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무술년戊戌年 띠풀이>
<2018 무술년戊戌年 띠풀이>
  • 정상박 교수/동아대 명예교수, 민속학
  • 승인 2018.01.0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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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가장 오래된 인류의 동반자


개, 사람과 가깝고 친밀

2018년 새해는 무술년(戊戌年)으로 개띠의 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자기 집 강아지를 스스럼없이 “우리 애” 라고 말한다. 개를 남편보다 더 귀하에 여기는 부인들이 흔하다고 한다. 개의 의료비가 사람의 그것보다 몇 배 비싼 지경에 이르렀으니 “개 팔자 상팔자”가 된 세상인 것같다. 동물복지를 운운(云云)하는 상황에서 화난다고 개를 발로 한 번 찼다가는 고소당할 판이다.

한편, 아이돌 가수의 개가 사람을 물어 그것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소름끼치는 사건 이후에 목줄을 매고 개를 데리고 다녀야 한다. 반드시 입마개를 하도록 법제화 해야 한다는 둥 부정적인 말도 많다.

이렇게 말이 많은 것은 개가 가장 오랫 동안 사람과 가깝고 친밀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개는 본능적으로 예민한 후각과 청각을 가졌을 뿐 아니라 재빠르고 용맹하고 충성심이 강해 일찍이 애완견은 물론 방범견, 수렵견, 군용견, 경찰견, 목양견(牧羊犬), 투견, 경주견 등으로 이용됐다. 심지어 시각장애우의 눈이 되는 인도견이나 치매 예방의 상대역이 되기도 한다.

고고학적 유물을 보면 개가 가장 먼저 가축화돼 근 일만 년간 인간과 더불어 생사고락을 같이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도 신석기 시대부터 개를 길렀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개를 길러 그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었다는 기록이 있고, 또 신라 22대 지증왕(智證王)이 개로 인해 왕비를 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 나라에서도 옛날부터 개를 가축으로 사육하면서 민족과 애환을 나누었음을 알 수 있다.

 

의롭고 충직한 개 설화

우리나라 이바구에는 개가 충실하고 의리가 있는 가축 으로 묘사된 의구설화(義狗說話)가 많이 전해진다.

전북 임실군 오수(獒樹)라는 조그마한 고을에 있었던 일이다. 주인이 나들이 갔다가 술에 취해 돌아오는 길가의 풀밭에 잠들어 누워 있을 때에 산불이 나서 주인이 죽을 위기에 놓이게 되자 개가 주인을 깨우려고 짖어도 보고 옷을 물고 잡아당겨 보았으나 만취한 주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개가 산 아래 강에 가서 온 몸에 물을 묻혀 와서 주인의 주위에 뿌리기를 수백 번 반복해 겨우 주인을 살리고는 기진해 죽고 말았다. 주인이 깨어 개가 자기를 살린 것을 알고는 탄복해 개무덤을 만들고 꽂아둔 지팡이가 싹이나 거대한 나무로 성장을 해서 이나무를 ‘개 나무’라는 뜻으로 ‘오수(獒樹)’라 명명한 데에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경남 밀양시 무안면 마흘리에 ‘개고개’라는 산마루 길가에 지금도 서 있는 의구비(義狗碑)의 전설도 이와 비슷하다. 고려 때에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 오수 유래담이 실린 것으로 보아 화재에서 주인을 구하고 죽은 개의 전설은 오래 전부터 널리 유포됐음을 알수 있다.

조선조 중엽에 평양 대동강 동쪽 언덕에 과부가 어린 딸과 계집종과 더불어 수절을 하고 살고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젊은이가 밤에 과부를 찾아와서 같이 살기를 애걸하다가 말을 듣지 않자 과부 일가족을 남몰래 죽였다.
이튿날 평양 관찰청에 난데없는 개가 나타나서 며칠을 슬피 울어 관리가 이상하다고 여겨 개를 따라가 봤더니 집안에 일가족이 피가 낭자한 시체로 나둥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개가 관리의 바지 자락을 물고 살인자의 집으로 끌고 가서 범인을 잡게 됐다고 한다. 개도 원수를 갚고는 주인의 무덤가에서 죽어 마을 사람들이 의로운 개라고 해 개무덤을 만들어 ‘의구총(義狗塚)’이라 세긴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忠烈王)때에 개성의 진 고개에 사고무친한 눈먼 아이가 혼자서 흰 개 한 마리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소경 아이가 개꼬리를 잡고 길에 나서면 사람들이 밥을 주었는데, 개는 그 아이보다 먼저 입을 대지 않았고, 아이가 목이 마르다고 하면 우물가에 데리고 가서 물을 먹이고 키웠다. 관가에서 이를 알고 개를 가상히 여겨 벼슬을 내리고 상을 주고 충직함을 기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개보다 못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이렇게 설화의 세계에는 개들이 흔히 긍정적으로 나오는데, 반대로 속담의 세계에는 부정적으로 비유된다.

“개판”, “개 눈에는 똥밖에 보이지 않는다” 등 개의 비천한 생태를 통해 인륜과 경세(經世)의 교훈을 가르치는 소재로 삼고 있다. “개 ○ 같은 놈”, “개만도 못하다.” 등 욕설에 자주 쓰인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개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욕바가지나 둘러쓰다가 보신탕 감이나 되니 억울할 것이다.

옛 선비들은 이런 하찮은 개에게서도 오륜(五倫)을 찾았다.

첫째 개란 놈이 제 새끼를 귀엽다고 자주 혓바닥으로 핥아주니 부자가 친한 것이요(父子有親), 둘째 제 주인을 보고 짖지 아니하니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가 있는 것이요(君臣有義), 셋째 일정한 발정기에만 교미하니 부부가 유별한 것이요(夫婦有別), 넷째 자기보다 큰 개를 상대해 싸우지 아니하니 늙고 젊음에 차례가 있는 것이요(長幼有序), 다섯째 한 놈이 짖으면 온 동네 개가 다 같이 호응해 짖어대니 벗들 사이에 신의가 있는 것이라(朋友有信). 이 어찌 개에게 오륜이 없다 할쏜가?

우리 선인들은 개를 영물(靈物)로 여기기도 했다. 개를 십년 이상 기르면 다루기 힘들어지고 집안을 해치기도 한다고 오래 기르기를 꺼렸다. 삽살개는 악귀를 쫓는 벽사( 邪)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개가 지붕 위에 올라가 짖으면 주인이 죽는다, 개가 마당에서 이유 없이 짖으면 경사가 난다, 개가 풀을 뜯어먹으면 비가 온다 등 개를 통해 길흉과 일기를 가늠했다.

사주책에는 개띠의 사람은 기예가 뛰어나고 유순하고 마음이 착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부지런하기 때문에 재운이 좋아 일찍 성공한다. 성품은 정직해 청렴하다. 남자는 색욕이 강한 편이고 호언장담을 잘하며 가정에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고 풀이돼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개를 통해 인식하는 상징성은 결국 인간이 지닌 성정과 사회적 작태가 투영된 것이다.
장자(莊子)는 “개가 잘 짖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도둑을 알고 짖어야 좋은 개며, 사람이 말을 잘 한다고 현명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행해야 현명한 사람이라고 했다.”

개의 해를 맞이해 진실로 어떤 이가 슬기로운 사람인가 되새기면서 새해의 각오를 다져 봐야 할 것이다. 무술년 벽두에 “개보다 못한 놈”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다시 한 번 되뇌어 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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