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매력에 ‘푹’ 빠진 제주 최연소 해녀
바다의 매력에 ‘푹’ 빠진 제주 최연소 해녀
  • 김보연 기자
  • 승인 2017.03.08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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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고교 대표 수영선수에서, 추자해녀 대표선수로 변신
포장조차 풀지 않은 바닷속을 마음껏 누비다

▲ 제주 최연소 해녀 정소영 씨
  ‘오기’로 시작한 해녀의 길, ‘혹독’ 그 자체
 “어머니처럼 상군해녀가 되고 싶었다. 수영선수 출신 혹은 최연소 해녀같은 꾸밈말보다 상군해녀란 소리가 한결 듣기 좋다”, 추포도 해녀 정소영(33세) 씨의 바람이다.

 사실 정 씨는 수영의 본향이라 할 제주도에서 중고교시절 수영선수 생활을 보냈다. 전국 규모 대회에도 여러 차례 출전해 동메달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학교 등 주변에선 섬 출신이니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수영실력은 추포도 주변 바다에서 헤엄치며 익힌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제주도로 건너가 방학 때나 찾아가는 고향 섬이었기 때문이다. 바다보다는 제주시내 수영센터에서 익힌 선수로서의 수영으로, 정소영 씨는 “해녀가 되고 보니 온실 속 화초였다 할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회상한다.

 졸업 후엔 실업팀 수영선수로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말 그대로 좁은 문, 수영센터 강사생활을 하며 몇 년을 지냈다. 그러던 중 음식점을 열 계획으로 일도 배울 겸 음식점 일을 해봤으나 성에 차지 않았다.

 몇 년을 두고만 보던 모친이 ‘그만 섬으로 돌아와 해녀가 되라’고 권했다.

 이에 정 씨는 “어머니가 보기에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일 지언정 기본 수영실력은 있고 체력이 월등하니 잠수만 익히면 중하군은 되겠다 싶으셨다고 한다”며 “하지만 어머니의 ‘우물 안 개구리’란 말에 선수시절의 오기기 발동했다. ‘까짓 해녀물질 대체 뭐기에?’했던거다. 결국 오기로 2012년 주변에 해녀가 되겠다고 호언, 짐 싸들고 추포도로 들어왔다”고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다.

 그의 호기(豪氣)로 택한 해녀란 직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3년 세월동안 모친에게 혹독한 수련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조류가 워낙 빠른 섬이어서 추자도에서 상군 소리 듣는 해녀들조차 물질 한 번 해보고는 도리질하며 돌아간다는 추포도 주변 바다. 정소영 씨는 그리 거친 물속에서 하군도 되지 못한 해녀를 상군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모친의 물질 수련은 보통이 아니었다고 귀어 4년 전을 떠올린다.

 모친이 멘토, 추포해녀 명맥 잇는 섬 처녀

▲ 꽃다운 나이의 해녀에게는 꽃보다도 ‘소라’다.
 정소영 씨의 고향이자 추자도에 딸린 섬 추포도는 지 씨문중의 터전이다. 섬 속의 섬이 추자도이고, 추자도 속의 섬이 추포도인데, 그 중에서도 정 씨네 한 집만 살아가는 단독가구다. 정규 여객선도 없고, 추자면 소속 행정선이 일주일에 네 차례를 오갈 뿐인 전형적인 낙도다.

 그의 모친 지기심 여사는 이 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 주변 바닷속을 한눈에 꿰고 있는 해녀다. 정 씨의 말대로 혹독할진 몰라도 주로 물질할 바다가 추포도이기에 이만큼 안성만춤인 최적의 가정교사가 있을까.

 이에 정소영 씨는 “실내에서의 수영과 물결이 일거나 파도까지 치는 바다에서의 수영은 다르다. 수영선수 생활을 오래했어도 잠수까지 잘한다 할 수준이 아니었으니 우물 안 개구리가 맞았다”라며 “잠시나마 가졌던 ‘까짓’ 운운하는 건방진 생각부터 버리고 생초보로서의 자세부터 갖췄다. 해녀로서의 기본인 잠수와 물질기술 이외에 조류와 물때에 따라 천차만별인 바닷속 읽는 방법, 계절에 맞춰서 섬 주변 잠수어장 찾기 등 모친이 일러주는 바다에 대한 지식을 스펀지인양 흡수했다”고 강인한 표정을 짓는다.

