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술 삼해상사 대표 “김 하나로 100년 가는 일등 기업 만들겠다”
김덕술 삼해상사 대표 “김 하나로 100년 가는 일등 기업 만들겠다”
  • 박종면 기자
  • 승인 2018.01.03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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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김산업연합회 초기 발전 이끌어… 김 수출 5억 달러 달성 공신
▲ 김덕술 (주)삼해상사 대표이사. ⓒ박종면

[현대해양 박종면 기자] “우리가 생산한 생김, 마른김, 조미김이 5,000만 국민 식탁 뿐 아니라 세계 최대 김 생산국으로 수출을 주도하며, 세계 히트상춤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런 위업이 김산업인들의 피땀어린 노력의 결과라 생각한다.”

김덕술 삼해상사 대표가 지난해 말 8년간 재임한 (사)한국김산업연합회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첫 마디는 ‘감사하다’였다.

아무도 맡으려는 이 없는 어려운 때 회장에 추대돼 2009년 초대부터 3대까지 8년 (1, 2대 각 3년, 3대 2년 임기) 동안 한국김산업연합회를 이끌어 오면서 ‘김 수출 5억 달러 달성’이라는 가장 좋은 성과를 내서 분위기가 좋을 때 떠날 수 있어서 좋다는 것.

그 길을 함께 같은 길을 걸어준 김산업인들이 고맙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원하다고 했다. 시원섭섭할 만도 한데 시원하다고 했다.

그만큼 고충이 많았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김산업연합회는 종묘, 양식, 건조 및 가공, 수출 등 4개로 분업화된 김산업인이 한데 모여 있는 연합체로 단체간 이해가 상충되기에 개성이 강하다할 수 있다. 이처럼 개성이 강한 단체의 수장으로서 서로 원하는 바가 달라 생기는 불협화음을 융화시켜 하나의 목소리를 낼수 있도록 했으니 말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조미김을 생산함은 물론, 2017년 무역의 날(12월 5일)에 5,000만 달러 수출탑을 받은 대한민국 최고 조미김 제조기업 CEO로 돌아온 김덕술 대표. 그가 8년간 김산업연합회 초기 1~3대 회장으로서의 소회와 김산업 발전 방안, 기업 경영계획 등을 <현대해양>에 밝혔다.


8년간 재임한 회장직에서 물러났는데 소감이 어떤가?
2009년 발족된 이래 8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김삼업연합회의 위상이 높아지고 김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

8년 전 김산업 연합회 발족 당시 많은 이들이 걱정과 우려를 했으며, 저 또한 노심초사하며 초대 회장직을 맡았다. 회원 여러분의 단합된 힘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겼고, 김산업연합회가 성장 발전하는데 디딤돌 역할을 해주신데 대해 깊은 감사의 말씀드린다.

특히 2017년 5억 달러 이상의 김 수출을 이룰 수 있도록 하고 각 부문간의 이해와 화합을 이뤄 김산업 발전 원년이 되도록 했다는 것에 기쁘게 생각한다.
 

아쉬운 점도 있을 텐데?
어민들은 겨울철에 찬물에 손 집어 넣어서 김을 생산 한다. 그런 분들을 위해 제2의 활성처리제가 개발됐으면 했는데 마무리 못해서 아쉽다. 다행히 현재 시험하고 있지만 아주 성공적이라 한다. 100% 못 해드린 것이 죄송하다.
마른김 생산자들이 수산인의 범주에 들어가도록 하려고 했는데 못 했다. 양식산업법 개정안에 그 내용을 넣고 싶었다.

그리고, 학문적으로 기초연구가 필요하다 싶어 김 연구소를 설립하고 싶었는데 못 했다. (해수부에) 국립 김 연구소를 만들어 달라 했었다. 기초학문은 민간이나 기업이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에서 세워 달라 했었다.

'명가김'을 생산하는 삼해상사 직원들과 함께 한 김덕술 대표. ⓒ박종면


회장 재임 중 역점 둔 것은?

처음 김산업연합회장 돼서 1대 때 김양식어업인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하려 했다. 뱃놈이 아니라 김산업인으로 말이다.

처음에는 회의하면 늘 싸우곤 했다. 단체간 이해가 상충되니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조정하고 중재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그래서 김산업인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김연구회를 만들고 세미나를 개최했다.

우리들이 모이면서 다른 사람의 흉이 보였다. 그러면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스스로 규율했던 것 같다. 김산업인의 자부심을 갖게 하기 위해 (정부에) 김의 날을 제정해 달라 했다. 그래서 김 수출 1억 달러 달성 기념식을 하면서 김의 날을 제정할 수 있었다.

 

1대부터 3대까지 재임기간의 특징이 있었나?

1대 때는 김산업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도록 노력하려 했다. 300명씩 모이는 세미나를 하곤 했는데 인문학적 내용으로 우리 교육이었다. 우리 어업인들이 알아야 할 내용이었다.

2대 때는 외연 확장이다. 매출 확장과 김 수출에 역점을 뒀다. 쉽지 않은데 모두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재작년(2016년)에 가능했다. 수요가 공급을 앞서면 가능하다. 김 연구회 관련 세미나를 했는데 전에는 어민 교육이었다면 이 때부터는 관련 지자체, 정부 공무원과의 소통하고 이슈를 토론하는 날이 됐다.

