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창골 포경선 선주의 회고
염창골 포경선 선주의 회고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0.11.1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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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다방에서 뱃고동소리 기다린 선주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내 집이 오덴가 하몬 구룡포2리 창주리라. 염창골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소금을 고았다 캐서 염(鹽) 자를 붙인 기라. 옛날은 요까지가 다 바다였재.

내가 살(쌀)장사를 해서 돈을 쪼매 벌었재. 그라다가 고깃배와 인연이 닿았다. ‘흥안호’라고 25톤짜리 목선인데, 크기도 젤 작은 기라. 원래 울산 사람 배로, 구룡포에는 흥안호 하나뿐이고, 나머지 스무 척은 모두 울산(장생포)에 있었는 기라.

그란데 남들은 고래를 턱턱 잡아오는데, 울산 선주 배는 영 못 잡는 기라. 지름(기름)도 대야재, 뱃사람들 믹(먹)이기도 해야재. 그래 자꾸 날보고 살을 외상 달라카는데, 한 번은 주어도 두 번은 줄라카나. 엔(안) 주지. 그래 한 번은 하소연을 하더니, 나하고 어불려보면(힘을 합치면) 어떨꼬 카데. 가만 생각해보니 한 번 해봤으몬 하는 생각도 들대. 그라몬 좋다, 그랬재.

한데 이기 또 안 잡히는 기라. 지도 미얀코(미안하고) 또 미신을 믿었던지, 날보고 ‘마, 김 사장 해보소.’ 그라는 기라. 캐서 명의를 내 앞으로 해뿌린 긴데, 참, 희한채? 그래 놓으니 마 쪼매씩 고래가 잡히는 기라. 그라이 원래 선주가 날 보고 배는 작아도 벌기는 쪼깨 버니까 마, 흥안호 이거를 사라 그라는 기라. 마침 울산서 철선이 하나 났는데, 오데서 빚을 내서라도 그걸 알아보겠다카면서. 그 때가 73년돈데, 그 동안 살장사 해서 돈도 쪼매 번 게 있으이깨네 쉽게 살 수 있었재.

그 뒤로 고래가 제법 잡히는 기라. 아침나절 항구다방에 앉아 있으몬 ‘뚜~우!’ 하고 고동소리가 들리재. 뛰(어)가보믄 터억하니 고래를 차고 들어오는 기라. 처분은 수협이 다 알아서 해 주재, 참 수분(쉬운) 기라.
고래를 잡으몬 죽변 근방서부터 보이스(무선전화)로 소리치재.
“선주, 올라오이소!”
그 때가 젤 기분이 좋재. 안주 하고 정종 한 병 올려주면 그기 또 인사인 기라. 고래 한 마리 팔몬 30포르는 선원들 주고, 나머지는 지름을 댄 내가 갖는 기재. 그 때는 마당개도 만원짜리 하나 물고 다녔다 카이. 고만큼 경기가 좋았다 말이재.

그래 한 번은 고래를 우째 잡는가 싶어 따라붙었다. 나는 구경삼아 갔는데, 포장(砲長)이 눈치를 보는 기라. 와 그라노 캤더니, 고래를 보고 총을 쐈는데 헛방을 놔뿌리몬 이기 영 선주한테 미안커든. 그래 고래잡이배에는 말캉 친척들을 태우는데, 와 그라노 카몬 ‘저 포장, 오늘 헛빵 질렀다!’ 그라몬 안 되잖아? 고래 한 방에 돈이 얼만데? 잡으몬 200만 원 얻어먹을 걸, 몬 잡으몬 생돈만 날리는 거 아이가?

하긴 포장만 나무랄 게 아인 기라. 고래는 물 우로 5분지 1밖에 앤 올라오고, 나머지는 물 밑에 있으니까네 그거 맞추기가 울매나 힘들겄노? 파도는 깝죽대지, 배는 또 가만 있나? 오르락내리락해대지.

