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재건’? 제도적 장치없이는 ‘해운답보’
‘해운재건’? 제도적 장치없이는 ‘해운답보’
  • 최정훈 기자
  • 승인 2018.06.0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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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신뢰도 상승시킬 규범적 뒷받침 시급

[현대해양 최정훈 기자]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 따르면 국내해운은 2020년부터 매출액 42조원, 원양컨테이너선박 110TEU를 달성해 세계 5위의 입지를 재탈환하게 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본궤도에 오른 해운재건이 순차적으로 진행되기 위해 우선적으로 창대한 계획을 저해하는 제도들을 탈바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운재건 계획에서 법 장치라는 기어가 잘 맞물려야 성공적인 해운 부활이라는 선순환을 그릴 수 있다는 것. 

김인현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장(고려대 로스쿨 교수)은 “해운업계에서 법학은 분쟁기능의 수단으로써 국한된 기능을 해왔다”며 “해상법이 해운산업에 선제적·예방적인 법이 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법이 해사분쟁에만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조력하는 새로운 입법적 모색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3일 한국선주협회 대강당에서 해상법, 경제법, 금융법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의 법적 의의와 실천방안’을 주제로 해운재건 법적 쟁점들을 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내 해상법 학계를 대표하는 고려대해상법연구센터, 서울해사중재협회, 한국해법학회가 주최하고 해송법률문화재단,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선박건조·금융법연구회, 한국해사법정·중재활성화추진위, 인천항만공사가 후원한 이 행사에 해상·금융·경제·기업법 등의 전문가 및 화주들이 대거 참석했다. 

지난달 23일 한국선주협회 대강당에서 해상법, 경제법, 금융법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의 법적 의의와 실천방안’을 주제로 해운재건 법적 쟁점들을 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출자 높여 화주 신뢰 회복 

5년 후 국내해운이 선복량 110만TEU 이상을 달성했는데 화물이 없다면 소문만 무성하고 실체는 없는 해운재건으로 귀결된다. 현재 컨테이너선사의 연근해 항로의 적취율은 59.4%, 원양항로는 19.1% 수준이다. 늘어나는 국적선대를 바라보는 화주가 지금처럼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해운 재건은 완주될 수 없다. 

화주가 운송업체를 선정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업체의 신뢰도다. 김선미 DHL 전무는 “한진해운 사태를 겪으면서 아무리 국적선사라도 부채비율 높은 한 선사만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해운재건 계획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더불어 선사의 금융부분이 굳건해지길 바란다”고 털어놨다. 

현재 국적선사의 40%가 400% 이상의 부채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영업이익, 매출액 등 영업현황도 지속적으로 나빠지는 상황에서 이런 부채비율로는 자금차입이나 회사채 발행에 차질이 생겨 유동성 위기가 악순환 될 수밖에 없다. 

현 상황과 같이 국적선사들이 금융을 주로 이용하면 부채만 축적돼 화주들이 외면해 버릴 수 있다며 출자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인현 교수는 “독일의 해운사인 하파크로이드(Hapag-Lloyd AG)와 같이 부채비율 100% 밖에 안 되는 탄탄한 선사가 돼야 화주의 눈길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단계 나아가 김 교수는 국내선사들이 용선을 지양하고 선박이 책임재산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제도적 기반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화주입장에서 운송인이 빌려 쓰는 선박보다 선사선박에 물건에 선적되길 원한다”며, “ 최고회생절차에 들어가더라도 가압류나, 질권행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화주들이 선사에 더욱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진해운 사태에서 정기용선 70척, 단순나용선 7척, 국취부 선체용선이 55척이고 선사 소유선박은 5척이 전부여서 채권자는 빙산의 일각만 가지고 자신들의 채권을 회수하는데 분투해야 했다. 

또한 김 교수는 선박 이외에 컨테이너 박스도 담보로 평가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교수는 “컨 테이너 박스가 상당한 재산적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분통했다. 컨테이너 박스 1개당 200만원, 10만개면 2,000억에 달하지만 해상법상 물적 설비는 선박만 규율(740조)돼 있다. 컨테이너 박스는 물건이기 때문에 질권 설정이 돼야하는데 현행법상 어려운 실정이며, 양도담보가 차선책으로 이뤄지는 실정이지만 투자 관점에서도 은행권은 기피하는 실정이다. 

한편, 정우영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국내선사들이 국외선사들과 경쟁 속에 화주의 눈길을 받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운임가격을 낮춰야 한다”며 “결국 운임을 낮추기 위해서는 금융비용이 싸야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분석하며 상생펀드를 소개했다. 

화주와 조선소 등 선박과 관계되는 모든 관계자가 참여해 선박운용을 통해 생긴 이익을 분배시키겠다는 것. 한국해운진흥공사가 원금을 보장하고 선사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며 통관 절차를 간소화 시켜주는 식의 인센티브를 부여해 투자자들을 모으겠다는 것인데 하지만 400% 부채를 안고 있는 선사들을 은행·투자자가 떠안기에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화물 안전보장 확보가 시급 

