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홍어
  • 이두석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관
  • 승인 2008.12.27 0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는 속담이 있다.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할 때 내뱉는 푸념이다. 다시 말하면 홍어의 거시기는 아무 짝에도 쓸데없다는 의미이다. 

 홍어는 암컷이 크고 맛있으며 수컷은 작고 맛이 떨어져 별로 인기가 없다. 그래서 수컷은 가격에서도 암컷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게다가 수컷은 거시기 때문에 더욱 홀대를 받는다. 꼬리 양쪽에 돌출되어 있는 거시기는 어떻게 요리해도 맛이 나지 않으며, 가시까지 붙어있어 잘못 다루면 손을 다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뱃사람들과 상인들은 수컷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으며,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홍어 거시기는 그 중요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항시 잘려나가기 일쑤였다. 따라서 이 말은 우리들이 직장이나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푸대접받고, 잘렸을 때 푸념조로 내뱉는 말이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고(혹은 만만한 게 홍어 × )’참 더럽다는 푸념이 내포되어 있다.   

 겨울바람이 쌩쌩 몰아치는 겨울, 코가 뻥하고 뚫릴 정도로 푹 삭힌 홍어를 먹는 맛은 남도 맛의 진수다. 남도 지방에서는 ‘날씨가 찰 때에는 홍어 생각, 따뜻할 때는 굴비 생각’이란 말이 자주 오간다. 지금은 사계절 음식이 되었지만 홍어는 가을과 겨울이 제 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남도 지방에선 가을 이후의 잔치에 삭힌 홍어가 빠지면 그것은 곧 격이 없는 집안이고 차린 것이 별로 없다고 섭섭해 했다.

 충청도 밥상에 간월도의 어리굴젓이 빠지면 양반의 밥상이 아닌 것처럼 ‘홍어 빠진 잔치는 귀 빼고 거시기 뺀 당나귀’라 했고 ‘홍어 빠진 잔치는 하나마나’란 말도 전해진다.

 홍어를 비롯한 모든 발효음식은 공통된 특성이 있다. 한번 맛을 들이면 도저히 끊지 못하고 중독되게 만든다는 점이다. 김치가 그렇고, 된장이 그렇다. 치즈와 요구르트도 그렇다. 삭힌 홍어를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코끝을 찌르는 독한 냄새를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한두 번 맛을 들이면 특유의 풍미에 매료되고 만다. 그리고 어느새 그 자극은 즐거운 고통이 되고 만다.

 

2007년 2월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