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② 벅수와 당산이 지키는 어촌마을
김준의 어촌정담② 벅수와 당산이 지키는 어촌마을
  • 김 준 박사
  • 승인 2018.04.1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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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현대해양] ‘꽃샘잎샘 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고 했다. 며칠 추위에 웅크리고 있던 바닷가 노인들이 골목에 나와 봄볕을 쬐고 있다. ‘당포성지’로 가는 길을 물었다. 좁은 길을 돌아 우물이 있는 곳에서 오른쪽 길로 올라가라한다. 이정표도 있으니 살피라는 말도 덧붙였다. 마을입구에서 이곳까지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허리가 꼿꼿한 노인들도 지팡이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삼덕리는 경남 통영시 산양읍에 속하는 마을이다. 미륵도 서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 초기에는 당포만호진이 설치되면서 번성한 마을이다. 통영시에 접어들어 통영대교를 뒤로 하고 ‘가는개’와 산양읍사무소를 지나면 곧바로 삼덕항으로 이어진다.

고려시대부터 성을 쌓아 왜적을 막았던 요충지이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대청, 원항, 남전 일부와 서면 관유을 합하여 삼덕리라 했다. 그리고 대청과 관유는 1구로, 원항과 궁항은 2구로 나누었다. 대청은 당포성 안에 있다 해서 성내라고도 하며, 오래전부터 당집이 있어 당개라 했다가 수군만호진이 설치되면서 큰 포구라는 당포(唐浦)라 했다고 한다.

당포성지에 바다를 보다
최근 복원한 성지에 이르니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장 가까운 섬은 곤리도와 쑥섬이다. 이 섬이 없었다면 당포는 수군진이 들어설 수 없었을 게다. 바다에서는 마을이 보이지 않고, 바다로 들어오는 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연대도처럼 봉수대도 있으니 대마도에서 들어오는 적들은 한눈에 발견할 수 있고, 곧바로 불과 연기를 피워 알릴 수도 있다.
성지 뒤로 희망봉(230m)과 미륵산(461m) 사이 골짜기에 꽤 너른 논밭이 있어 병사들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둔전도 갖추었다. 지금도 마을이름이 둔전으로 남아 있다. 더 조사를 해 보아야겠지만 세포리 쯤에 소금을 구웠던 곳도 있을지 모르겠다. 성벽을 따라 ‘한산대첩길’이 이어져 있다. 봄 햇살에 고개를 내민 쑥을 캐는 아낙네들도 몇이 보인다.
성지에서 본 물양장에는 자동차로 가득하다. 욕지도로 가는 여행객과 곤리도로 가는 낚시꾼들이 가져온 자동차들이다. 여기에 수산물 위판장이 더해 복잡하다. 앞바다에 빼곡하게 설치된  가두리에는 방어, 능성어, 우럭, 볼락, 돌돔, 감성돔, 참돔, 쥐치 등 다양한 어류가 양식되고 있다.

 

동백꽃 붉어지면, 멍게가 제철이다
내려오다 길을 성지를 알려준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 집터를 일궈 마늘을 심어 놓은 밭 가장자리에서 쑥을 뜯고 계셨다. ‘성은 다 돌아봤어요’라며 알은체를 했다. 도다리 한 마리를 얻어 국을 끓여 먹으려 뜯는다고 했다. 통영의 봄 제철 먹을거리는 도다리쑥국과 멍게비빕밥이다. 그런데 사실 도다리는 봄보다는 여름과 초가을이 제철이다.
산란 직전에 살이 올라 기름지다. 통영이나 사천 일대 어시장에서 보이는 도다리는 대부분 양식인 ‘강도다리’이다. 다른 지역보다 일찍 나오는 해쑥이 진짜 주인공이다. 여기에 산란 후 맛이 없는 도다리를 끼워 만든 상술이다. 그러면 어떤가. 시원하고 상큼한 국물이 당기는 것을. 또 보리밥도 인기다.
야채에 보리밥을 넣고 고추장을 넣고 비벼먹는 것이 보통이다. 산양 일대 보리밥은 톳과 미역 등 해초와 고사리, 콩나물 등 나물을 넣는다. 여기에 해물된장국과 가자미 구이가 함께 나온다. 비싸지 않고 맛도 괜찮다. 반주로 산양막걸리 한 잔이면 최고다.
당포에서 눈여겨 볼 것은 바다만 아니다. 도로 양쪽에 줄지어 선 동백이다. 날씨가 따뜻한 산양읍 해안도로 세포에서 삼덕을 지나 연명과 달아까지 동백 가로수가 이어진다. 늦겨울부터 시작해 봄까지 동백꽃은 피고 진다. 섬에 동백꽃이 만발하면 바다에도 멍게가 붉게 꽃을 피운다. 이때 멍게 맛이 제대로 오른다. 멍게양식이 통영을 대표하는 어업이 되면서 봄철이면 상큼함 멍게비빕밥이 인기다.
얼마나 다행인가. 통영을 대표하는 멍게와 도다리가 여행객에게 사랑을 받으니. 동백은 통영의 시목이고, 동백꽃은 통영의 시화다. 산양일주도로 가로수도 동백이다. 바다 건너 두미도, 연대도, 만지도, 곤리도, 추도에도 동백꽃은 이어진다. 통영에서는 동백씨 오일과 추출물로 화장품과 오일을 만들어 팔고 있다. 시장에서도 심심찮게 동백기름을 만날 수 있다.

