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스텔라데이지호 사고로 상처입은 해양경찰, ‘아버지 자존심’으로 무장하라
세월호·스텔라데이지호 사고로 상처입은 해양경찰, ‘아버지 자존심’으로 무장하라
  • 박종면 기자
  • 승인 2017.10.2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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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현대해양 박종면 기자] 서울의 ㅇ중학교 축제 때 40대 후반~50대 초반의 남성들이 무대에 섰다. 이 학교 ‘아버지회’ 회원 중 밴드공연을 위해 뭉친 이들었다. 그들은 악기 연주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직장인들이었다. 각기 하는 일도 달랐던 이들은 4개월 전부터 각자 음악학원 등에서 개인교습을 받고 공연을 두 달 앞둔 시점부터 주말마다 모여 합주연습을 했다.

평일에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전자기타를 맡았던 한 아버지는 일요일을 이용해 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4개월 준비하면 아무리 초보라도 2곡 정도는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6주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주1회 수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자각과 단기간에 연주가 가능하게 해준다는 화려한 광고와 달리 목표의식 없이 너무나 느긋한 학원 강사의 자세에 속이 타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평일에 다른 아버지가 다니는, 주 2회 수업을 하는 학원으로 옮겼다. 너무 바빠 수업만 겨우 참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드디어 합주연습을 시작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허둥댔다. 나름 열심히 연습했는데도 끼어들 수 없었다. 마음만 앞섰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합주연습 때에도 허둥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게다가 합주를 지도하는 이가 그가 다니는 학원장이었던 터라 자신의 학원 수강생이 뒤처지는 건 볼 수 없다며 그에게 피나는 연습을 주문했다.

그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그날 밤 늦게 그는 택시를 타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소리가 흘러나가지 않게 창문을 꼭꼭 닫고 삭신이 뻐근할 정도로 밤새 코드 변환 연습과 스윙연습을 거듭했다.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그는 건물 안에 틀어박혀 같은 연습을 반복했다. 그리고 평일에는 퇴근 후 곧장 학원으로 갔다. 수업이 없는 날은 혼자 연습을 했다. 그리고 휴일엔 자신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연습을 거듭했다. 출퇴근 시간엔 이어폰을 꽂고 매트로놈 앱으로 일정한 시간으로 박자를 맞추는 연습을 했다.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했다.

아버지는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왜 이걸 하겠다고 했을까’ 하며 후회도 여러 번 했단다. 실제로 함께 했던 맴버 중에는 중도에 포기하는 이도 나왔고, 애초에 백지상태에서는 못하겠다는 회원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이 아버지는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열심히 연습해서 자녀를 놀라게 하겠다는 일념과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몸소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자존심’도 많은 작용을 했다. 자신 때문에 공연이 엉망이 됐다거나 자녀 눈에 자신이 가장 실력 없는 아버지로 보이는 게 싫었다고 한다.

이 아버지는 공연 한 달을 앞두고 세컨드 기타에서 퍼스트 기타로 포지션이 바뀌었다. 그리고 “단 한 곡만을 연주하기 위해 4개월간 연습했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한 곡 완주로 만족하라는 강사를 졸라 두 번째 곡에 도전했다. 그렇게 피나는 연습을 거듭한 뒤 그를 비롯한 아버지들은 자신감 있게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고.

지난 10월 13일 국회 농림축산해양수산위원회의 해양수산부에 대한 국정감사장. 철광석을 싣고 가다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대표(2등 항해사로 승선했던 허재웅 씨의 누나 허지이 씨)가 이날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참고인은 “평범한 시민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이런 자리에 나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다시는 제2의 스텔라데이지호 사고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울먹였다.

이 자리에서 야당 국회의원들은 ‘스텔라데이지호’사고 때도 세월호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해양경찰이 사건을 인지하고도 9시간 지나서야 침몰위치를 확인하는 등 골든타임을 허비했으며, ‘구명벌 발견 공문’도 외교부와 공유하지 않았다며 해양수산부 장관(김영춘)을 질타했다.

해양경찰이 세월호 사고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으로 국민안전처에 편입됐다가 정권 교체 이후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이 때문에 해경을 바라보는 눈이 많고 기대도 크다. 해경은 해양영토와 해상안전을 지키는 일을 주업무로 하는 직업인이다. 아마추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 번 실수는 용인될 수 있을지 몰라도 실수가 반복되면 그게 곧 실력인 것이다.

온국민에게 크나큰 실망감을 준만큼 자존심도 많이 상했을 해경은 다시 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는 아버지들처럼 자존심 회복을 위해, 신뢰 회복을 위해, ‘아버지의 자존심’으로 무장하고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

온국민에게 크나큰 실망감을 준만큼 자존심도 많이 상했을 해경은 다시 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는 아버지들처럼 자존심 회복을 위해, 신뢰 회복을 위해, ‘아버지의 자존심’으로 무장하고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 지난 24일 열린 해양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박경민 해양경찰청장(왼쪽 첫번째)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박종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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