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통영 바닷장어 상경기
[현장르포] 통영 바닷장어 상경기
  • 변인수 기자
  • 승인 2018.06.14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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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활어차 동승해 노량진수산시장 위판과정까지 밀착취재

[현대해양 변인수 기자] 수산 1번지 통영은 국내 최대 활어 생산, 공급처다. 삼덕항을 위시해 가두리양식이 발달했고, 수입산 활어가 잘 비축된 통영에서는 매일 100여대가 넘는 활어차(물차)가 전국 각지에 싱싱한 활어를 공급하기 위해 거미줄처럼 뻗어나간다.

여러해 전부터 조선 경기가 나빠지면서 많은 이들이 활어 운송업 분야로 유입됐고, 사업은 더욱 활기를 띄게 됐다. 

▲ 삼덕항 통영수협 위판장


국내최대 활어 공급지, 통영

어족자원 고갈로 기르는 어업이 잡는 어업을 넘어선지 오래. 국내 최대 활어 공급처 통영에는 벌써 수십 개의 활어 수입 업체가 터를 잡았다. 

싱싱한 횟감은 역시 자연산이 제일이지만 양식활어가 대중화된 시점에서 자연산 활어는 그저 운이 좋으면 맛 볼 수 있는 귀한 몸이 되셨다. 그런데 국내산 양식 활어마저도 요즘은 수입산 활어에 밀리는 추세다보니, 이제 수입산 횟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인지도...

해외에서 물 건너왔거나 가두리에서 길러진 고기들은 대형 수조에서 서울로 상경할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다. 활어차 기사들은 이곳을 ‘보관장’ 또는 ‘창고’로 부른다. 보관장은 물량을 비축해두는 곳이자 그들의 사무실을 칭하는 또 다른 이름이다. 

 

막내 활어차 기사, ‘이 기사’

아침부터 경매가 한창인 삼덕항 위판장에서 통영수협 직원과 중매인을 졸라 겨우 활어차 한 대를 섭외할 수 있었다. 드디어 우리나라 활어 유통 과정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취재할 수 있게 됐다.

소개받은 활어차 기사님은 올해 27세의 앳된 총각, 자신을 ‘이 기사’로 소개했다. 얼핏 봐도 조카나 막내 동생 뻘. 

“시간이 없으니까 밥은 대충 때우거나 굶을 겁니다. 휴게소에 들르지 못할 수도 있으니 미리 볼일은 보시구요.” 

동승을 불편해 하는 듯한 그의 강단 있는 첫마디에 나는 주눅이 들어버렸다.

어른 키만한 높이의 조수석에 오르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찮다. 일단 앉으니 승차감은 상당히 좋다. 고속도로에선 지나는 옆 차가 모두 아래로 보이니 괜스레 어깨도 으쓱한다.


바닷장어 다섯 통

우리 5톤 활어차 물탱크는 100kg 씩 총 10개의 작은 수조로 구획됐다. 이 기사는 각각의 구획된 수조를 ‘통’이라 불렀다. 바닷장어가 다섯 통, 나머지는 우럭과 참민어가 다섯통이다. 장어는 통발을 이용해 잡은 자연산이고, 어선에서 바로 공수한 실한 놈들이다. 우럭과 참민어는 양식산인데, 참민어는 농어랑 점성어를 교배시킨 고기다.

“차에 실린 놈들 가격이 모두 얼마나 되지요?”

“글쎄요, 못해도 1,000만원어치는 넘을 겁니다.”

재잘재잘 물어보는 호기심 많은 동승자에게 의외로 친절한 답변들이 돌아온다. 

이기사가 이 일을 시작한지는 두 달 남짓, 회사에선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막내다. 첫 직장은 조선소였다. 군복무는 면제였지만, 4년 동안 군대처럼 여기고 열심히 일했단다. 그런 조선소가 경기를 타면서 이직을 결심하게 됐다.

아버지는 통발로 바닷장어를 잡았다. 그러다 십여년 전 그물 감는 롤러에 팔 한쪽을 내주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대형 면허는 19세 때 땄다. 일찍부터 철이 든 탓인지 무언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이 기사가 담배를 권한다. 낯선 사내들이 친해지는데는 담배만한 것도 없다. 요즘은 ‘학연, 지연 다음에 흡연’이라고 농을 주고받았다.

“이 일을 하면 담배를 끊을 수가 없어요. 심심하기도 하지만, 잠을 쫒기 위해서라도 뭐든 해야 합니다.” 

 

잠을 줄이거나 아침밥을 포기하거나 

우리 차는 경기도 안산 장어도매상을 중간 기착지로 인천연안부두 활어도매상가 단지가 최종 목적지다. 안산에서 장어 한 통을 풀 예정이고 나머지는 인천행이다.

