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현의 양망일기
하동현의 양망일기
  • 현대해양 기자
  • 승인 2018.03.0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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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바다의 덜미를 잡아 

마닐라삼으로 던져 올려 

그의 허리춤을 풀고

아랫도리를 까 내리려 하지만 

끝내 급소는 보지 못해 

생채기만 남기고 

바다는 한 숨 돌린 후 

다시 뻣뻣하게 누워있다.

 

‘조업(操業)’인지 ‘양망작업’ 이었던지 지금은 제목도 어렴풋한 대학 원양실습선에서 첫 투망했던 때 끄적인, 이게 시가 되는지 막걸리가 되는지 같잖은 글이 있다.

단지 그물의 전개 상황만을 보기위해 안전한 수역에서 한 번 던져봤던 그물이기에 결과는 그야말로 ‘헛방’ 이었는
데, 그때만 해도 어렸던 터라 감상에 젖어 바다를 범접하지 못할 거대한 절대치로 보고 인위적인 도전의 한계나 인간의 나약함 어쩌고 이런 걸 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 뒤 20년 가까이 바다는 나에게 거룩한 밥줄이었다. 바다에서의 청춘은 고달프고도 황홀했다.

 

작년 7월 중순이다.

장마끝자락의 잔뜩 찌푸린 날, 새벽잠을 설치며 시외버스로 부산에서 거가대교를 통해 도착한 거제도 고현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루에 몇 번 없다는 43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른바 출강이다. 해수부와 한국어촌어항협회가 양성하는 ‘바다해설사’ 역량강화교육에 ‘바다와 인문학’이라는 주제의 강의였다.

생활수준 상승의 이면에 숨은 각박한 경쟁사회에 지쳐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바다와 어촌, 어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생태, 자연, 그리고 문화자원을 안내하는 전문해설인력을 양성한다는 취지에 백번 공감했다.

젊은 날 원양어선 선장과 냉동운반선 감독관으로 바다에서 보낸 시간이 짧지 않았고, 어쩌다 해양문학가라는 과분한 호칭을 얻은 것 외에 딱히 내세울 것도 없는 깜냥에 주제넘게 이를 수락한 것은 거창한 학술이나 연구의 성과를 견주는 자리가 아니라, 허심탄회하게 바다에 깃든 정서 같은 것들을 이야기해 보자는데 마음이 끌렸다고나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바다를 사랑하고 알리려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음에랴.

목적지는 ‘계도어촌체험마을’이었다. 삼성조선단지를끼고 제법 규모가 있는 도심을 벗어나 꼬불꼬불 뱀처럼 휘어 흐르는 비좁은 해안도로를 돌았다. 금포, 성포, 명칭만으로도 자그마한 포구를 연상시키는 바다가 품은 마을들을지났다. 버스는 가조연육교에서 좌우로 탁 트인 바다를 보여줬다가 34번 째 정류장에서 나를 떨어뜨렸다.
강의는 즐거웠다. 누구에게는 생활의 터전이며 과학적이고 문학적이었다가 심지어 철학적인 공간이기도 한 바다라는 공감대를 소수정예로 모인 분들과 나누는 자리였으므로.

문학작품 속에서의 바다로 문을 연 도입부가 지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어느 분이 선박운항개념에 문외한임을 밝히고 진지하게 물었다. 망망대해라 칭하는 그 넓은 바다에서 배들이 충돌이나 침몰사고가 일어나는 이유를 알고 싶다고. 뱃놈시절부터 자주 받았던 물음이다.

답은 간단하다. 어선들은 어장에서 즉, 고기를 잡기위해 모여든 좁은 지역에서 조업하거나 항해해야하기에 과밀집적 형태를 이루고, 상선들은 출발지와 목적지를 해도에 선으로 그을 때 나타나는 최단거리 즉, 기름을 가장 아낄수 있는 경제적 거리는 단 하나의 선으로 나타나는데 그걸 항로라 하고, 모든 상선들이 그 길만을 지나기에 파도나 조류의 영향을 받는 등 사고의 위험이 상존하는 것이라 말했다.

이러구러 이야기는 당초의 강의방향을 엇 비켜 나가 ‘세월호’와 ‘타이타닉호’의 침몰로 연결 돼버렸다.

