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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회, 귀어귀촌 이야기 - 제주 서귀포시 해녀 이사랑 씨제주 바닷속에서 보람캐는 ‘아기해녀’
  • 최정훈 기자
  • 승인 2018.02.07 14:46
  • 호수 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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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서울에 살던 이사랑(34) 씨는 카지노 딜러를 하기 위해 제주 관광대 카지노 경영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지난 2006년 제주도에서 카지노 딜러 생활을 했다. 그러나 1년을 겨우 넘기고 그만뒀다. 당시 제주도에 8개의 카지노장이 있었지만 경기부진으로 카지노 업계가 인건비도 못줄 정도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후 다른 일을 찾아 다시 서울로 올라갔고, 그 해 결혼을 했다. 이 씨는 결혼 후에는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지난 2012년, 남편의 권유로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해 1년 만에 자격증을 획득했다. 카지노는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공인중개사는 평생직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자격증 취득 후에는 경험도 쌓을 겸 아파트 상가 중개사 사무실에서 공인중개사 일을 1년 쯤 했다.

하지만 이 씨는 그 무렵 어이없게도 보이스피싱을 당해 600만 원을 허공에 날리고 말았다. 그 때 문득 “돈을 모아서 무엇 하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적으로 지쳤고 서울생활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자영업을 하던 남편도 10여 년 전에 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휴양 겸 제주도에 가서 살아볼까’라는 말이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려왔다.

때마침 살던 집의 전세기간이 만료돼 전세를 월세로 바꾸겠다는 집주인의 이야기를 듣고는 더 이상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제주도 행을 결심했다. 여기에 제주도에서 대학을 다닐 때의 좋은 추억도 결정을 하는데 한 몫을 했다.

지난 2014년 5월, 전세금 4억원을 가지고 제주시 한림읍으로 이사했다. 2억 원을 들여 150평 대지평에 30평정도의 단독주택을 구입했다. 그런데 겨울로 접어들자 집이 너무 추워 견디기 어려워 7개월 만에 집을 다시 팔고, 숲이 많고 자연환경이 좋은 지금의 서귀포시 호근동으로 옮겼다.

그 후에는 제주도에 온 목적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이 씨는 2년 동안을 쉬다보니 몸과 마음의 안정은 찾았지만,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색달 앞바다. 입수한 해녀들이 태왁을 안고 깊은 곳으로 가고 있다.

 

해녀학교 졸업 후 진짜해녀가 되다

어느 날 신문을 보던 남편이 법환해녀학교 신문모집 공고를 보고 이곳에 응모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남편은 법환해녀학교는 바로 옆 동네였고, 이 씨의 활동적인 성격을 고려해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이 씨는 해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호기심이 생겨 물놀이를 겸해서 한 번 해보자고 입학을 했다. 2개월 동안 주말에 이론과 실습교육을 받았다. 실습을 하면서 해녀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난 2016년 7월, 해녀학교 졸업 후,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희망어촌계를 지원했지만, 받아주는 어촌계가 없었다. 해녀학교 교육을 받았다고 바로 현장에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녀학교와 서귀포 시청, 각 어촌계가 협의해 해당 어촌계가 필요로 하는 해녀를 신청해야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해녀학교 측에 아무 곳이라도 이사를 갈 수 있으니 어디든지 연계를 좀 해달라고 신청을 해놓았다. 그후, 시청으로부터 색달어촌계로 갈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 이 씨는 앞으로도 문화유산을 이어가는 해녀로 살길 바란다.

 

색달어촌계 새내기 해녀로

지난 2016년 10월부터 색달어촌계에서 이 씨는 본격적인 물질을 시작했다. 외지에서 온 새내기 해녀를 삼촌(제주도에서 남, 녀를 가리지 않고 윗사람을 일컫는 말)해녀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해 줬다. 어촌계장과 삼촌들은 이 씨에게 자신들이 사용하던 태왁이나 망사리 등 잠수 장비를 물려주며 용기를 북돋아 줬다.

그러나 힘들 때도 많았다. 추울 때, 파도 칠 때, 조류가 심할 때는 힘든 물질을 하면서 억척같이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아갔다.

다른 어촌계는 물때에 맞춰 입수와 출수시간을 조정하지만, 색달어촌계는 장사하는 어촌계라 물때와는 상관없이 일찍 물에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그날 잡은 해산물은 그날 팔아야하기 때문이다.

색달어촌계의 해녀 수는 20명이고 그 중 실제로 잠수를 자주하는 해녀는 14명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색달어촌계도 노령화로 해녀수가 많이 줄었다. 색달 어촌 계장 강명선(65)씨는 “우리 어촌에는 70대, 80대가 많고 60대는 몇 사람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씨가 가장 젊은 아기해녀다.

삼촌해녀들과 처음으로 바다에 들어갔을 때는 학교에서 실습할 때와는 많이 달랐다. 실습할 때는 바다 속의 고요함과 적막함이 좋아 그 걸 즐기기도 했는데, 실제 물질에서는 해산물을 찾다보니 그럴 겨를이 없었다. 처음 소라 잡이를 나갔을 때는 소라가 바위 색과 같아 찾지 못했다. “얼마나 더해야 내 눈에 소라가 잘 보이나”하며 처음에는 실망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잡지 못했을 때마다 어촌계장이 1, 2만원을슬쩍 손에 쥐어 주며 용기를 내라고 했고, 삼촌들도 처음엔 다 그렇다며 딸같이 다독거리며 위로해줬다.

이곳 해녀들은 소라, 성게, 해삼, 전복, 문어 등을 잡아 해녀의 집 앞 난장에서 관광객들에게 판매한다. 그날 잡아 판매한 수익은 자신의 몫이다. 이 씨는 초기에는 하루 수익이 2~3만원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7~8만원으로 올랐고, 많을 때는 20만원을 올리기도 해 해녀일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한다. 연중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가 수익이 가장 많이나는 시기다. 연봉으로 따지면 800만원 정도로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돈보다도 자신이 제주 해녀삼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물질하고 있다는 현실에 감사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서귀포 수협 조합원이지만, 아직 색달어촌계 계원은 아니다. 이 씨는 내년 초 쯤에 어촌계원으로 가입되면 공동 작업으로 소득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 아기해녀 이사랑(왼쪽) 해녀를 챙기는 강명선 어촌계장. 엄마와 딸 같다.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 유산 등재

지난 2016년 12월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 관계자는 “제주해녀문화는 특유의 공동체 의식, 지역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고,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며, 관련 지식과 기술이 공동체를 통해 전승된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강명선 색달어촌계장은 해녀들의 고령화로 이런 해녀 문화가 사라질지 모른다며 걱정한다. 해녀가 없으면 어촌계도 존재할 수 없다.

공기통 등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맨몸으로 물속에 들어가 자신이 머물 수 있는 만큼 머물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 제주해녀의 이런 물질 기술과 지혜는 공통체를 통하고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딸에게로 전승돼 왔다.

이 씨는 사라져 가는 제주해녀의 이런 전통을 자신이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씨의 심성과 물질을 보아온 강 계장은 ‘사랑이는 조금만 더 물질을 하면 상군이 될 것’이라며 독려했다.

이 씨가 그녀의 이름처럼 제주해녀문화를 사랑하고 그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되길 바란다. <정리=최정훈 기자·자료협조=한국어촌어항협회>

최정훈 기자  paraclituss@hdh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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