가는 동안, 이 기사는 쉴 새 없이 거래처와 통화를 하며 스케줄을 조정해 나갔다. 안산에 10시까지 도착한다고 했기에 최대한 시간을 맞춰 가야 한다. 인천 연안부두도매시장 거래처는 네 곳이다. 한 거래처에 12시 즘 도착하겠다는 통보를 하고 이어 다음 거래처에 전화를 한다. 12시 30분에서 1시 사이가 될 거란다. 첫 번째 통화는 장어집이고, 두 번째 거래처는 우럭을 주문한 곳이다.

거래처에 납품하는 고기는 거의 모두 A급이다. 도매상 측에서 고기가 맘에 들지 않으면 퇴짜를 놓는다. 생물을 취급하는 사람들의 오래된 고충이다. 세상 어디에나 있는 갑질이 이쪽 세계라고 비켜갔을까. ‘빠꾸’ 당하면 노량진에 위판(경매)으로 넘기거나 그도 아니면 통영 회사로 가지고 내려가야 한다.

“장보는 게 가장 힘든 일이고, 졸음과 싸우는 운전은 그 다음입니다.” 

거래처에서 주문받은 대로 좋은 물건을 싣는 것을 ‘장본다’고 표현한다. 장보는 것도 스케줄 싸움이다. 막무가내로 실으러 갔다가 차가 많으면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 보통은 삼덕항에서 고기를 싣고 다시 통영 시내로 나오면서 수입활어업체를 거치는 순서다.

“인천에서 물건을 다 내리고 끝나는 시간이 보통 12시에서 새벽 1시가 됩니다. 납품하는 활어차들이 몰리게 돼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지면 새벽 3~4시구요. 아무리 일이 늦게 끝나도 어느 정도는 내려가다가 휴게소에서 잠을 청해야 합니다. 단번에 통영까지 400km를 뛰고 싶지만 체력이 남아나지 않거든요.”

이튿날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이 오전 11시~12시. 곧바로 5~6시간 장을 보고 채비를 한 다음 다시 수도권으로 출발한다. 2~3일에 한번 귀가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게 시간싸움이다. 잠을 줄이지 않으려면 아침밥을 포기해야 한다. 먹느냐 자느냐의 가장 원초적인 싸움이라니, 극한 직업이라는 말이 새삼 와 닿는다.

▲ 잠자는 활어차 통 속의 장어

 

잠자는 통 속의 장어

밤 8시 경, 휴게소에 도착했다. 급하게 볼일만 보고 출발해야 한다. 점심도 햄버거로 때웠다고 했기에 출출한 배를 달래느라 입에 핫도그 하나씩 물었다. 이 기사는 물고기 상태를 확인했다.

“가만히 엎드린 고기들이 효잡니다. 스트레스가 거의 없으니 도착해서도 쌩쌩한 놈들이지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고기는 덩치가 큰 고기들이다. 크기가 작은데도 통에 많이 구겨 넣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출발 전까지는 물을 자주 갈아줘야 하고, 산소도 충분히 공급해 줘야 고기들 상태가 좋다.

“장어는 동작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해야 합니다. 재워야 하죠. 장어가 잠을 자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자기네들 끼리 뜯어먹고 난리가 납니다. 만약, 장어가 잠을 자지 않는다면 출발도 어렵습니다.”

머리 위 그늘이 지면 자는 습성을 가진 장어는 수온을 떨어뜨려 재운다. 보통 해수온도가 17도라면 통발로 잡힌 장어는 6~8도를 설정한다. 주낙으로 잡힌 장어는 잠을 잘 자는 편이라 9~11도 정도로 약간 높게 설정해줘도 좋다. 보통 10분 이내에 잠이 든다고.

다른 어종들은 재우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잡게 만든다. 통 구조에 적응하며 유영하게끔 하는 것이다.

 “뚜껑을 열었을 때 고기 상태가 나쁘면 산소량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또는 미끌미끌한 진이 벗겨진 고기들은 지네들끼리 치여서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기도 합니다.”

 

휴게소를 막 출발하던 차에 전화벨이 울렸다. 더 빨리 올수 없겠냐는 거래처 전화다. 어렵다고 하자, 퇴근할테니 혼자서 내려보라고 한다. 그러면 200kg 장어를 혼자서 조금씩 내려 수조에 담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시간이 더 지체되는 것이다.

대전에 다다를 때 즘, 때 아닌 비를 만났다. 운전이 수월치 않아 보였다.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는 거의 막힐 일이 없지만, 대전 즘에서 경부로 접어들면 막힐게 뻔하기 때문에 속도를 내야한다. 그의 초조한 마음이 전해져온다.