우리 모두에게 아픈 상처이며 되돌아보는 것도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이야기지만, 입에도 담기 거북한 희생이니 제물이니 믿기 힘든 주술적인 분석까지는 제외하고, 전 국민이, 삼척동자라도 눈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보고 들어 이해하게 된 합리적인 조사결과는 이렇게 요약된다. 불법 수리 및 증축에 따른 총톤수 증가와 좌우 불균형, 사고당일 최대 화물 적재량의 2배에 달하는 과적, 선체 복원에 필요한 평형수 등의 감축, 관계 법령에 따르지 않은 방법으로 차량과 컨테이너를 부실하게 고박함으로 인한 복원성 악화.

여기에 협수로를 통과할 때 조선책임이 있는 선장이 선실을 이탈하고 항해사와 조타수가 과도하게 변침하는 등 선원들의 중대한 과실이 더해진 것들.

그러나 세월호가 왜 급 변침을 하게 됐는지, 구조당국은 세월 호 침몰 후 왜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등에 대한진상규명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아무도 그날의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다. 그날의 그 바다만이 알고 있을 런지. 진실에 대한 논의와 함께 계속 규명하고 고민해야 할 과제가 되어버렸다.

품안의 곱디 고왔던 딸을 잃은 한 어머니의 글이 있었다.

원문 그대로가 맞는지 토씨가 틀렸는지는 자신 없으나 어떤거장의 글에 못지 않는 울림을 주며 내가 바로 암송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글 중의 하나가 돼버렸다.

준비했던 내용은 어디로 가버리고 난데없이 강의 중에 모두 같이 이 글을 읽게 됐다. 수강생 여자 분들이 눈물을 삼켰다.

 

너는 돌 때 실을 잡았는데 

명주실을 새로 사서 놓을 것을 쓰던 것을 

놓아서 이리되었을까. 

엄마가 다 늙어 낳아서 오래 품지도 못하고 빨리 낳았어. 

한 달이라도 더 품어 낳았으면 사주가 바뀌어 살아났을까. 

엄마가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다.

몇 푼 벌어보겠다고 일하느라 

마지막 전화 받지 못해 미안해 

엄마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해

없는 집에 너같이 이쁜 딸 낳아서 미안해 

엄마는 지옥 갈게 딸은 천국 가.

 

사고가 났을 때 내가 가장 아쉬워했던 것은, 모든 여객을 상대로 단 한 번만이라도 족했을 비상대피요령 전달이 빠졌다는 것을 들고 싶다.

고백하거니와 내가 현업에 종사할 때도 정기적으로 가상의 비상대피훈련을 할 때 구명정을 터뜨려 직접 승선하는 훈련까지는 하지 않았다. 단지 각 개인들이 비상탈출 시자신이 올라야할 구명정의 숫자와 위치를 확인하고 신속히 비상물품들을 소지하고 그 앞에 집결하는 훈련으로 그쳤다.

어린 학생들에게 구명정을 띄우고 직접 운전하라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일시적인 선박 시운전 관련 일을 위해 나도 구명정 조종사 자격을 얻었듯이 숙련된 선원들 중에는 구명정 조종사가있었을 것이고, 출항 즉시 딱 한번만이라도 이 부분을 숙지시켜 매뉴얼대로 대피시켰더라면…또 하나 ‘타이타닉호’의 침몰 건이다.

영화 ‘타이타닉’은 침몰하는 배에서의 가슴 미어지는 이루지 못할 사랑,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았던 악사들의 연주, 극한상황에서 마주치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내면에 숨겨진 선과 악의 대비 같은 것들을 엮은 영화로 공전의 히트 를 기록했다.

거친 파도나 풍랑이 없는 잔잔한 밤, 빙산과 충돌하며 일어난 참사는 아직도 그 침몰원인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된다. 선박공학적 접근은 주지의 사실들이라 제외하고 야사(野史)적인 면에서만 보더라도 경이로운 이야기들이 차고 넘친다. 전임항해사가 휴가를 떠나며 망원경이 보관된 창고의 열쇠를 인계하지 않아 항해사들의 견시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로 시작해, 선주가 보험금을 노리고 다른 배로 대체해 일부러 침몰시켰다든지, 저주가 깃든 고대이집트 성직자의 미이라를 누군가가 은닉해 실었다는 둥 어쩌고. 예컨대 이런 것.

