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30) 연안복합어업 정수원 씨
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30) 연안복합어업 정수원 씨
  • 백미리 기자
  • 승인 2017.10.10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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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후 제2의 직장, 큰 욕심 버리니 재미 솔솔

[현대해양 백미리 기자]

▲ 정수원 씨

 귀어 전 거주지역 : 서울

 귀어지 : 경남 남해군 창선면

 귀어 전 직업 : 언론인

 귀어연도 : 2015년

 사업형태 : 연안복합어업 어선 1.5톤

 귀어 초기자본 : 5,000만원

 연간수익 : 2,000여만원

 귀어동기 : 고향에서 노후생활

 

정년퇴직 후 조촐한 귀어

정수원(63) 씨의 고향은 경남 남해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초등학교 시절 무척이나 낚시를 좋아했다. 수업을 마치면 인근 바닷가로 나가 물고기를 잡아다 드렸다. 저녁 밥상에는 어김없이 그 생선이 올라왔다. 바다가 놀이터고 친구였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한 학기를 남겨두고 아버지가 계신 서울로 올라갔다. 이후 대학원까지 마치고 직장생활을 무려 33년이나 했다.

정 씨의 녹록치 않던 서울 생활을 버티게 해준 에너지는 고향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었다. 언론계에 몸담았던 그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래도 왠지 허전했다. 그럴수록 일에 파묻혔고 결국 몸이 축나기 시작했다. 15년 전 연이어 병원 신세를 두 번 져야했다.

그때였다. 건강하게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을 품게 된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15년 6월, 그는 고향 남해군에 터를 잡았다.

귀향하던 정 씨는 서울 생활에 대한 미련이 조금은 남아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좋아하던 낚시를 실컷 할 생각을 하니 기뻤다. 귀어귀촌종합센터에서 실시하는 귀어교육도 수료했다. 이를 통해 어부로서 필요 한 전반적인 기초지식을 터득했다. 귀어를 하며 1.5톤짜리 조그만 배를 하나 구입했다. 이 배로 낚시도 하고 조업도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할 계획을 세웠다. 삼천포에 집도 마련했다.

“아내는 바다만 봐도 멀미를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 곳에 거처를 정했어요”

▲ 귀어귀촌 이후 부부가 함께 여가시간을 보내며 관계가 돈독해졌다

아내와의 타협점이다. 귀어를 하면서 부딪치는 문제 중 하나가 가족의 동의를 얻는 일이다.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이들은 촌 생활이 불편하다고들 한다. 그래서 정 씨가 아내를 배려한 것이다. 그 덕일까, 귀어 후 아내는 신앙생활 도 하고 탁구 등 취미생활도 하면서 나름 재미를 붙이고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귀어자금은 퇴직금 등을 활용했다. 정부 지원금은 받지 않았다고 한다.

“지원금을 공돈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전부 빚이에요. 연금이 나오니 제 용돈벌이만 하면 됩니다. 귀어한 지는 이제 1년 조금 지났습니다. 이제야 좀 밥벌이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만하면 됐죠”

이 정도면 성공적인 귀어라는 그다. 제일 만족스러운 점은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어촌의 발전 잠재력 무궁무진

경남 남해 창선 앞바다는 바지락 주산지다. 그리고 이를 먹이로 하는 문어, 낙지 서식지기도 하다. 그래서 많이 잡히는 것이다. 그는 2015년 5월 귀어를 하자마자 제철인 문어잡이에 나섰다고 한다.

“고향 친구를 따라 수업도 받을 겸 첫 조업을 나갔습니다. 그때 문어를 팔아 손에 쥔 게 12만 8,000원이었습니다. 고향 친구는 그 날 50만원을 챙기더라고요. 경력의 차이죠. 포인트도 모르는 초보치고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 고 생각했습니다. 뭐든지 첫 술에 배부를 리가 없죠. 지금은 월수입이 150만원 정도 됩니다. 제 용돈으로 쓰고 살림에도 좀 보태죠”

▲ 정수원 씨가 귀어한 남해 창선 앞바다는 바지락 주산지며 이를 먹이로 하는 문어와 낙지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귀어 후 정 씨는 수익 면에서 어촌이 갖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확인했다고 한다.