꿈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

이렇게 한번 왕복해서 뛰면 100만원이다. 이쪽 세계 용어로 ‘통값’이라고. ‘통값’ 100만원은 통영활어유통협회에서 정한 고정 금액이다. 여기서 기름값, 도로비, 차 감가상각비용 등을 제외하면 60만원 정도 남는다고 봐야 한다. 60만원 중 60%를 회사가 가져가고 나머지가 기사 몫이라는 계산이다.

이 기사는 한 달에 15~20번을 뛴다. 한 달에 400만원 정도를 벌면, 또래 친구들 기준에는 상당한 급여다. 예쁜 간호사 애인도 있고 결혼자금도 마련할 수 있다. 집에도 보탤 수 있고 용돈도 드릴 수 있다. 정승처럼 쓸 정도의 수입은 아니지만 쉬는 날은 풍족하고, 든든하다.

활어 운반차는 개인차와 용차로 나뉜다. 용차는 회사소속 차다. 5년을 일하면 운송권을 받을 수 있다. 운송권을 받으면 통값 100만원을 그대로 받을 수 있다. 물론 차량은 임대 하거나 개인 돈으로 사야한다. 통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으니 직원일 때 보다야 훨씬 낫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경비, 차량유지비, 감가상감비 등 부대비용도 만만치는 않다.

“딱 서른까지만 하고, 나까마 할겁니다. 1톤 포터 물차로 횟집에 직접 납품하는 일이죠. 여름철만 잘 맞추면 월평균800 이상은 벌 수 있습니다. 고기 시세도 알아야 하고, 거래처 영업도 해야 합니다. 어렵지만 도전해 볼만한 일이죠.” 10시 조금 지나 안산 장어도매점에 도착했다.

차가 도착하자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뛰쳐나왔다. 이기사가 활어차에서 뜰채로 통속의 장어를 퍼올려 대형 다라이로 내려주면, 직원들은 일사분란한 움직임으로 장어를 수족관으로 옮긴다. 한두 번 호흡을 맞춰본 솜씨들이 아니다.

옮기는 과정에서 탈출한 장어 한 놈을 손에 쥐어 봤는데, 한손으로 잡기 힘든 엄청난 힘이다. 생명의 역동성은 시각과 촉감에서 큰 차이가 난다.

▲ 노량진 수산시장 위판

전국최대 활어도매단지, 인천 연안부두

안산을 출발해 삼십분 정도를 달려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했다. 연안부두 인천종합어시장은 서해 어업인들이 직접포획한 싱싱한 수산물을 공급하고, 전국에서 당일 직송되는 활어를 수도권에 공급하는 국내 최대 활어도매단지다.

연안부두는 통영 산지 물량의 70% 이상을 소화해 내는 곳이다. 이곳에만 오면 정신이 번쩍 든다고, 빨리 하역하고 밥부터 챙먹고 싶은 마음뿐이라 한다. 첫 거래처에 물건을 부리고 난 뒤 이 기사가 말했다.

 “어두워서 잘 안보이시죠? 불 꺼진 집이 많지만, 이 같은 도매 가게가 백여 군데가 넘을 겁니다. 연안부두 보셨으니 이제 활어유통은 다 보신 겁니다. 이제 노량진으로 가셔도 좋습니다.”

헤어지는 발걸음이 쉬 떨어질리 없다. 직원의 도움 없이 혼자서 물건을 내려야 하는 곳을 도와주기로 맘먹었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고무장갑을 끼고 뭔가 해볼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도움이 될 리 없다. 한바탕 낑낑 대다가 옷만 버렸다.

“도움은 감사하나 그냥 가만히 계시는 게 도와주시는 겁니다.”

 

노량진으로 가는 길

남은 거래처는 기다림 없이 물건을 부릴 수 있을런지…이 기사의 배려로 노량진으로 향하는 같은 회사 동료의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삼십 후반의 기사님은 일을 시작한지 일 년 정도 됐다고 한다. 그는 연안부두에서 좀 더 일찍 일을 마치고, 노량진에 경매품목을 전달하러 가는 길이다.

“일이 어떻냐구요? 사람 상대하는 것이 가장 힘들죠. 욕도 듣고, 사과와 굽신이 몸에 배였습니다. 또, 시간과도 졸음과도 싸워야 합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선소 일도 해보고 다 해봤는데 해 본 일 중에서는 가장 힘든 것 같아요. 그래도 열심히 하면 대기업 부장 월급 정도는 벌수 있으리란 꿈이 있습니다.”

주야 없이 유통업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싱싱한 활어를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배웠다. 짧지만 귀한 경험을 주신 두 기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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