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① 보물선, 어촌마을에 보물이 돼야 한다
김준의 어촌정담① 보물선, 어촌마을에 보물이 돼야 한다
  • 김준 박사
  • 승인 2018.03.0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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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검산리)
▲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검산리)

[현대해양= 김준의 漁村情談] 1975년 8월 어느 날, 검산리 앞 바다에서 최씨 성을 가진 어부가 그물을 올리다 청자꽃병 도자기를 발견했다. 최씨는 이 청자를 집에 두고 술병으로 사용하려다 감정을 의뢰했다. 그 당시 시가 10여만 달러에 이르는 원나라 초기나 송나라 말 청자였다. 신안 보물선은 그렇게 알려지기 시작해 수중발굴이 이뤄져 2만여 점의 유물과 고선박이 700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되었다.


조용한 어촌마을, 새바람이 분다

검산리는 오산리 함께 방축리에 속하는 마을이다. 30여 가구가 증도 서쪽 임자도와 재원도를 바라보며 아담하게 자리 잡았다. 마을에 들어서면 한옥집과 모던한 새로 지어진 집들이 눈에 띤다. 여행객 숙박용 펜션으로 지은 집은 두 가구뿐이며, 모두 가정집이다. 

옛집은 마을 가운데 불과 너댓집에 불과하고 모두 리모델링하거나 신축을 했다. 지금도 몇 가구가 집을 보수하거나 새로 짓고 있다. 마을로 접어드는 길목에 오가는 사람의 주목을 받지 않는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임신방액석(壬申防厄石)’이다. 돌에 새겨진 대로 액을 막기 위해 임신년에 세운 돌이다. 

어느 해 임신년인지 알 수 없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큰 검산에 주민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았는데, 병자년에 돌림병이 들어 주민들이 많이 죽자 시신을 마을 앞 백사장에 묻었다. 그리고 검산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또 ‘검산은 원래 만들이라 불렸는데, 도적이 자주 들자, 노승의 제안으로 검산으로 바꾸고, 방액석을 세웠다’고도 전해진다.
실제로 검산리에는 ‘만들독살’이 있다. 

마을 앞 ‘대단도’라는 무인도와 큰 여 사이에 돌을 쌓아 물길을 막았다. 명덕섬과 대단도 사이로 들어온 바닷물이 독살을 지나 소대단도로 빠져나간다. 이때 함께 들어온 물고기가 독살에 갇히게 된다. 일제강점기에는 만돌독살이 매매되기도 했다. 당시 증도 방축리 이씨가 증동리 이씨에게 독살을 매매한 문서가 남아 있다. 특이한 것은 전라남도 도지사에게 보낸 문서라는 점이다.  

2007년 12월, 완도 청산, 담양 창평, 장흥 유치 등 네 곳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는 햄버거 등 패스푸드의 진출에 반대한 슬로푸드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지역의 생태 자원과 전통문화를 보전해 지속가능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증도가 슬로시티로 지정되는데 물심양면으로 큰 역할을 한 것은 태평염전이었다. 

또 다른 변화는 증도대교 개통이다. 2010년 다리가 완공되면서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슬로시티와 다리 개통 전 여행객 연 3만여 명에서 지금은 100만 명에 이르러 신안을 대표하는 여행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여름철에는 섬이 수용하기 어려운 여행객이나 피서객이 들이 몰려들어 쓰레기로 몸살을 앓기도 한다.


기억해야 할 오래된 어촌문화, 초분

▲ 신안해저유물인 중국 원나라 청자와 관련 신문기사

10여 년 전만 해도 검산리는 전형적인 어촌마을로 오래된 어촌문화가 남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초분이다. 마을앞, 지금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지만 그곳에 초분 한 기가 있었다. 

영광 송이도나 낙월도, 신안 비금도와 도초도, 완도 청산도 등 뭍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섬에서 최근까지 확인되었지만 뭍에서 지척인 곳에서 확인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당시 방축리에만 몇 개의 초분이 있었다. 그 뒤 초분은 본장(매장)을 하면서 없어졌다. 그리고 증도초분에 대한 기억이 사라질 무렵 증동리 사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마을에 초분이 하나 생겼다는 것이다.

