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 경제학
‘나가수’ 경제학
  • 이준후/시인, 산업은행 제주지점장
  • 승인 2011.10.0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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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경연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모 정당에서 다가오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를 선정하는데 경연방식 채택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 그 열풍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경연이란 일정 자격을 갖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경쟁을 붙여 일부를 탈락시키는 포맷입니다. ‘수퍼스타 K'로 시작되었다가 ’나는 가수다‘가 그 중심에 섰습니다.

‘나는 가수다’, 약칭 ‘나가수’는 퍼포먼스 위주의 아이돌이 장악한 가요계에 신물 난 사람들의 니즈를 날카롭게 집어내어 대박을 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꼴찌를 한 가수는 탈락한다는 원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나가수’는 시청자의 뭇매를 맞고 결국 연출자가 바뀌고 가수 김건모는 자진 하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재도전’과 ‘탈락’은 生과 死의 갈림길과 같기 때문에 탈락을 재도전으로 바꾼 것은 당초의 원칙을 크게 훼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PD가 원칙을 고수하여 경연에서 꼴찌를 한 가수를 탈락시켰다면 국민가수 김건모가 손을 떨면서까지 부르는, 심금을 울리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볼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고 제작진이 원칙을 변경한 것을 옳은 결정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약 1달간의 공백을 두고 다시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많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만, 당시 연출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요. 원칙의 고수? 아니면 원칙의 수정?

이 문제를 경제 측면에서 보면 경제정책에 대한 재량(discretion)과 준칙(rule)의 논쟁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재량’은 정부가 상황에 맞게 정책을 조정해가는 것을 말하고, ‘준칙’은 어떤 정책을 시행할지 미리 규정해 놓고 이를 준수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 ‘나가수’의 사례에 적용하여 보면 PD는 정해놓은 준칙 대신 재량적 정책을 편 것이고 시청자는 제작진이 준칙을 지키지 않은 것을 비판한 것입니다.

경제란 수천수만 개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과 같아서 정책에 대한 정확한 효과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재량과 준칙 중 무엇이 더 효과적인지 쉽게 단언할 수 없습니다.

재량에 의한 정책은 그때그때 경제상황을 판단하여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지요. 기존정책을 상황에 맞게 조금씩 미세조정(fine tuning)하여 융통성 있는 정책을 펴는 것입니다. 재량적 정책은 상황에 알맞은 정책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효과를 추구하는 경제주체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재량이 미세조정에 그친다면 큰 문제는 없겠지요. 하지만 유연성이 지나쳐 원칙을 수정하는 정도라면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우며, 나아가 정책에 대한 신뢰상실을 초래할 것입니다.

그럼 준칙은 어떨까요. 재량의 단점이 준칙의 장점이라 하겠습니다.

정책의 이행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정책의 ‘질’이 아닙니다. 경제주체가 정책당국을 ‘신뢰’하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 경제주체는 예상 가능한 합리적인 기대를 하게 되는데, 이는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효과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정부가 굳이 시장에 간섭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스템 자체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정책당국과 경제주체 간에 호흡이 척척 맞아 들어가면서 궁극적으로 전체의 효율이 상승하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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