 

남해 제해권을 굳힌 ‘당포해전’
1592년 오뉴월. 충무공은 1차 출전으로 옥포, 합포, 적진포에서 승리를 한 후 2차 출전에 나선다. 1차출전과 다른 점은 거북선이다. 사천해전에서 처음으로 거북선을 선보여 승리를 거두었다. 자신이 생긴 이순신은 도망친 적이 당포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량도에서 하루를 묵고 곧바로 당포로 향한다. 사천해전에서 왼쪽 어깨에 총탄을 맞아 부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지체할 수 없었다.

곤리도를 지나니 멀리 당포 앞에 대선 9척, 중선 10척, 소선 2척 등 전함 21척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당포성 안에는 왜병 300여 명이 분탕질을 하고 있었다. 곧바로 활과 총포를 적장이 탄 배를 공격했다. 그리고 거북선을 앞세워 전선으로 돌진을 했다.
거북선 아래 부분에 돌출장치를 장착되어 있어 적선 아래 부분을 손상시켜 침몰하게 하는 전술이었다. 적장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자 첨사 김완 등 군관이 적선에 올라 적장 목을 베었다. 전의를 상실한 왜군이 도주하고 왜선은 모두 격침시켰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당포해전이다.
1872년 만든 <당포진도>에는 수군만호진이 잘 그려져 있다. 원항마을 안쪽에 구당포라는 지명과 장군봉 그리고 곤리도와 쑥섬(애도, 艾島)도 표시되어 있다. 당시 당포는 고성에 속했다. 당포진성은 고려 말 왜구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최영장군이 쌓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1488년(성종 19)에 다시 축성을 했다.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함락되었다가 당포해전에서 승리하면서 되찾은 성이다. 사령청, 교청, 수부청, 사청, 포수청, 화교청, 화약고, 객사, 선소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① 벅수는 마을로 드는 액을 막는다고 믿었다. ②,③ 당포성지에 성벽을 따라 한산대첩길이 이어진다. ④ 봄 제철 먹을거리인 멍게 비빔밥 ⑤,⑥ 당포 앞바다와 마을전경 ⑦ 장군당 안 용마 ⑧ 해안도로로 동백나무가 이어진다.

왜구를 막은 벅수
당포마을에서 원항마을로 가는 길목에 당산나무와 벅수를 만날 수 있다. 산양해안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세포마을과 원항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있을 게다. 마을에서 만난 어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가파른 마을길이 눈이 와서 미끄럽고 오갈 수 없어도 집집마다 음식을 장만해 벅수 앞에 차려놓고 비손을 했다고 한다.
통영 벅수는 여수만큼이나 많다. 벅시라고도 하며, 장승이라고도 한다. 벅수가 마을로 드는 액을 막고 풍농과 풍어를 비는 대상이고, 장승은 이정표라는 설도 있다. 통제영 본부였던 세병관 석축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벅수 4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통영을 대표하는 문화동 벅수 외에도 삼덕리, 곤리도 등 섬과 어촌에 주목을 받지 않는 벅수들이 꽤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삼덕리 당포마을과 원항마을 벅수다.
당포마을 벅수도 이순신과 무관치 않다. 왜군에게 살해된 당포마을 한 사내는 견내량 전투를 앞두고 당산나무 아래에서 무녀를 만난다. 누이를 닮은 무녀, 그곳에서 죽임을 당한 누이 한을 풀 수 있도록 부탁한. 다음날 이순신을 따라 전투에 참여한다. 무녀는 혼신을 다해 기도를 하고 필인은 누이의 한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온 힘을 다해 기도를 하면서 무녀는 돌로 변해가고, 적군을 무찌르고 승리를 앞두고 사내는 화살이 맞아 돌처럼 굳어 간다. 그 후 둘은 벅수가 되어 당산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당포마을 할매할배 벅수이야기다. <산양읍지>에 ‘전설과 이야기’ 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지금은 돌벅수지만 옛날에는 나무벅수였다. 장군봉에서 소나무를 깎아 벅수를 만든 후 왜구가 침입하지 않았다는 영험함도 전한다.

