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이 제 맛, 장치찜
겨울철이 제 맛, 장치찜
  • 윤성도 자유기고가
  • 승인 2011.01.0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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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도의 바닷가 이야기>

 

장치. 학명으로는 벌레문치다.

 
‘장치’라는 물고기가 있다. 원래 학명은 ‘벌레치’.  
 ‘장치’는 강원도 사투리다. 몸길이가 유난히 길어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한다. 얼룩덜룩한 무늬에 물컹거리는 몸체, 미끈거리는 껍질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못생겼다. 예전엔 물고기 취급을 하지 않아 거들떠보지도 않던 생선이다.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생선

 그런데, 그 장치가 이 겨울에 주가를 올리고 있다. 장치와 비슷한 처지의 뚝지, 곰치도 겨울이면 인기대열에 들어선다. 강원도 거진의 도치(뚝지)탕과 도치알탕, 속초, 삼척의 곰치탕이나 장치찜을 겨울철 동해안 별미음식으로 손꼽는다. 초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가 이들 생선이 최고의 맛을 내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동해안 겨울 특산물은 양미리, 도루묵에 이어 어획되는 명태가 되어야 맞다. 그런데 그 명태가 자취를 감춘 지는 열손가락으로 두 번을 꼽아도 모자라는 세월이 지났다. 언젠가부터 그 빈자리를 대신해온 것이 장치, 뚝지, 곰치다. 이들 못난이 삼형제(?)가 인기를 끄는 것은 저지방에다 여느 생선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이 들 생선은 또 양식하지 않는 완전 자연산이라는 것, 그래서 자연산 별미를 찾는 열성 미식가들의 발길을 잦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40년 전통을 가졌다는 삼척의 한 장치찜 전문 식당을 찾았다. 소도시에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거리에, 그저 그런 외관을 한 소박한 식당이다. 장치찜 뿐이 아니라, 곰치, 도루묵, 가자미에 명태찜까지 하는 찜요리 전문집인데, 이름은 생선과는 관계가 없다싶은 ‘울릉도호박집’이다. 왠지 웃음을 머금게 한다.

 오히려 장치가 생선 같지 않아서 조리하기 시작했다는 안주인 이학수(69)씨는 장치는 회로도 먹고, 생것을 그대로 매운탕을 끓이기도 하지만, 장치의 참 맛은 찜이라 한다. 그것도 겨울 찬바람에 꾸덕꾸덕 말린 놈이 제 맛이라 한다. 하지만, 여느 생선처럼 내장만 빼고 그냥 말리는 것이 아니란다. 장치껍질에는 기름기가 많은데, 이 기름기를 없애는 것이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내는 비결임을 강조한다. 기름기를 빼지 않으면 냉동보관 중에도 육질이 누렇게 변하고, 생선기름특유의 쩐 냄새와 노린내가 나 먹기 거북하다고 한다. 또 기름기를 빼지 않으면 육질이 돼지고기 비게 처럼 찐득찐득해진다. 기름기 제거방법에 대해서는 말없이 웃기만 한다. 40년 전통의 노하우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장치찜. 달짝지근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장치회. 넙치 맛 못지않다.

 

 

 

 

 

 

 

 기름기 빼고 말려야 제 맛
   
장치찜의 조리는 다른 생선찜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멸치와 다시마 등 갖가지 재료를 넣어 이 집만의 비법으로 만들었다는 특별한 육수에 집 간장과 왜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여기에 시래기를 깔고 숭덩숭덩 썬 무와 장치를 넣은 다음, 마늘에 홍고추, 청양고추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넣는다. 비린내 가시라고 설탕도 약간 친다. 한소끔 끓고 나면 두부와 고춧가루를 넣어 저어 주며 자작할 때 까지 조린다. 고춧가루를 미리 넣으면 색이 검어지고 제 맛이 나지 않는다. 고춧가루는 반드시 최고급 태양초를 사용한다. 그래야 맵지 않으면서 단 맛이 난다고 한다.

 조려낸 장치찜의 맛은 달착지근하면서 입에 착 붙는다. 생선기름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 담백하다. 양념이 몸에 밴 육질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듯 부드럽게 퍼진다. 물컹거리던 육질이 마르면서 이런 맛을 내는가 싶다. 부드럽게 졸깃거리는 장치껍질은 또 다른 맛이다. 갖은 양념과 장치 육즙이 속속들이 녹아든 무와 시레기도 장치맛 못지않게 감칠맛을 낸다. 아니 장치보다 더 깊고 진한 맛이 나는가 싶다. 장치찜은 대체로 단 맛이 강한데, 설탕을 넣어 나오는 맛과는 다른 차원의 맛이다. 이 씨는 무와 양파, 고춧가루에서 나오는 단맛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울릉도호박집’의 장치찜을 찾는 까닭을 알 것 같다.
이 씨는 장치가 뱀을 닮은 생선이라 한다.

 가물치가 뱀을 닮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장치가 뱀을 닮았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 뱀이 몸체가 길고 기름기가 많듯, 장치도 몸체가 길고 기름기가 많기 때문이라 한다. 장치를 먹고 오줌을 누면 오줌이 뿌옇게 나온단다. 몸에 좋다는 얘기다. 특히 남자에게. 뱀탕이 몸에 좋듯 장치도 몸에 좋은 음식이라 주장한다. 여자에게는 미용에 좋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30년 전통의 호박술 전문집 

 

40년 전통의 장치 조리솜씨를 가진 이학수씨.
식당이름이 어째서 ‘울릉도호박집’이냐고 물었다.
 이 씨의 고향은 경북 안동, 울릉도와는 아무 인연도 관계도 없다. ‘삼척호박집’으로 옥호를 지으려고 갔는데, 담당자가 ‘삼척호박집’ 보다는 ‘울릉도호박집’이 더 어울리지 않느냐고 하는 바람에 그렇게 했다며 웃는다. 아마도 인구에 회자하는 ‘울릉도 호박엿’을 떠올렸음이 분명하다.

 

 호박집으로 이름 붙인데 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빚어온 호박술 제조비법을 30년째 이어온 호박술 전문집이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빚어지는 호박술은 약술. 식당 옆 곳간에는 수 십 덩이의 호박과 보리엿기름, 도라지, 오가피, 쑥 등 호박술 제조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가 쌓여있다. 호박술은 언뜻 보기에 오렌지 쥬스색을 닮았는데, 맛은 막걸리와 비슷하고, 단맛이 강하다. 그래서 술을 못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을 같다. 몸에 좋다는 장치찜에 약으로 먹는다는 호박술을 곁들인다면 환상적인 건강음식 콤비가 될 것도 같다.

 ■ 울릉도호박집 : (033-574-3920) 강원도 삼척시 정상동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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