증도는 90% 이상이 기독교인이다. 문준경 전도사 순교지이며 기념비가 있는 곳이다. 초분은 말할 것도 없고, 염전에서 소금고사를 지내려다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다. 그런데 새로 초분이 만들어졌다니. 사연인즉, 망자의 가족들이 시신을 마을 뒤 선산에 매장을 하려는데 주민들이 ‘산송장’이 바로 마을을 지나 산에 묻히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가족들은 인근 밭에 초분을 한 후 매장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초분은 돌이나 짚을 깔고 그 위에 관을 두고 상부에 이엉으로 덮고 풀이나 나뭇가지를 얹는다. 초빈, 고빈, 빈소, 출빈, 촐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시간이 흘러 육탈이 되면, 길을 택해 초분을 헐고 유골을 모아 매장하는 것을 ‘원장’, ‘본장’이라고 한다. 본장을 하지 않고 관의 상부에 짚이나 나뭇가지만 새로 갈아주기도 한다. 초분은 정월에 초상이 났을 경우나, 좋지 않는 일로 화를 당했을 경우, 부모보다 먼저 자식이 죽었을 경우, 객사를 해 산송장으로 선산에 들어가지 못할 경우 등의 이유로 만들어 진다.

▲ 일제강점기 사고 팔기도 했던 만득독살


‘검생이’에 전시관이라도 있어야

지난 해 여름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이라는 기획전시가 있었다. 전시라기보다는 쌓아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유물이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그 동안 수장고에 보관되어 연구자들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유물들이었다. 모두 방축리 앞 검산 마을어장에서 나온 유물들이다. 그 동안 간간이 특별전이 있었지만 이렇게 대량으로 유물이 전시된 것은 발굴 40여년 만에 처음이다.

해저유물이 확인되기 전, 어부들은 물고기 대신 깨진 그릇이 걸려오면 재수 없다며 바다에 던져버렸다. 간혹 온전한 것들은 가끔 건져와 개밥그릇으로 사용하곤 했다. 도굴꾼들은 주민들보다 더 일찍 그 가치를 알았다. 주민을 꿰어 유물이 올라온 곳을 확인해 도굴했다. 일부 주민들은 도굴에 직간접으로 관련되면서 경찰조사를 받는 등 큰 고초를 받기도 했다. 당시 신문에 도굴단 검거가 큰 뉴스가 되기도 했다. 또 조용한 어촌마을에 보물이 발견되면서 벌어진 일이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김성환, 하희라, 김영애, 윤여정 등 배우들이 출현한 ‘검생이의 달’이다. 조용한 섬마을에서 벌어지는 보물소동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탐욕과 애증을 그린 드라마다. 방축리 검산마을을 배경으로 그려졌다. 처음해저유물을 발견한 검산리 최씨 집 앞에는 ‘검생이의 달’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보물선으로 널리 알려진 ‘신안선’은 8개 선실과 7개 격벽을 갖춘 V자형 선박으로 100여 명이 탈 수 있는 무역선이었다. 1323년 경원항(현 닝보)을 출발해 일본으로 가기 위해 중국 동해 연안을 따라 북상하여 산동지역에서 우리나라 서해 연안을 따라 내려오는 중이었다. 제주도 부근에 이르러 폭풍을 만나 침몰해 조류를 타고 신안군 증도면 검산리 앞 도덕도 갯벌에 묻힌 것이다. 

이 보물선은 발굴된 후 ‘신안선’이라는 이름을 붙여 목포시에 위치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전시되었다. 나머지 2만여 점의 유물은 대부분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전시되고 있다. 아쉽게 유물이발굴된 곳에서 가장 가까운 검산리에는 비석만 하나 세워져 있을 뿐 흔적을 확인할 길이 없다. 

▲지역의 대표음식 짱뚱어탕

증도에 다리가 놓이면서 일 년이면 수십만의 여행객이 검산리를 찾지만 기념비와 바다만 쳐다보고 돌아갈 뿐이다.

증도를 찾는 여행객들은 대부분 이정표를 보고 검산리에있는 ‘신안해저유물기념비’를 찾아오곤 하지만 그곳에는 달랑 기념비만 있다. 몇 년 전부터 전시관 건립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부지만 마련했을 뿐 진전이 없다. 설령 예산을 마련해 짓는다고 해도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전시품도 없는 전시관이 되고 말 것이다. 

