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를 찾아서”
“명태를 찾아서”
  • 현대해양
  • 승인 2008.12.27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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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2007 부산일보 신춘문예 해양소설부문 최초 당선 - 해양소설가 김 부 상

 

 

‘2007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해양소설’ 분야가 신설 되었다. 한국 신춘문예 역사상 최초로 지역성을 살려 운영하는 부문으로 한국해양대와 공동으로 신설했다. 이 부문 첫 당선의 영예를 차지한 김부상 작가를 만났다.

그의 고향은 경남 거제의 ‘구조라’ 바닷가라고 했다. “어린시절 방문을 열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살았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멸치어장을 하셨는데 건조를 위해 마당에 널어놓은 멸치가 햇빛에 반사돼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멸치 사이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호래기(꼴뚜기 새끼)를 골라먹던 기억도 나구요. 1959년 이었죠. 사라호 태풍때 집에 바닷물이 어른 가슴까지 차올라 아버지의 목마를 타고 피신하던 기억이 삽화처럼 떠오른다”는 해양소설가 김부상 작가는 어린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말을 잇는다.

“그 이후 부산으로 이사를 했고 아버지는 형제들과 양조공장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던 중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공장이 부도나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세상의 아픔과 고뇌를 글로 쓰게 된 것이 지금의 제가 있게 된 시작이라고 봅니다” 김 작가는 그가 글을 쓰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린시절의 추억 때문에 수산대에 진학한 그는 해양문학회라는 동아리 생활을 하며 글 쓰는 일에 열중하지만 대학 3학년 때 결혼을 하며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면서 글쓰기와 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글쓰기의 중단이 아니었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그가 수산대를 나와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는 수산개발공사였다. “수산개발공사를 거쳐 원양회사까지 15년간 수산분야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그 시절 명태 수매사업과 관련해 미국과 러시아 어장에서 10개월간 배를 탔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이번에 당선된 ‘명태를 찾아서’를 탄생 시키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렇다. 김 작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해양소설가로서의 경험을 축적한 것이다. 직접 배에 탑승해 근무하는 승선직은 아니었지만 15년의 세월은 간접경험을 통해 충분히 바다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경영 악화로 문을 닫은 원양회사를 그만두고 뭍에서 살아 온지도 12년째 접어들고 있지만 이 시간은 제 인생에 있어 무의미했습니다. 한 세대도 영위하지 못하고 원양어업의 몰락과 동시에 실업자가 되어버린 동료, 선배들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최근 3년 전부터 그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습작을 해오다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기회가 돼 출품하게 되었는데 부족한 저의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글을 잡아준 정형남 선생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해양문학의 거점을 넓히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김 작가의 어깨가 무겁다. 문학적으로 불모지인 해양문학계에서 고 김성식 시인과 천금성 작가의 뒤를 이어 해양문학 발전에 한 몫을 해주길 바란다.


<부산 = 안대성 기자>

200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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