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새마을 운동
미얀마의 새마을 운동
  • 이준후 시인/BCT 감사
  • 승인 2018.01.0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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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후 시인/BCT 감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기분 좋은 인사를 받았습니다.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 등 일부 국가 정상으로부터 새마을 운동에 대한 한국의 지원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회의에서 돌아온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새마을운동을 비롯해 前정부 추진 내용이라도 성과가 있다면 지속적으로 추진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덕분에 대폭 삭감하기로 했던 내년도 '새마을 ODA(공적개발원조) 예산'이 살아났습니다. 오히려 전 정부가 짠 229억원보다 더 늘어 251억원이 됐습니다. 죽다 살아난 '새마을운동'입니다.

그런데,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여사는 왜 그런 인사를 했던 것일까요. 현지를 취재한 한 르포기사를 요약해 인용합니다.

'미얀마 수도인 네피도 외곽에 있는 칸타르 마을 입구에서 주민들의 힘찬 구호가 울려 퍼졌다. 우기를 앞두고 마을길을 새로 깔기 위해 주민들이 모인 자리였다. 한글로 '새마을'이란 문구가 새겨진 녹색 조끼를 입은 주민들은 자갈길 위에 모래를 뿌리고 불도저로 길을 다졌다. 길옆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한국어로 '새마을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곳은 미얀마 전국에 지정된 100개의 새마을운동 시범마을 중 하나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2014년부터 미얀마의 새마을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주민들이 주체가 돼 진행하는 농촌 환경개선사업에 2019년까지 총 2,200만 달러 (257억원)를 지원한다. 한국에서 새마을운동 교육을 받은 바 있는 새마을회장 우 뉜 쉐(54)는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협동력도 높아지고 생활도 발전하고 있다"며 "다른 마을 대표들도 여길 와 보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새마을운동은 미얀마에서는 효율적인 농촌공동체 사업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이에 대한 담당자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새마을운동은 미얀마 신정부의 국가개발 프로젝트인 ‘100일 계획’에도 포함됐다.’ 
 

1970년부터 온 국민의 참여 속에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근대화와 번영을 견인한 한국형 개발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 70여 나라에 수출됐고, 많은 개도국이 한국을 찾아 새마을운동을 배우고 있습니다.

응웬 티 투엣, 필자가 2006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적 있는 국립 하노이대학교 졸업반 4학년 여학생 이름입니다. 당시 한창 준비중인 그녀의 졸업논문 제목이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베트남'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새마을운동은 빈곤탈출은 물론 세계 10위 권의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 정신적 토대였습니 다. 또한 국제성도 인정받았습니다. 유엔세계식량계획 (WFP)은 세계 빈곤 퇴치 모델로도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는 새마을운동을 잊었습니다.

그러나 없어지진 않았습니다. 1997년 11월 21일, 우리나라는 국가부도 위기에 처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했습니다. 국가 경제정책은 사사건건 통제와 간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경제신탁통치에 들어간 것입니다. 정행길씨(현 76세)는 집에서 구제금융신청 장면을 TV로 보다가 “집집이 널려 있는 돌 반지를 모아 외화를 아끼는 데 도움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고 회상했습니다. 당시 정씨는 새마을부녀회 연합회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정씨는 11월 25일 긴급 시·도회장 회의를 소집해 "나라가 큰일 났다"며 행사를 제안했고 참석자 전원이 찬성해 모금이 시작됐습니다. 정씨는 "기생들이 주도했던 일본 강점기 국채보상운 동처럼 여성들이 발의해 부도난 나라 살림을 무엇을 해서라도 메워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합니다.

애국 가락지 모으기는 12월 3일부터 1주일 간전국 새마을부녀회 조직을 통해 진행됐습니다.

처음부터 거창한 의도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돌반지는 물론 성인 반지, 목걸이 등 장신구에 황금열쇠, 금송아지까지 내 놓았습니다. 달러와 은을 내놓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98년 한 해 동안 금모으기에 참여한 국민은약 351만 명, 총 227톤의 금이 모였는데 당시 가치로 환산해 약 21억 달러(2조 5,000억원)어치에 달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외환위기를 극복해 냈습니다.

대통령의 지시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해외 새마을운동을 위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이 축소되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다행스런 일입니다. 사실 국내에서 새마을운동은 천덕꾸러기였습니다.

오랫동안 무시 받고 핍박받았습니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운동 정신은 케케묵은 구닥다리 사고로 치부됐습니다. 녹색 모자와 녹색 조끼로 상징되는 집단 활동은 시대착오적이라고 경멸받았습니다. '잘 살아보자'는 외침이 황금물 신주의라는 오해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정을 나누며 살았던 옛 마을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새마을운동이 아니라 옛마을 운동'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지 47년, 50년이 돼갑니 다. 새마을운동은 공동체 운동입니다. 해외에서건 국내에서건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서 그 현재의 가치요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해외 개도국에 대한 지원사업도 그렇고 '금모으기'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공동체는 항상 위협받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를 고민해야 합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기존의 공동체는 해체됐습니다. 새마을운동은 공동체를 위한 좋은 가치요소입니다.

이 가치를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새마을운동, 새마을정신은 절대 구닥다리가 아닙니다!
 

<편집자 주> 외부 필진 원고는 <현대해양>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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