그 흔적을 확인하려면 한 시간 이상 자동차로 달려 목포에 위치한 해양문화재연구소로 가야 고선박 ‘신안선’과, ‘자단목’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이 대여해 준 일부 유물을 볼 수 있다. 미래세대에 남겨줘야 할 어업유산들 기념비를 살펴보고 나오다 만들독살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길을 멈췄다. 바닷가에 걸린 생선이 발길을 막았다. 제법 큰 황가오리, 농어, 숭어, 우럭이 꾸덕꾸덕 마르고 있었다.

몇 년 전 검산항에서 병어를 잡는 고기잡이 배를 탄적이 있다. 도덕도 앞에서 임자도와 재원도에 이르는 바다는 봄철이면 병어, 여름철이면 민어가 많이 잡히는 황금어장이다.이곳은 검산리 섬주민만 아니라 물론 무안의 해제, 망운 일대의 어민들도 그물을 놓는 곳이다. 주변에 갯벌이 발달해 산란과 서식에 좋은 환경이다. 당시 상당한 양의 병어와 갑오징어까지 잡았다.

최근 검산리는 김 양식이 활발하다. 도덕도에서 나루구지에 이르는 마을어장은 김발로 가득하다. 최근 들어 중국은 물론 동남아로 김 수출이 활발해지면서 김 양식은 확산되고 있다. 이곳 김 양식은 모두 지주식이다. 굴곡도가 큰 리아스식 해안에다 도덕도를 비롯해 작은 무인도가 해안을 따라 위치해 안쪽에 갯벌이 발달했다. 뿐만 아니라 증도, 사옥도,병풍도, 화도 등 큰 섬들이 모여 있어 넓은 갯벌이 형성되었다. 이들 갯벌은 모두 마을어업을 하는 공동어장이다. 김 양식도 역시 공동어장에서 이루어지는 양식어업이다.

이러한 증도갯벌은 습지보호지역이다. 국내에서만 아니라 람사르습지, 유네스코생물권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국제적으로도 알려진 갯벌이다. 최근에 갯벌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신청서를 제출해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펄갯벌, 모래갯벌, 염전, 염습지 등 다양한 경관과 농게, 짱뚱어 등 저서 생물의 서식지와 두루미, 저어새, 도요 등 희귀조류들이 찾는 곳이다. 이렇게 어민의 생업활동만 아니라 갯벌생물과 물새들이 찾는 중요한 연안습지로 염전과 함께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다.

▲ 증동리에 있는 초분


검산리 어촌여행 Tip

증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태평염전이 있는 곳이다.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 대동염전과 함께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문화재이다. 자유당 정권시절 정치자금을 댈 정도로 뻘이 좋았던 이곳 염전은 1953년 피난민을 정착시킬 목적으로 전증도와 후증도을 연결해 만들었다. 

염전은 140 만평으로 4ha씩 66개로 구분되어 있다. 오래된 소금창고를 리모델링한 소금박물관과 소금가게 그리고 소금레스토랑이 볼 만하다. 우전해수욕장, 한반도 모양의 해송숲, 노두로 연결된 화도, 짱뚱어 다리 등 둘러볼 곳이 있다. 화도는 ‘고맙습니다’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가 높았던 곳으로 한옥펜션 등 숙박시설이 갖춰져 있다. 

증도에는 엘도라도리조트 외에 숙박시설이 충분하며, 먹거리로는 짱뚱어탕, 낙지비빕밥, 꽃게탕, 우럭탕, 백합탕 등이 있으며, 계절에 따라 민어, 농어, 병어, 숭어 회를 즐길 수 있다.

▲ 김준

 

PROFILE 김 준

어촌사회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고, 지속가능한 어촌과 어업, 주민이 행복한 섬마을과 지속가능한 섬살이에 관심을 갖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섬정책, 어촌정책, 지역관광, 지역문화 정책을 마련하는 일을 하고 있다. 쓴 책으로 섬살이, 섬문화답사기, 어촌사회학, 바다맛기행, 어떤 소금을 먹을까,
물고기가 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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