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현의 양망일기 ③
하동현의 양망일기 ③
  • 하동현 작가
  • 승인 2018.05.21 0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는 여자다. 배에 오르는 순간부터 ‘그녀’와 함께하게 되는 게 뱃놈 팔자다.

1 ‘사랑과 미(美)의 여신(女神).’
 3월 중순에 올랐던 해상시운전(Sea trial) 선박의 이름이 가진 의미다. 성애와 다산, 거기다 더해 바다와 항해의 안전까지 상징하는 여신의 이름이다.

'거품'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는데, 하늘을 관장하는 신의 아들이 아비에게 반기를 들어 생식기를 잘라 바다에 던진 데서 생겨난 하얀 거품으로부터 태어났고, 그 후로 하늘과 바다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섬뜩한(?) 전설속의 여신이란다.

나는 이 배를 선주 측에 인도하기 전 ‘처녀항해’에 앞서 일주일간 남해상에서 진행될 신조선박의 머리 끝 부터 발 끝 까지, 운항점검과 하자여부를 확인하는 시운전절차에 파견된 일곱 명 항해요원들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공식적인 출항을 앞둔 ‘처녀’의 몸을 점검해야하는 영광스러운(?) 위치다.

누군가 배의 ‘처녀항해(Maiden voyage)’를 이렇게 서술했다.

바람과 파도와 싸우는 첫 항해를 끝내고 배는 첫 기항지에서 지친 몸을 굵은 밧줄에 의지해 부두에 기댄다. 밧줄에서 눈물 같은 바닷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처녀가 아니다……’

배에는 여성대명사 ‘She’가 따라다닌다. 배는 여자다. 배에 오르는 순간부터 ‘그녀’와 함께하게 되는 게 뱃놈 팔자다. 여자가 배에 오르면 부정 탄다는 금기가 우리에게 있었지만 지금은 옛말이 되어버렸고 서구에서는 옛날부터 배를 여자로 여겼다. 바다의 여신에게 제사를 올린 풍습에서 유래를 찾는 모호한 기원설이 있으나, ‘배와 결혼한 사이’가 된 뱃놈들이 ‘그녀’라 부르게 되었다는 영국 해군제독의 말에 더 무게가 실린다. 그 속설을 열거하면 이런 것들이 회자된다.

 “배는 여자처럼 아름다운 곡선형이며 언제나 소란스럽다.”
 “배는 언제나 여자처럼 화장을 하고 구석구석 치장을 한다.”
 “배는 여자처럼 부끄러운 듯 하반신을 가리고 있으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랫도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배는 일정한 간격으로 빌지(Bilge-노폐물, 배에서 발생하는 오수)를 배출해야 한다.”
 “배와의 관계는 만드는 것도, 유지하기도 힘들며 비용도 많이 든다.”
 “배를 다루기 위해서는 능숙한, 잘 조련된 남자가 필요하다.”
 마지막 항목은 격세지감으로, 여성항해사가 무수히 배출되는 지금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표현일 수 있겠다.


 
 2 전장(全長) 350미터, 폭 60미터에 DWT(Deadweight tonnage)가 즉, 적화(積貨)톤수가 30만 톤이 넘는 원유운반선(COT-Crude oil tanker)이었다.

정식항해에 돌입하면 배가 전 자동화로 움직이니 소수정예로 승선 인원이 20~30명 정도이겠으나, 전체 시운전 요원으로 승선한 인원은 130명에 육박하는 숫자다.

그도 그럴 것이 심혈을 기울여 몇 년에 걸쳐 배를 건조한 측과 하자 없이 인계받아야 할 선주 측, 그리고 선급에다 세상의 모든 기계와 시스템을 다 쓸어 담고 다니는 배에서 수도 없이 많은 각종 항해계기, 전파항법 장치에 기관 부속에다 운전 장치, 심지어 거주시설 장치까지 인수인계하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많은 인원도 이해가 된다.

양상에 내보냈을 때 스위치 하나, 전선 하나, 나사 한 개라도 작동오류가 있다면 경제적 손실을 떠나 안전사고와도 직결된다. 철두철미한 사전 점검이 필요하므로 조종, 기관, 속력, 운전, 소음, 선회, 진동, 안전 등 알기 쉬운 목록으로 요약해도 4~50가지의 점검항목이 있다.

삼시 세끼에 더해 야간 근무 조 야식까지 동서양을 망라한 요원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위탁 출장형 식당요원만도 열 명이었다. 심지어 이 많은 인원의 침구나 구명동의(조끼) 같은 안전물품과 화장지 같은 소모품을 관리하고, 발생되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업무를 맡은 지원파트까지 탑승한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간호사 한 분 까지.