열두 가지 맛을 내는 고래고기

고래잡이는 2월부터 시작하재. 해체장(解體長)이 따라붙은 장생포 철선들은 출발하몬 맨 먼저 서해안 소청도로 간다. 게서 한 달 정도 조업을 하몬 고래가 남쪽을 빙 둘러 울릉도 쪽으로 올라가는데, 그걸 따라붙다 보면 한 철이 끝나재.

그라지만 우리 흥안호는 멀리 몬 갔다. 보리가 누렇게 익을 때몬 대보(호미곶) 저쪽으로 풀쩍풀쩍 고래가 뛰노는 게 보인다. 참, 멋졌재.

우리 흥안호는 먼 데로 몬 가니 하루만에 다부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북한 특수부대 김신조니 뭐니 하는 놈들이 사고를 치고부터해가 빠진 다음에는 영 몬 나가게 했거든.

고랫배 타는 사람은 우선 눈이 좋아야 하는 기라. 망루라 카는 거 있재? 그 우(위)에 망통이 있는데, 화장(조리사)도 올라가고 포장도 올라가 고래를 찾는 기라. 나도 올라가 봤는데, 첨에는 쪼매 겁도 났지만 이내 기분이 좋아지는 기라. 처음 고래를 찾을 때는 전방 180도를 살피고, 찾아낸 다음에는 사방 360도를 살핀다. 와 그라노 카몬 고래란 놈이 콧구멍으로 숨을 쉬고 물속으로 들어가뿌몬 이놈이 오데서 다시 튀나올지 모르는 기라. 그 때는 속력도 낮추고 살살 따라붙는다.

그 때는 망통이 젤 바쁘다. 고래가 나타날 방향을 보고 소리를 쳐야 키를 맞출 수 있으이 말이다. 왼쪽으로 나오믄 ‘보루!’라 카고, 오른쪽으로 나오믄 ‘시라보루!’, 정면에서 나오믄 ‘헷또!’인 기라. 말캉 왜놈 말이재.
고래 종류도 많재. 밍크, 나가수(긴수염고래), 곱생이 등등. 돌고래라 카는 거는 음력 한 10월 쯤 되몬 북에서 가(해안)로 탁 붙어 온다꼬. 늦가을 철새 오듯이 말이다. 그놈은 늘 가로 붙어만 댕기다가 철 지나면 다시 올라간다꼬. 돌고래는 떼를 지어 다니는데, 맨 앞에 선 놈이 방향을 바꾸면 말캉 따라간다. 그거로 보믄 우리는 못 알아들어도 즈거끼리는 통하는 말이 있는 기라.

그란데 고랫배 치우기 몇 년 전부터 몽땅 자취를 감추어버린 기라. 마, 소련놈들이 다 잡아뿌린 건지, 아니면 오데 먼 데로 가뿌렀는지. 그 때 돌고래라 카는 거 진짜 맛있었다. 지름도 많아서, 한 50자 되는 놈은 한 도라무(드럼)나 나왔다. 그 때 박정희 대통령이 울산 오면, 열넉 자 열닷 자 짜리 고래갈비 좋아하셨다. 경주 사람들도 넋을 뺐고.

고래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살코기는 모두 열두 가지 맛이라. 지름은 비누공장에서 사러 오지, 지름 짜고 난 바싹 익은 거는 고래과잔 기라. 껍데기는 또 얼마나 맛 있는데? 요새는 그런 고래고기 없다. 이상한 냄새도 나고. 그거 다 곱생등이라 카는 거다.

내가 고래잡이를 그만둔 지도 어언 25년이다. 그 때(1986년) 일본은 무슨 연구를 한다카면서 일년에 1,000마리씩 잡기로 허락을 받았는데, 우리는 와 그런 연구를 안 했는지 모르겄다. 내 나이 어언 90이네. 살아생전 고래잡이가 다시 되기나 하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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