운송주선인의 역할과 지위를 제도적으로 규정해 시장에서 화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종덕 삼성 SDS 부장은 “사고시 운송인은 상법 797조가 적용돼 책임제한이 되지만 운송주선인에 대해서는 상법상 명시가 없어 민법의 인과관계가 적용돼 피해화물에 대해 100% 보상·배상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운송주선인에 대해서도 책임제한이 될 수 있는 법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진해운사태 때 지연·소실 등으로 인해 대기업은 물론 대부분의 영세한 계약운송인이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또, 포워더의 책임 정립과 더불어 마지막 항차의 하역작업보장기금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 교수는 “한진해운 사태에서도 겪었듯이 마지막 항차에서 하역 불가로 화물이 다른 선박에 실리는 등 물류대란이 발생해 신용도가 끝을 모르고 추락해 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대응책으로 정기선사들의 하역작업보장기금 마련을 제안한다”며 “해외 얼라이언스들은 이미 구축한 기금으로서 비상시 하역업자에게 현금을 지급해 위기를 모면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회생절차 등 도산위기시에는 정부개입을 의무화하 고 신속한 절차 또는 긴급지원을 정당화하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김남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회생절차가 개시되고 한진해운은 전 세계 네트워크를 통해 비교적 빨리 전파했음에도 각국 법원이 법적절차를 정지·연기시키는 스테이오더(stay order) 발부가 안 돼 압류 등이 발생했다”며, “해운업의 특성상 회생절차가 임박했다는 사정만으로 스테이오더(stay order)가 내려지도록 좀 더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파산직전 선사에게 단기간에 이자율이 높은 금융인 DIP(Debtor In Possession)를 활성화 시키자는 의견도 제기됐다. 

윤희선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한진해운 사태때 대한항공 600억원, 한국산업은행의 800억원을 지원해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고 밝혔다. 

DIP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윤 변호사는 “자금 투자자 입장에서 파산된 회사의 채권 회수에 대한 제도적 보장이 관건인데, 파산이 견련되면 우선변제권을 보장받지 못하게 되는 현행법에 대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채권회수에 혈안이 된 채권자 중 화주의 채권이 최우선 순위가 되면 화주의 관심을 끌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김인현 교수는 “화주의 운송인에 대한 채권이 선박 우선특권을 부여받으면 일반 회생채권자보다도 더 보호될 것이다” 며, “공익채권으로 인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국적선사들이 선박발주에 금융을 주로 이용하면 부채만 축적돼 화주들이 외면해 버릴 수 있다며 출자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적국은 대한민국으로 

해사안전행정상 편의성, 저당권 실행의 수월함, 선박등기 등록시 편리함, 절세, 도산절연 등의 이유로 국내해운 업계에서도 편의치적국적이 성행하고 있다. 특수목적법인 (SPC, Special Purpose Company)이 성행하는 해운업 특성에 더해져 한 회사에서 10척이 모두 다른 편의치적국과 SPC로 운행할 경우 선사 도산시 채권자들이 배당받을 정기선사의 재산이 없게 돼는 점도 화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에 김인현 교수는 “국내조선소에 국내선이 70~80% 건조되고 있는 실정에서 국내 건조선박에 한국국적을 부여하는 제도 도입을 주장한다”며 “실례로 미국은 자국 건 조선박에 선적을 부여해 선박의 금융, 건조, 등록, 운항, 관리, 수리·폐선 등 모든 업무를 자국에서 처리한다”고 설명 했다. 하지만 조봉기 한국선주협회 상무는 “현실적으로 편의치적국적이 주는 이익이 많다. 어쩔 수 없이 선사들이 편의치적국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해운국가 그리스는 거의 100%가 편의치적국선이다. 

한편, 적취률 확대는 우리 화물을 가급적 우리 선박으로 실어 나르자는 것으로 요약되는 만큼 정부 화물에 대해서는 강제로 국적 선사 이용을 규제화 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조봉기 상무는 “가스공사는 우리가 수입하는 가스 중 운송권도 함께 수입하는 비중이 50% 밖에 되지않는 실정이다”며 “정부가 국내선사 운송권까지 포함해서 수입하는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2자물류 점유율 규제 필요 

타 산업에 비해 공정거래법 관련 이슈가 없었던 것도 해운업의 특징이다. 하지만 대기업 화물을 독점하는 자회사와 국내외 중소선사의 경쟁에 대해서는 업계가 지속적으로 볼멘소리를 쏟아내며 난색을 표해왔다. 

이봉의 서울대 경제법연구소장(서울대 로스쿨 교수)은 “ 대기업 계열 물류회사인 2자물류와 중소 선사인 3자물류가 시장에서 얼마만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을지 기대하기 어렵다”며, “2자물류와 3자물류에 직접적으로 칸막이를 만드는 방식은 시대적 추세를 고려할 때 실현 불가능하겠지만 점유율로 규제를 하는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실정이다” 고 내다봤다. 해운선사가 2자물류회사 보다 높은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 자구책도 요구되지만 대기업 물류자회사의 덤핑, 하도급 등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보이는 손’이 물류업계에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조봉기 상무는 “대표적으로 현대 글로비스의 경우, 모기업 물류를 등에 업은 마켓팅 파워로 타 선사의 화물까지 흡수하고 있어 3자물류 업체들이 고사 직전이다”며, “점유율 로 규제한다는 것을 구체화하는 방법으로 실질적인 제도장 치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인현 교수는 “일본의 NYK는 미쯔비시 등 대기업 화주들이 지분을 적잖이 소유하고 있다”며, “우리도 삼성, LG와 같은 대자본이 선사에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이 돼야한다”며 대자본과 선사간의 적극적인 상생을 제안하기도 했다. 

화주의 입장에서 국적선사를 바라본 이종덕 삼성SDS 부장은 “매스컴에서는 원양선사들의 고전분투와 근해선사들 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해 업계 소문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2016년 한진해운을 겪은 화주들은 비관론에 둘러싸여 선뜻 국내선사를 선택하는데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모 글로벌 포워더 기업은 한진해운 도산 6개월 전부터 선사이용을 하지 않았다고 밝혀졌다. 멀리 떨어져 있는 화주의 시선을 다시 끌어올 수 있도록 구미 당기는 제도적 당근이 조속히 마련돼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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