‘호소노 마사부미(細野正文)’라는 일본인은 타이타닉호에 탑승했다가 탈출 때 여성과 노약자를 우선 배려 해 대피시키려는 사관들의 통제를 무시하고, 사람들을 밀쳐내며 구명보트에 올라탄 비열한 일본인으로 낙인 찍혀 불행한삶을 살았다.

구조 후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행운의 일본인’으로 불리다가 얼마 후 같이 퇴선 했다는 어느 영국인에 의해 잡지에 그의 이야기가 실리면서 ‘치욕적인 일본인’으로 추락해 평생 비난 속에 살면서도 변명 한마디 없이 침묵을 지켰다.

저명한 음악가라는 손자가 그가 직접 쓴 일기를 발견하고 명예회복을 위해 오랜 시간 백방으로 노력했다. 또 다른 어느 생존자의 회고가 당시 상황에 대한 그의 기록과 일치했다. 정당한 절차로 구명보트에 올랐으며 같이 노까지 저었다는 동승자의 기록으로, 유일한 일본인 승선자였던 그말고 10명이 승선한 중국인과 착각이라는 설로 종결되며이 일본인은 60년 만에 누명을 벗는다.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3 바다와 연관된 인간세상의 모습들은 바다의 다양한 장르만큼이나 수많은 형상을 지닌다.

자본의 야욕에서 비롯된 해난사고가 연이어 일어나고, 맹목적인 남획으로 어장을 상실하고 ,문명과 개발의 부산물인 산업쓰레기들이 모여 ‘플라스틱 아일랜드’로 대양에 떠있다. 희뿌연 전쟁의 포연으로 지구 곳곳의 바다는 인간의 욕망에 사로잡혀 끝을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의 불안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바다는 속살을 쉬 드러내지 않는다. 오늘의 바다는 다시어제의 바다가 아니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 을 담고 있다.

우리는 끝도 없이 바다에 말을 걸고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지만 그 의미를 알기는 어렵다. 설움과 원망, 한도 담겨있을 것이고 절대적인 사랑도 있을 것 같다.

“지구상에 육지와 구분되어 짠물이 괴어있는 넓고 큰 수역.”

바다개척에 대한 학문이 주를 이루는 대학을 운명으로 택했던 까마득한 시절, 처음 사전에서 바다를 찾아보고 피식 웃었던 게 생각난다.

프랑스 시인 으젠느 기유빅은 ‘나는 알고 있다’에서 이렇게 바다를 이미지화한다.
“어부와 항해사 그리고 수병들의 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기를 원하는 인간들의 바다.”

첫째는 산업적인 분류개념으로 직업, 밥줄의 의미가 있을 것이고, 두 번째는 섬뜩하고 거칠게 표현했지만 생명의 기원이 바다라는 의미와 함께 아마 어머니같이 우리를 품어주는 서정을 이입해 다시 돌아갈 곳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무한한 가능성을 그저 아득한 새벽의 여명처럼 보여주던, 내가 만났던 바다와 그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4오래 전이다. 돌아가신 외숙부가 병원에 누워 계실 때 눈물 많기로 소문 난 외가 식구들이 들락거리며 울어재끼자 저 옆자리 덩치 큰 사내가 시끄럽다고 불만이 많기에 욱해서 한 판 엉겼다. 사태가 심각 한줄로 아신 외숙모께서 우리 장조카가 생긴대로(?) 원양어선 출신인데 하며 거들자 이 친구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음마. 어째야 스까. 별것도 아니구마 나가 쬐까 흥분 했는갑소.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요 잉. 그란데 선상은 뭔 배라고라? 나야 원양 떠돌다 시방 고데구리서 썩고 있다 안허요. 인자부터 신경 쓰덜말고 실컷 우시라요. 언제 쇠주 한 병 갔고 오시오. 보다시피 난 나이롱인게 식사때 한잔 같이 찌끌어 부러야제. 한 번 뱃놈은 영원한 뱃놈 아니겄소 잉.”

단언컨대 세상 남자는 두 부류다. 바다를 아는 남자, 그리고 육지의 남자.

 

PROFILE  하 동 현 작가

부경대학교(구, 부산수산대학) 어업학과를 졸업하고 원양어선선장, 운반선 감독관을 역임하며 전세계 망망대해를 누볐다.
'2016년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우수상(중편소설)'을 수상했고 한국해양문학가 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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