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생텍쥐페리, 원양어선 선장 출신 해양문학가 천금성 그의 항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국의 생텍쥐페리, 원양어선 선장 출신 해양문학가 천금성 그의 항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박종면 기자
  • 승인 2017.07.07 17:0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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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돌 맞은 원양산업이 낳은 인물>

[현대해양 박종면 기자] “나의 항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원양어선 선장으로 10여 년 대양을 항해했던 천금성 작가.

그는 늘 그렇게 바다에 나가기를 원했다. 원양어업 60년 역사가 낳은 ‘한국의 생텍쥐페리’ 천금성 작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프랑스 출신의 비행기 조종사 생텍쥐페리는 20세기 초 항공루트 개척에 뛰어들어 수차례나 불시착하는 등 죽음과 맞닥뜨렸음에도 비행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남방 우편기≫ ≪야간비행≫ ≪싸우는 조종사≫ 등 유명한 항공소설을 썼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3년 연합군의 시실리 진격을 돕기 위해 다시 정찰기로 출격했다가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천금성 작가 또한 오랜 원양 항해 체험을 소재로 30여 편의 해양소설을 남길 수 있었다. 그의 본격적인 해양작가의 길은 1968년 참치잡이를 위해 당시 고려원양 수산부장 김재철(동원그룹 회장)이 이끄는 선단에 2항해사로 승선, 인도양으로 출항하면서 열렸다. 이 항해는 원양어업 역사상 ‘인도양 개척’이라는 의미 있는 항해가 됐다.

천 작가는 처녀출항을 하며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2년 후 귀국하면 선장이 되겠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항해 체험을 바탕으로 해양소설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이뤄냈다. 출항 이듬해인 1969년 망망대해 인도양 한가운데서 그 험한 어로작업 틈틈이 흔들리는 갑판에서 쓴 단편소설 ≪영해발부근≫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이다.

또 하나의 목표였던 선장의 꿈도 출항 2년 뒤 부산으로 귀항하자마자 이뤄졌다. 그는 신춘문예 당선을 통해 원양선사의 명예를 드높인 공과 근면성을 인정받아 당시 이학수 사장의 파격적인 인사로 선장에 임명됐다. 선장 작가 천금성의 항해와 집필은 이로부터 10년이나 계속 됐다. 그는 원양어선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허무의 바다≫ ≪은빛 갈매기≫ ≪바다의 끝> ≪이상한 바다≫ ≪외로운 코파맨> 등의 해양창작집과 ≪표류도≫ ≪시지푸스의 바다≫ ≪남지나해의 끝≫ ≪지금은 항해중≫ 등의 해양장편소설을 발표했다.

 

▲ 하선 후 평어선원으로 다시 원양어선에 몸을 실었던 천금성(왼쪽 끝) 작가.

승선 경험으로 해양 다큐 ‘오대양을 가다’ 만들기도

천 작가는 자신을 스스로 ‘천상 뱃놈’이라 했다. 그런 ‘뱃놈’은 특이하게도 농업대학 출신이다.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 학부라는 서울대학교를 나왔다. 그는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한국원양어업기술훈련소를 수료하면서 항해사가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그에겐 또 다른 특이한 이력이 있다. 그는 정권과의 인연으로 방송국(MBC 문화방송) 편집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5공시절인 1980년대 초중반의 일이다. 원양어선 선장 출신답게 ‘원양어부들의 24시’를 통해 원양어부들이 겪는 갖가지 고락의 파노라마와 함께 ‘참치라는 고기는 어떻게 잡고, 어떻게 처리되며, 비싼 참다랑어, 눈다랑어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가’ 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마침 동원산업이 참치 통조림 생산 유통을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해서 참치의 대중화를 앞당기기도 했다.

그는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해양 드라마 제작도 기획했다. 사모아, 라스팔마스 등 현지 로케를 감행하며 거금의 제작비를 투자해 촬영한 해양 특집드라마 ‘남태평양 3,000마일’이 그것이다. 이 드라마는 문화방송 창사 24주년 기획 드라마로 전파를 탔다.

그는 해양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확 바꾸어보자는 취지로 야심찬 기획안을 냈다. 그리고 한국 TV 사상 최초의 해양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는 ‘의지와 도전의 현장-오대양을 가다’를 만들었다.

그가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늘 세상의 뒷전에서만 맴돌던 우리 수산업계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과 그 위상이 한 단계 높아지면서 그림의 떡으로만 생각되던 참치라는 생선이 비로소 우리 식탁에도 일상적인 식단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원양어업 개척사 집필

지난 2010년 발간된 단행본 ≪불타는 오대양≫(협동문화사 刊)은 그가 처음 배를 타고 인도양으로 나가게 된 동기부터 10년 넘게 선장 생활을 하는 동안 겪었던 온갖 풍파와 하선한 다음에도 동원산업 소속선에 말단 어부로 다시 승선, 먼 바다로 나갔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지난 해 6월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기일인 6월 26일은 60년 전 우리나라 첫 원양어선(시험선)인 지남호 출항식이 열린 날이다(출항은 3일 뒤에 함).

 

▲ 스스로를 ‘천상 뱃놈’이라 불렸던 천금성은 지난 2016년, 지남호 출항기념식이 열린 6월 26일을 택해 돌아오지 못할 항해를 떠났다. ⓒ박종면

암 수술 전후에도 집필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그가 편집고문으로 활동하던 월간 현대해양에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역사를 특출한 문장으로 재미있게 풀어낸 <한국 원양어업 개척사>와 <한국 조선산업 개척사>, <한국 해운산업 개척>, <한국 어민사> 등을 포함한 ≪오대양 개척사≫, ≪세계해양문학순례≫ ≪쪽빛 바다 지켜온 선각자들≫ ≪세계를 경악시킨 해난사고들≫ 등을 연재하는가 하면 매월 바다와 수산업을 소재로 ‘파랑(巴浪) 칼럼’ 코너를 이어갔다.

천 작가는 지난 1993년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한국해양문학가협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늘 바다를 동경했던 그는 한국 원양어업 60년이 낳은 한국의 생텍쥐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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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2020-11-24 19:01:43
천금성(黃江에서 北岳까지)
https://blog.naver.com/ho2994/222094813180

제나 홍 2017-09-06 20:27:23
왜 천금성 작가의 빼놓으면 안될! 주요한 한 가지 이력을 빼놓은 건지요?
80년 10월에 집필한 <황강에서 북악산까지;전두환 전기>를 집필했다는 사실말입니다
mbc의 입사과정 또한 당시 낙하산으로 비판받았다는 기사입니다.
독자들이 전체적으로 소개된 저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