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알로에 건강법
경이로운 알로에 건강법
  • 최연매
  • 승인 2011.01.20 15: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이로운 알로에 건강법

의약품 개발과 의료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또 인류의 건강 역시 획기적으로 증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건강을 해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바로 환경오염과 의약품의 부작용이다. 어떤 면에서 사회의 새로운 골칫거리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부작용이 없는 생약(生藥)에 관심을 쏟게 되고, 악성질환이나 성인병 난치병에 이르기까지 생약 효과의 진상을 구명(究明)하려 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약재 중 하나가 ‘알로에’다.
 알로에는 아프리카와 지중해 연안, 그리고 아프리카 남동쪽에 있는 마다가스카르 섬이 원산지로 열대 내지 아열대 식물이다. 인류는 고대로부터 자연에서 얻어지는 여러 가지 식물의 잎과 뿌리를 건강요법에 사용해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신비의 물질, 하늘의 축복으로 불리는 알로에는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약초 중 하나다.
 알로에는 알로에 속의 백합과 다년생 상록초본 열대식물이다. 우리 조상은 수천 년 동안 신선한 잎 추출액을 위장 질환과 화상, 곤충에 물린 상처의 치료제로 널리 사용해 왔다.
 알로에의 종류는 전 세계적으로 잡종을 포함해 600여 종이 알려져 있다. 이 중 약용 혹은 식품용으로 사용되는 것은 10여 종에 불과하다.

인류는 알로에를 어떻게 사용했을까? 알로에가 민간에서 치료제로 사용됐다고 하는 기록은 기원전 21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메리아 의사가 기록한 석판 (Clay Tablet)이 그것이다. 이 석판에는 당시 의사들이 높이 평가한 약용식물 가운데 알로에를 꼽고 있다.
또한 독일 학자 에베르스(Ebers)는 고대 이집트의 도시였던 테베 지방의 무덤 속 미이라 관에서 기원전 1552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문서를 발견했다. 그 문서에는 미이라의 천에 알로에를 사용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유향, 몰약, 아편, 벌꿀 등과 알로에의 약효가 적혀 있다.
기원후 1세기부터 알로에의 용도는 더욱 다양해지고, 그 효능과 구체적인 조제방법도 자세히 기록되기 시작했다. 로마황제 네로의 주치의로 고대 최고의 의학자라 일컫는 디오스코리데스(Dioscorides)가 지은 ‘그리스본초’라는 책에서는 알로에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알로에는 수렴작용이 있고, 잠을 촉진하며 몸을 튼튼하게 한다. 또 배를 편안하게 하고, 위를 정화한다, 2숟갈 정도를 물이나 우유를 함께 마시면 좋다.’
기독교 성경에도 알로에에 관한 기록이 네 군데 나온다. 특히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시신에 방부 향료로 알로에를 발랐다고 적혀 있다. 그 후 12세기 「독일약전」에 알로에가 수록됐고, 이후 오늘날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20여 개국의 약전에 알로에가 수록되어 있다.
중국의 알로에 역사는 알렉산더 대와의 페르시아 원정을 계기로 시작됐다. 알렉산더 대왕이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전했다고 전해진다.
중국 문헌에 알로에가 처음 언급된 것은 송태조 때 편찬된 ‘개보신상정본초’이다. 이름을 줄여 ‘개보본초’라고 하는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노회는 열풍 번민, 흉격 간의 열기를 주로 다스린다. 눈을 밝게 하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어린이의 전간(간질병)과 경품을 다스리고, 오감(여러가지 감질병)을 치유하고, 삼충(여러 가지 기생충)을 죽인다. 그리고 창루(종기)를 치유하고, 파두독(파두는 한약재로 쓰는 독약)을 푼다.” 여기서 노회라고 한 것이 곧 알로에를 일컫는 것으로, 그 뒤 중국, 한국, 일본의 문헌에 모두 ‘노회’라고 적히게 되었다.
개보본초에는 당대의 시인 유우석(772~842)의 체험 사례가 전해지고 있다. 이 체험이 정화본초의 전언방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 사람들은 알로에를 민간 치료제로 사용했으며, 13세기 말경 원나라 때 중국을 여행한 마르코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중국인들이 위병 치료와 종기, 피부질환에 알로에를 사용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에도시대에 나온 「야마토본초」에 알로에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16세기부터 입국한 서양 선교사들이 알로에 아보레센스 생초를 들여와 따뜻한 지방에 심었고, 이곳에서 자생한 알로에를 민간약으로 보급했다는 것이다. 1945년 알로에를 세계적으로 알려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알로에가 방사능 화상을 흉터도 남기지 않고 치유함으로써 세계적인 알로에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알로에가 언제부터 처음 사용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일찍이 중국으로부터 한방 치료법과 한약재가 수입되었으므로 꽤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알로에가 처음 소개된 문헌은 광해군 2년(1610년)에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이다. 이 책에서는 알로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노회는 약성은 차고 맛은 쓰며 독성이 없다. 어린이의 오감(어린이의 만성 허약증)을 치료하고, 삼충을 주이며, 치루(치질의 일종)와 개선(옴)과 어린이의 열경(열성경련)을 다스린다.” 그 후 고종 때의 방약합편 증보판(1887년)에 알로에가 다시 한번 소개된다.
“노회는 성질은 차고 곤충을 죽이며 감질을 치료한다. 전간과 경축(경기로 몸을 뒤틀림)을 함께 다스린다. 궐음으로 들어간다. 태워서 쓴다.”
알로에에 대한 기록은 고종 때 황도연의 「의방혈투(1869)」, 황픽수의 「방약합편(1886)」등 일련의 의서에도 적혀 있다. 근세에 들어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58년 「대한약전 제1판」에 수록되었고, 계속해서 개정 3판까지 기록이 이어졌다.
알로에는 이후, 1979년에 이르러서야 백재(伯裁) 김정문 선생에 의해 현대화·대중화하기에 이르렀다. 알로에는 이렇듯 역사 속에서 인류의 사랑을 받아왔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효능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