세월호 이후 강화된 안전 의식 고취로 출항즉시 철저한 안전과 퇴선 교육은 필수다. 가상 퇴선 신호가 울리자 구명정 앞에 도열한 무리들 중에 앳된 아가씨들도 몇 보인다. 설계부 직원이란다. 모든 분야에서 남녀의 경계가 허물어졌지만 이런 선박공학분야에 까지 도전해 자신을 담금질하고 꿈을 펼치는 젊은 여성들은 당차고 예뻤다.

동승한 여성들 앞에서 언행의 각별한 조심 또한 필수다. 승선 전 사전 교육에서도 미투(Me too)운동의 여파로 행여 오해를 사거나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끝도 없이 강조한다.

승선 인원들 중 가장 연로한 집단이 되어버린, 어찌 보면 ‘뼈 속 까지 오리지날 뱃놈’이라 남자들만의 세상에 익숙했던 우리 항해요원들은 따로 지침까지 마련했다. 아예 배에서 마주치는 젊은 여성들과는 말 자체를 섞지 말 것, 그러니까 근처에도 가지 말 것이며, 부득불 식사 때 소통해야하는 주방요원들에게도 ‘아주머니’나 ‘이모’같이 ‘노털’들의 입에 익숙한, 다소 교양 없어 보이는 호칭을 배제하고 ‘여사님’으로 통일하기로. 정규탑승인원의 서너 배가 넘는 인원이 승선했으니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우리 1인용 선원 침실에는 세 사람이 배정 받았다. 침대와 소파를 번갈아 당직시간에 맞춰 교대로 쪽잠을 청해야할 처지. 불평불만은 아예 있을 수도 없는 것이 회의실 같은 공간에 열 명 가까이 매트를 깔고 누운 젊은 설계요원들을 보면 그들의 열정에 안쓰러움에 앞서 찬탄이 나올 지경이다.

심X대 씨. 만 70세, 같은 침실을 썼던 베테랑 조타수다. 우람한 덩치에 어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다 전투적인 맹렬한 식사, 누웠다하면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버리는 전형적인 재래식 의미의 뱃놈이다.

“지지리도 가진 게 없었고 해군 제대하고 올 데 갈 데 없어 바로 배를 탔네요. 일자무식 까막눈이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떠돌며 공짜라고 나이만 들입다 먹어버렸네. 이제 애들 다 키웠고 손주들 용돈이라도 벌려고 한 달에 두어 번 이런 일이 있으면 배에 오릅니다. 성질이 더러워 아파트 경비 같은 건 아예 생각도 못하고, 이제 한 두 해 더하면 이 일도 ‘시마이’ 해야겠지요.”

이분의 조타수로서 항해보조 능력은 최고였다. 시운전 분야만 견준다면 후배가 되는 내게 친절함까지 갖추었다. 내가 야간당직을 서고 아침결에 선잠이 들면, 심씨는 간이 뷔페식으로 차려진 조식에 나온 빵 한 조각 우유 한 통을 꼬박꼬박 머리맡에 챙겨줬다. “한국사람 ‘밥심’으로 사는데 아침 식사 챙겨 들어요. 난 된장국에 적신 밥 한 덩이 하고 왔어요.”

육지가 가까워져 아내 분과 통화가 되었는데 이사를 위해 매물로 내 놓은 자그마한 집 계약에 문제가 생겼단다. 계약금까지 받은 상태에서 집을 사고자했던 사람이 사정이 꼬였는지 ‘펑크’를 내고 그 돈을 돌려줬으면 한다네. 자신도 이미 그 돈으로 이사 갈 집에 선금으로 지급해버린 난감한 상태. 하지만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 한번 호쾌했다.

“이 사람아, 베푼다 치고 돌려줘. 없는 사람들 끼리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는데 봐 줘야지. 집은 임자가 따로 있는 법이야, 좋은 사람 또 나타나겠지. 우리 쪽은 내 들어가면 만나서 사정해 볼 테니.”

본의 아니게 통화를 엿듣게 된 나는 뜬금없이 해량(海諒)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떠올렸다.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그가 아등바등 아수라 같은 육지의 삶을 침착하게 관조하고, 불화, 욕심, 사랑, 시기, 이런 것들이 뭉뚱그려져 모조리 ‘이해’의 단계로 녹아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또 한분, 식당 배식 담당 이X분 여사. 당직교대에 늦지 않으려 젊은이들에 앞서 식판을 들고 언제나 첫줄의 선두에 멋쩍게 섰던 나를 주책없이 식욕이 왕성한 중년으로 보았던지 슬쩍슬쩍 이것저것 챙겨 주신 분이다.

작은 몸집에 흰 위생복과 장화가 다소 커 보였지만 흔들리는 배에서 날아다니듯 몸놀림이 재빠르고 일머리가 훤했다. 한날 이분이 내 식판의 밥에 카레를 끼얹어주며 물었다.

“아이구 답답해, 전화가 잘 안 터져요. 혹시 높은 데로 올라가면 통화가 되려나…….” 