 

할매벅수, 코가 사라진 이유는?
산양읍에서 당포항으로 넘는 고갯마루에 갓난아이만한 키의 벅수가 길 양쪽에 세워져 있다. 1915년 임봉학이라는 사람이 아들을 낳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한다. 아들을 낳는 영험함이 소문이 나서 코가 성할 날이 없었다. 아이를 원치 않는데 임산부는 벅수의 눈을 갈아서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할매벅수 눈과 코는 할배벅수보다 마모가 심하다. 사별을 한 여자가 재혼을 하면 벅수 앞에 신발을 놓아두면 죽은 남편 영혼이 따라오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지금은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마을지킴이가 되었다. 장군봉 쪽에 있는 벅수는 관을 쓰고 있고, 당포성지 쪽에 있는 벅수는 민머리다. 그래서 관을 쓴 벅수를 할배벅수, 맞은 편 민머리 벅수를 할매벅수라 한다. 할매벅수 앞을 보니 최근에 제를 지낸 흔적이 있다. 종이를 깔고 그 위에 ‘제웅’이 몇 개 놓여 있다. 짚으로 만든 사람 형상이다.
그 유래를 신라시대 역신 처용에서 찾기도 한다. 집안 식구 중 삼제가 들거나 나쁜 기운이 있으면 액막이로 제웅을 만들어 정월 보름 전날 밤 길이나 다리 밑에 버리기도 했다. 이를 제웅치기라고 한다. 제웅에 동전을 넣어 버리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제웅을 받아 동전을 갖고 제웅은 길에 버리는 것이다. 고갯마루 벅수가 있는 곳이야 말로 제웅치기 적당한 곳이었다.

 

장군봉에 오르다
벅수가 있는 월항마을 고갯마루 서쪽으로 갑옷에 투구를 쓴 장군처럼 위엄스런 바위가 있다. 지명도 장군봉이다. 그곳에는 천제와 장군제를 지내는 제당이 있다. 바다에서 보면 더욱 그 모습이 더욱 또렷하다. 장군당에는 나무로 만든 크고 작은 두 마리 말을 신체로 모시고 있다. 용마다. 그래서 장군당에 모시는 제의를 용마제라고도 한다.
원래 철마가 있었지만 도둑을 맞고 난 후 나무로 만든 것이고 작은 것은 1930년대 이곳에서 어장을 하던 일본인이 풍어를 기원하며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벽에는 칼을 들고 갑옷과 투구를 쓴 장군 그림 두 점이 걸려 있다. 장군당 옆에 천신당이 있다. 이곳에는 호랑이 곁에 앉는 산신과 복숭아와 호리병이 묶인 지팡이를 든 여인이 노송을 배경을 서 있다.
옛날에는 장군봉에서 천제와 장군제를 지낸 후 마을로 내려오다 중간에 잡신제를 지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벅수제와 당산제와 별신제를 지냈다. 벅수제는 집집마다 상을 차려 벅수 앞에 차려놓았다. 당산제를 지낸 후 마을 앞마당에서 용왕에 지내는 제의가 별신제다.
당포마을과 원항마을 모두 이렇게 민간전승 신앙이 지속되었다. 당포마을은 지금도 스님을 모셔다가 마을제의를 지속하고 있다. 장군당과 천제당, 큰 용마와 두 마을의 벅수는 우리나라 농어촌 동제신당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으로 경상남도 중요민속자료로 등록되어 있다. 통영 출신 탁연장군은 장군봉에 목책을 두르고 주둔하며 바다에 솟은 바위(여)에 깃발을 달고, 어선들을 배치해 많은 병선이 진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 적을 속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장군봉까지는 1㎞이 미치지 않는 짧은 거리지만 오르막이라 30여 분은 잡아야 한다. 중간에 돼지바위로 가는 갈림길이 있지만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붉은 동백꽃, 연분홍 진달래, 노란 생강나무 꽃, 보라색 현호색과 제비꽃 등 봄꽃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장군봉 아래 도착한다. 정상은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그 위에 제당이 있다.
줄을 잡고 오르고 가파른 바위를 타고 오르기도 해야 한다. 정상에 오르면 잘 단장된 두 개의 당집이 눈에 들어온다. 장군당에 들기 앞서 바위를 등지고 보는 당포 앞바다가 좋다. 당포과 월항마을, 삼덕항, 곤리도, 연대도 그리고 멀리 욕지도까지 펼쳐진다. 봄에 찾기 좋은 마을이다.

 

PROFILE 김 준

어촌사회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고, 지속가능한 어촌과 어업, 주민이 행복한 섬마을과 지속가능한 섬살이에 관심을 갖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섬정책, 어촌정책, 지역관광, 지역문화 정책을 마련하는 일을 하고 있다. 쓴 책으로 섬살이, 섬문화답사기, 어촌사회학, 바다맛기행, 어떤 소금을 먹을까, 물고기가 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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