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으로 보는 세상
편견으로 보는 세상
  • 이준후/시인, 산업은행 제주지점장
  • 승인 2011.02.1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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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수필가 가드너의 수필 ‘모자철학’은 모자 수선을 위해 모자점에 들른 작가가 모자점 주인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시작됩니다. 모자점 주인은 머리의 크기와 직업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어느 항구도시에서 보았던 선장들의 머리 크기를 예로 듭니다. “그분들의 머리는 보통이 아니었어요. 아마 그것은 그분들이 많이 걱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조수(潮水)며 바람이며 빙산(氷山)이며, 기타 여러 가지를 걱정하자니…….” 머리가 크다는 것이지요.

수필의 주인공은 말합니다. “나는 필경, 그 모자점 주인에게 빈약한 인상을 주었으리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나의 보통의 머리를 떠받들고 모자점을 나왔다. 그 모자점 주인에게는, 내가 경우 6⅞인치 크기의 인간밖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따라서 대단치 않은 인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속에다 보석을 지닌 머리는 반드시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 주고 싶었다. 물론, 위인 중에는 머리가 큰 사람이 왕왕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비스마르크의 크기는 7¼인치, 글래드스턴도 그러했으며, 캠벌 배너먼도 그러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바이런은 머리가 작았고, 뇌가 대단히 작았다. 그런데 괴테는 말하기를, 바이런은 셰익스피어 이래 유럽에서 나온 가장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보통의 경우라면 동의할 수 없지만, 작은 머리를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괴테의 말을 주저 없이 받아들인다. 홈스의 말과 같이, 중요한 것은 뇌의 크기가 아니고 그 회전의 빠름이다. 하여간, 나는 그 모자점 주인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내 머리는 비록 작을망정 내 뇌의 회전 속도는 최상급이라고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주인공의 진술은 계속됩니다. “나는 물론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다만, 내가 지금 그 일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그 일을 통하여,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특유의 창구멍으로 인생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든 것은 모자의 크기를 통해서 세상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경우였다. … 요컨대, 우리들 모두가 인생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각자의 취미나 직업이나 편견으로 물든 안경을 쓰고 가는 것이고, 이웃 사람들을 우리 자신의 자로 재고, 자기류(自己流)의 산술로 그들을 계산한다 하겠다.”

그런데 ‘모자로 보는 세상’이 오류이기만 할까요.

“구두를 보면 그 사람의 ‘치매건강’이 보인다. 걷기에 편한 낮은 굽을 신거나 운동화 차림이라면 일단 치매와 멀어진 방향이다. 빠르게 걸으면 체중이 실리는 뒷굽 바깥쪽이 유독 많이 닳아 없어진다. 그 이유로 뒷굽을 자주 간다면 일상생활 속 걷기는 합격이다. 엄지발가락 옆 구두 실밥이 잘 터지는 사람도 속도를 내며 힘차게 걷는 경우라 볼 수 있다. 반면 구두 앞쪽에 작은 상처들이 많고 해져 있는 사람은 ‘치매 행보’다. 걸음을 질질 끌며 느리게 걷는 사람의 구두는 보도블록 튀어나온 부분이나 돌멩이 등에 구두 앞쪽이 잘 가지기 때문이다.

유행을 좇아 큰 신발이나 높은 굽을 신고 다니는 사람들은 속보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다. 구두 위에 잡히는 주름 양이 왼쪽과 오른쪽이 심하게 차이 나면 걸을 때 한 쪽 다리를 무의식적으로 많이 쓴다고 보면 된다. 대개 천천히 걸을 때 좌우 편차가 크게 난다. 수십 년 전 과거엔 구두에 흙이 묻어 있으면 산에서 방금 내려온 간첩일지 모른다는 말이 있었다는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제 흙 묻은 구두는 건강의 표징이다.”
이는 한 의사가 ‘걷기’를 ‘창(窓)’으로 하여 본 치매에 관한 의견입니다.

사실 우리는 ‘창(窓)’을 한 개쯤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창으로 사람을 보고 판단하지요. 사람이 세상을 만들고 이끌어가니, 결국 가지고 있는 작은 창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겠지요. 모자점 주인은 모자를 창으로 하고, 구두 수선공은 닳은 구두 뒷굽으로, 양복점 주인은 주문하는 양복 스타일로, 심지어는 보이지 않는 말투 하나로 사람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 하나하나의 창, 이를 편견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잠자리는 여러 개의 눈, 약 3만개나 되는 눈을 가지고 있답니다. 눈동자를 굴리는 대신에 3만개 눈에 보이는 상을 모아 전체의 상을 형성하여 사물을 식별하는 것이지요. 이를 복눈이라 합니다. 우리의 세상에서도 하나의 ‘창(窓)’으로 형성된 편견을 모으면 전체의 모습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자, 우선 편견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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