉그러지는 일대변혁을 몰고 왔다. 아무런 정치적 기반도, 또 정당의 뒷받침도 없이 일개 시민운동가가 하루아침에 나라 전체를 패닉상태로 몰아넣은 주인공이 된 때문이었다. ‘2040반란’은 그 직후에 나온 신조어(新造語) 아닌가.

 대두되는 의회 무용론
 
 금배지를 달겠다는 대학생 말마따나, 일단 의사당에 입성하면 누구라도 별다른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이 4년 임기를 순항(巡航)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알다시피 작금 여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태가 그걸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반세기가 넘는 의정사(議政史)를 보더라도 그들의 행태는 마치 벽돌을 찍어낸 것처럼 정형적(定型的)이었다. 3선개헌, 10월유신, 한·일회담, 그리고 작금의 한·미FTA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단 한 번도 그 틀을 벗어난 적 없이 그야말로 ‘다수결 원칙’을 내팽개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극한적 대치라는 테두리에서 한 치도 벗어난 적 없었다.

 일본도 지금 같은 내홍을 겪고 있다. 집권당인 민주당은 한·미FTA와 엇비슷한 ‘일(日)·미(美)TPP(환태평양 전략적 경제연대협정)’를 두고 이의 참여를 선언하였는데, 이는 작년 말 센카쿠열도에서 자국 경비함이 중국어선에 추돌 당하자 놀란 나머지 동맹관계인 미국의 힘을 빌려 안보를 등에 업겠다는 어부지리(漁父之利)가 작용한 것이라 한다. 그 때문에 일본 거리도 한국의 여의도나 광화문처럼 팻말을 든 시위꾼들로 미어지고 있다나.

 그와 함께 일본 시중에는 작금의 한국과 마찬가지로 ‘TPP 괴담(怪談)’이라는 것이 횡행하여 식자(識者)들도 그 진위를 놓고 설왕설래에 바쁘다고 한다.

 - TPP에 참가하면 관세철폐로 농업은 붕괴되고, 미국산 쇠고기와 유전자 조작 곡물이 판을 친다.
 - 국제중재기관에 제소할 권리는 외국인 투자자가 갖기 때문에 주권이 제한되고,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 미국 제약업계의 관여로 의료보험체계가 무너지고 부자만 첨단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략 이런 식인데, 작금 트위터 등 이른 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도배질하고 있는 한국판 ‘FTA괴담’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 근거는 앞서 정치지망생이 말한 대로 의사당 구성요원인 의원들에 대한 평가에서도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 (한국)정치인은 말 뒤집기 명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제의 주장을 헌신짝처럼 파기한다.
 - 제 식구 감싸기에 여·야가 따로 없고, 개인적 잇속 챙기기에 필사적이다.
 - 의원들 모두 무뇌아(無腦兒)다. 철학이나 이념은 제쳐두고, 당리당략에 맹종하면서 차기 선거만 의식한다.……

 대안(代案)도 없이, 오로지 당리당략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린 오늘 날 의회의 자화상, 그대로다. 가령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맞냐 틀리냐는 단순표결을 붙이더라도 전광판에는 반드시 반대와 기권이 몇 표씩 끼어들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때문에 맨날 TV화면에 비치는 몰골조차 역겨워 작금의 의회제도(議會制度)를 폐기하고 차라리 시대를 거스른 로마시대의 원로원(元老院) 같은 건 어떠냐는 극단적 견해까지 나오는 판이다.

 사면초가 처지의 李대통령

 선량(選良)들은 그렇다 치고, 한나라당의 입지를 좁히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이(李) 대통령에 대한 추궁은 실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 천거하고 기용하는 인물이 어떻게 하나같이 부도덕하고 부패하며, 동향족(同鄕族)뿐인가?
 - 국민적 여론향방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밀어붙이기만 한다.
 - 토목공사(4대강 사업)를 앞세워 일자리 창출을 장담하였는데, 중장비를 보유한 몇몇 건설사만 배를 불렸다. 나라를 이끈 대통령이라기보다 일개 ‘노가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결과 2040세대에게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좌절감만 증폭시키면서 이른 바 ‘트위터선거운동의 빛’을 발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민주주의 꽃인 정당정치의 붕괴와 의회정치의 실종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의 국민적 여론형성은 절대적 파급효과를 지닌 신문이나 방송이 주도했었다. 그러나 2008년 광우병 난동을 시작으로 작금 사회를 양분시키고 있는 ‘FTA 괴담(怪談)’에 이르면 그 주도권은 이미 트위터 등 이른바 SNS로 넘어간 게 분명하다. 거기서 나온 유언비어성 괴담 부스러기들을 좌파 의원들이 공개된 회의에서 아주 선동적으로 떠벌리고, 그걸 일부 문인과 연예인들이 퍼나름으로써 대한민국의 여론은 결정지어진다.

 이 같은 반국가적이면서 국론분열을 획책하는 부류들을 단순히 종북이니 좌파니 하는 두루뭉실한 표현으로 넘어가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적 문제다. 어떻게 민주주의 기본 틀에 역행하는 그 같은 행위를 수수방관하고 있단 말인가.

 흔히 한국을 ‘IT강국’이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이에 대한 명확한 규약이 명시되지 않아 국민적 절대가치가 훼손되는 게 문제다. 그 결과 정부의 공고문(公告文)은 개 짖는 소리가 되고, 법원이나 검찰까지도 황당무계한 트윗으로 치도곤을 맞고 있다. 국론(國論)은 이제 완전히 좌(左)와 우(右)로 갈라져 있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라지만, 붕괴가 임박한 북한을 동경하고, 악(惡)의 축(軸)인 김정일 부자를 숭앙하는 언행을 어떻게 묵인하고 있단 말인가. 작금 나라가 흥망(興亡)의 기로에 선 게 분명한 만큼 인터넷에 대한 적극적인 통제작업(統制作業)이 시급한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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