“어촌은 바로 바로 현금화가 가능합니다. 농촌은 씨 뿌리고 수확까지의 기간이 있죠. 하지만 어촌은 그 날 조업을 하면 그게 바로 돈이 됩니다. 위판장에 넘기면 되니까요. 사실상 판로 걱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촌이, 아니 고향 친구들이 돈에 대한 개념이 다소 희박하다는 게 그의 걱정 아닌 걱정이다.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 쯤 큰 부자가 돼있어야 하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씀씀이가 큰 거죠”

직장생활 말년에는 연봉이 1억 원이 넘었다. 그 얘기를 자랑 삼아 했더니. 친구들이 피식 웃더란다. 그 의미를 이제야 알았다고 한다. 일은 좀 고되지만 열심히만 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곳, 그곳이 어촌이라는 이야기다.

▲ 문어·주꾸미 조업에 활용되는 주꾸미 단지를 손질하는 정수원 씨

 

 

텃세요? 다 자기 하기 나름이죠

정 씨가 어릴 때 고향 바닷가에는 물고기가 지천이었지만 돈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180도 바뀌었다. 어족 자원 고갈로 양식이 일반화되면서 자연산 물고기 값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어획량에 따라 가격 형성은 유동적이지만, 그렇게 큰 부침은 없다고 했다.

“나이 50대 중반 넘어 귀어를 하면서 큰 돈 벌 생각은 금물입니다. 귀어를 하면 3~4년 정도 적응 기간이 필요해요. 그러면 60세죠. 그때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일을 남들만치 하기 힘듭니다. 물론 이전에 어업에 종사 한 경력이 있으면 모르죠”

모든 것이 그렇듯 때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큰 욕심 없이 노후를 보낼 요량이면 대환영이라는 그다. 보통 귀어 시 지역 텃세를 걱정한다. 이에 대한 그의 입장은 분명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 정도 각오도 없이 귀어를 한단 말입니까? 자신을 낮추고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훼방을 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 귀어희망자 윤일근 씨(우)를 돕는 귀어 선배 정수원 씨(좌)

듣고 보니 그렇다. 대도시에 살았다고 뻣뻣하게 구는 사람을 좋아할 이는 없다. 귀어체험프로그램에 대해서도 한 가지 아쉬움을 토로했다. 귀어희망자들이 선배 귀어인 가정에서 지내며 체험을 할 수 있는 ‘귀어촌 홈스테이’ 사업이 있는데 아직 현장까지 홍보되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바다는 땀 흘린 만큼 보답한다. 정 씨는 가끔 배에 낚시객을 태우기도도 한다.

“승선료는 무료입니다. 대신 10마리 잡으면 2마리는 기름값으로 받습니다. 5마리 이하면 이 마저도 안 받아요.”

비웠기에 오히려 가득 차 보이는 걸까? 마치 한 끼 식사를 거하게 해치우고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그에게서 여유가 느껴진다. 서울에 자주 올라 가느냐는 질문에 그는 시원스레 너털웃음을 짓더니 손사래를 친다.

“아유, 여기가 얼마나 좋은 데 거길 갑니까. 지인들이 내려오죠. 와서 낚시도 하고 쉬었다 갑니다.”

사실 정 씨는 지친 서울생활을 견뎌내느라 수많은 여행을 했다. 2012년 말 울릉도를 끝으로 전국 순회를 마쳤다는 그다. 돌아본 결과 고향만치 좋은 곳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 제가 둘러본 결과 제일 살기 좋은 곳으로 꼽은 곳은 전남 강진입니다. 다음이 강원 양양이고요. 제 고향 남해가 동메달입니다. 하지만 고향엔 낯 익은 풍경이 있고 친구들이 있지않습니까. 이런 것을 합산하면 저에게 가장 살기 좋은 고장은 남해라는 결론이 나오죠.”

에둘러 고향 자랑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정 씨다.

평화로운 어촌의 공기 덕일까,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한 번 낚시하러 오세요. 배는 공짜입니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닌 듯싶다. 편안한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자, 이야기 끝났으면 밥 먹으러 갑시다, 제가 사겠습니다”

그가 먼저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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