지상의 6층 높이에 해당하는 브릿지까지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철제계단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온 그녀는 옆 창을 열고나가 장시간 통화를 했다. 며칠 집을 비웠으니 딸인지 아들인지를 붙들고 영감님과 자식들과 손주들이지 싶은 대상들에게 온통 사소한 걱정거리들을 늘어놓는 내용 같았다. 식사, 청소, 유치원, 약, 이런 단어들을 얼핏 들은 것 같다.

브릿지에는 각종 차와 과자 같은 간식거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통화를 끝내고 감사했다며 올라온 김에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들고 종이컵들이 뒹구는 음수대와 냉장고를 훔쳐 주시기에 슬쩍 과자 몇 봉지를 건넸다. 그녀는 고맙다는 눈빛으로 해맑게 웃었다.

내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나는 이 땅의 ‘공순이 1세대’ 쯤 되는, 작년에 돌아가신 내 큰누님을 떠올렸다. 새벽에 도시락 싸들고 출근해 살인적인 일정으로 목장갑을 짜는 공장 일에 지쳐 늦게 퇴근하느라 얼굴도 못 보다가, 유일하게 한 달에 한 번 셋째 일요일 쉬는 날, 열 살 차이나는 초등학생 남동생에게 과자를 사 주고 동전 몇 푼을 쥐어주며 공부 잘하라는 당부를 하던 큰누님.

그때 우리 누님은 갓 스물이나 되었을까. 매형과 싸우다가 사랑했다가 하면서 평생 식당 허드렛일로 살림을 꾸려 늘그막에 집을 마련하고, 아들을 결혼시키고 손녀를 보고, 이제 살만해지자 갑자기 신장 관련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이 차돌같이 야무진 ‘여사님’에게서 큰누님을 떠올리고, 이 땅의 위대한 ‘억척 아주머니’들의 지난한 삶을 보았다.

3 시운전은 철저한 경제논리로 움직인다. 무작정 기름을 떼는 비경제적인 운항을 피해 항해가 필요 없는 경우 엔진을 끈 상태에서 표박(漂迫)을 하고, 바다가 거세지면 닻을 내린다. 짧은 점검을 마친 부서들은 육지로 접근해 통선으로 귀환시키고, 다시 앞선 파트의 점검이 종료되어야 연계 가능한 항목의 후발요원들이 오르는 방식이다.
 우리가 맡은 항해파트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힘 조절을 잘 못한 내 실수로 끊어진 해가림용 롤러형 차양막 끈은 지원파트가 교체했다.

예정보다 하루가 더 걸린 것은 갑자기 나빠진 기상 때문이었다. 젊은이들 모두가 식당 옆 트인 공간으로 나와 휴대폰으로 통화하느라 야단이다. 가족과 애인에게 일주일간의 헤어짐 후에 기약된 재회가 고작(?) 하루 더 미루어진 것에 저리 발을 구르는 것을 보고, 떴다 하면 2년, 혹은 30개월의 계약기간에 손 편지로 안부를 묻고 수개월이 지나야 답장을 받던 그 아스라한 옛날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안전운항의 증빙을 남기기 위한 공중 사진촬영을 마친 ‘드론(Drone)’이 내려앉고 사고 없이 시운전을 종료했다. 다시 육지냄새가 바람에 날려 오는 조선소 안벽에 배를 접안시킨다. 한 시간에 걸친 접안을 끝내고 현측사다리 격인 이동 엘리베이터에 오를 때 심씨는 간호사 분의 캐리어까지 대신 끌고 나오며 한 쪽 눈을 찡긋했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면 내가 아는 국수집에서 막걸리나 한 사발 씩 합시다.”

누가 등을 쿡 질렀다. 아, 선주 측 그리스 젊은 친구. 그러고 보니 경미한 사고가 하나 있었네. 어느 위치, 어느 방 까지 일러주는 화재경보에 달려 내려가 보니, 샤워기 온수를 세게 트는 바람에 열감지기가 잘못 울렸다며, 팬티바람으로 더듬더듬 변명을 늘어놓던 이 친구가 잘 가시라는 듯 고개를 숙이는 동양식 인사를 한다.

조선소 곳곳에 조성된 미니 정원과 화단에 봄꽃들이 활짝 피었다. 배를 만드는 투박한 남자들의 가슴에도 봄이 찾아왔다. 봄은 기다려도 오고,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 셔틀버스에 올라타고 조선소를 빠져나오며 일주일을 같이했던 배를 돌아보았다.

잘 있어라. ‘처녀’여. 그대는 완벽한 ‘처녀’였다.

 

PROFILE  하 동 현 작가

부경대학교(구, 부산수산대학) 어업학과를 졸업하고 원양어선선장, 운반선 감독관을 역임하며 전세계 망망대해를 누볐다. '2016년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우수상(중편소설)'을 수상했고 한국해양문학가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