그 와중에 슈퍼김이 개발돼 생산이 증대됐다. 가격이 떨어져야 하는데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수출지향으로 갔기 때문이다. 내수에만 그쳤으면 가격이 폭락했을 텐데 수출로 이어져 타격이 없었다. 가격은 가격대로 가면서 경쟁력을 갖추며 도약할 수 있었다.

3대 때는 재작년에 3억 달러 수출을 돌파했다. 물량이 안정화되고 수요가 늘어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2017년 5억 달러를 달성했지만 사실 5억 달러까지 한참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중국 영향(중국 생산 감소)으로 달성 시기가 빨라졌다.


김 수출 확대 등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나?

개발에 새로운 눈을 뜨니까 시장이 확대되는 것이다. 싱글족이 김을 많이 먹는다. 김치는 안 먹어도 김은 반찬으로 먹는다. 김이 반찬으로, 혹은 안주로 선택된다는 게 감사하다. 

깨끗하고 안전한, 그러면서 맛있는 김을 계속 연구하고 만들어 내면 시장은 확대할 수 있다. 일단 소비에 불이 붙었다. 음식으로 먹으면 많이 먹어야 3번이지만 스낵은 다르다. 하루 10번도 먹을 수 있다. 일본서 조미김은 맥주 안주로 먹는다. 중국선 과자. 미국에선 어른 주전부리다.
 

김산업인들에게 하고픈 말은?

우리가 생산한 생김, 마른김, 조미김이 5,000만 국민 식탁 뿐 아니라 전 세계 생산량의 50%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으로 수출을 주도하며, 세계 히트상품으로 우뚝 서게 됐다. 이런 위업이 김산업인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라 생각하며 함께 했다는 무한한 자부와 긍지를 느끼며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삼해상사가 김으로 5,000만 달러 수출탑을 받았는데…

2017년이 삼해상사 입사한지 30년 되는 해였다. 삼해상사는 1999년에 500만 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그리고 신장세를 이어오다 2017년에 5,000만 달러 수출 탑을 받게 됐다. 우리가 1년 매입하는 김(마른김)을 펼치면 지구 7바퀴가 분량이 된다. 회사가 좋아지고 변신하고 있다.

우리는 김만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다른 곳에서 찾지만 우리는 김 안에서 변화를 찾는다. 실패하면 안 하면 되고 성공하면 남들보다 빨리 가는 것이다.

회장님(아버지 김광중 창업주)으로부터 받은 교육이 있다. 다른 일이 하고 싶으면 그 회사 주식을 사라고 하셨다. 회장님은 100년 이상 가는 튼튼한 김 기업을 원하신다. 나 또한 앞으로 50년 즉, 100년 기업을 이끌어갈 사람이 필요하다. 나 없는 삼해상사가 관심사다. 우리는 김 하나만 보면 된다.
 

기업 목표가 무엇인가?

얘기한 대로 100년 가는 김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사훈은 우리의 기호식품을 세계의 기호식품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역사가 오래되면 욕먹을 짓을 안 한다. 원래 본사 건물 지으려 가지고 있었던 땅을 팔고 서울 근교 새 공장을 매입했다. 앞으로 50년을 더 내다보고 하는 것이다.

사무실을 옮긴 것도 좋은 직원을 쓰기 위해서다. 내 자리를 대신할 직원이 와야 한다. 그러려면 근무환경이 좋아야 한다. 직원이 날 대신 할 수 있을 지를 생각한다.
 

김 기업이 천직이라 생각하나?

천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김산업을 위해 내 역할은 하고 싶다. 2등, 3등이 되더라도 포기는 안 할 것이다. 김을 세계인의 기호식품으로 정착시키는 역할을 하겠다.

1997년에 말단직원으로 입사해 김군으로 불렸다. 2000년부터는 백화점 영업을 다녔다. 만나는 사람들이 “넌 영업이 안 맞아”라고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사람을 쓸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업 경쟁이 치열하고 대단한 사람이 많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건 내가 포기 안 하면 이긴다, 딴 짓하지 않으면 이긴다’ 는 생각으로 왔다. 실제로 난 10년 이상 계속 할 거니까 같이 가자고 클라이언트를 설득했다.

김덕술 대표의 삼해상사가 지난해 김 업계 최고인 5,000만 달러 수출에 성공, 무역의 날(12월 5일)에 5,000만 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박종면


아버지 김광중 회장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많은 듯한데?

회장님은 빠르고 정확한 분이다. 늘 나한테 초심을 잃지 마라 하셨고, 멀리 보고 가라 하셨다. 발끝의 이익만 보고 가지 마라고 하셨다. 그리고 포기하지 마라고 하셨다.

처음 입사했을 때 회장님이 대기업과 경쟁에서 자회사를 매각하는 걸 보면서 많은 걸 배웠다. 그 때 얻은 교훈이 지금 회사가 나아가는 비결이다.
 

창립 50주년을 맞았는데 앞으로 회사 경영계획은?

신제품 개발을 위해 새 공장을 열고 신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스낵 쪽이다. 수출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해외 기존 시장을 우선 공략한 뒤 신시장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2년 전에 연구소를 만들었고 시설 투자를 하고 있다. 예전 회사 근처 매장 부지를 팔아 새 공장을 산다고 하니 다들 말렸는데 우리가 할 일은 김만 생각하는 것이라 보고 100년 가는 일등 김 회사를 이어가고자 한다.

2018년은 삼해상사 창립 50주년이 되는 해(창립일 1968년 12월 10일)이다. 앞으로 50년, 100년 가는 김 회사를 만들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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