 정 씨는 이렇게 두 해쯤 지나고 나서야 들숨날숨 조절이 용이해졌고, 수중압력과 7kg 안팎인 납덩이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무렵까지도 모친은 그에게 물속에서 설사 전복을 발견했다 해도 잡아내오는 일을 금지시켰고, 당신의 물질 모습을 수중에서 지켜보며 어획물을 섬으로 옮기는 등의 보조역할에 충실하도록 했다.

 ‘제주 최연소 해녀’, 큰 부상(負傷)도 입어
하군도 아니고 예비해녀인 채로 추포도에서 보낸 4년의 세월을 보내던 중 정소영 씨에게도 때가 왔다. 정 씨가 추자도수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한 이후, 어촌계 총회를 거쳐 ‘잠수어업인증(해녀자격증)’을 받은 것은 지난 2014년, 그의 나이 서른되던 해의 일로 제주도에서 3년에 한벌씩 지원해주는 잠수복을 우수상 받는 기분으로 받았다며 환하게 웃는다.

 이때부터 정식 ‘제주 최연소 해녀’로 기록돼 오늘에 이르는 정소영 씨는 “나보다 어머니가 더 좋아하더라”며 “나이들수록 물을 보게 되고 조금만 거칠어도 겁이 난다. 단독잠수를 하며 외롭게 버텨온 어머니에게 이제 난 정식으로 ‘짝’이 된 것 같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정 씨가 바로 숙달된 해녀처럼 물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 큼직한 전복을 발견하고 나서도 바위에서 떼어내자면 어느 틈에 빗창(해녀장비인 무쇠 칼)을 찔러야 할 줄 몰라 여덟 번을 오르내리며 살펴보고 나서야 잡아냈다.

 모친과 함께 바닷속을 들며나며 잡아내는 어획들은 오롯이 그의 몫이 되는 것이기에 악착같이 소라를 잡아내고, 전복이며 해삼을 탐내다 사고도 당했다. 소라를 채취하려고 수중바위 틈에 들어갔다가 나오던 중, 정소영 씨 쪽으로 튀어나와 있던 모서리에 오른쪽 허벅지 바깥쪽을 깊게 긁힌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정신을 살피고 살펴보니 두꺼운 잠수복을 뚫고 상처를 낼 정도로 날카로웠던 갯바위 모서리가 눈에 들어왔단다. 순식간에 물속에서 피가 번졌다. 정 씨도 놀랐지만 다가온 모친은 거의 기절할 정도였다.

 고무보트를 띄워놓거나 때로는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며 언제나 모녀의 물질상황을 눈여겨보는 작은오빠가 서둘러 보트 위로 옮겨 지혈을 하고 날듯이 보건소로 이송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작은오빠의 재빠른 조치 덕에 큰 탈을 겪지 않았다”며 “하지만 제주 병원에 장기 입원해 물질은커녕 세 달 동안은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상처가 컸었다”라고 웃으며 말한다.

▲ 고무보트를 타고 추자도에서 추포도로 이동하는 중이다. 멀리보이는 섬이 추포도
 추자도 바다, ‘포장풀지 않은 선물’
 정소영 씨는 해마다 열리는 제주해녀축제 중 해녀수영대회에 추자도 대표로 참가해 TV 출연도 한 바 있다. 당초엔 추운 날씨와 사나운 바다 탓에 수면 위에서 잠깐 촬영포즈만 잡기로 했는데, 본격적으로 물질을 하는 정 씨.

 한 시간쯤 물속과 수면을 오르내리며 제주해녀다운 숨비소리를 내는데 해녀맞다는 증명이라도 하듯 망사리 안엔 소라가 가득하다.

 추포바다가 청정하다는 얘기도 되는데 섬 유일한 가족들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차고도 넘치는 섬 지킴이 역할을 도맡아 하는 것이다. 특히, 소형저인망 등 불법어업을 일삼는 어선은 아예 추포도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하는데, 해양경찰 신고 정도가 아니라 정승현 씨가 고무보트를 몰고 나가 직접 부딪치고 막아낼 정도로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 섬과 주변 바다의 환경을 지켜내려 애쓰는 결과일 것이다. 낚시꾼들 사이에서 씨알 굵은 돌돔·참돔이 많은 게 이들 정씨 일가 덕이라고 소문이 나있을 정도다.

▲ 작은오빠 정승현 씨가 몰아주는 모노레일 타고 물질하러 가는 길
 현재 추포도에 사는 정씨 일가는 모두 4명. 모친과 작은오빠 내외다. 연중 낚시손님이 끊이지 않고 찾아오기에 한가할 때가 없다. 이들은 정씨 일가가 민박집으로 깔끔하게 개조한 분교에서 숙박을 하며 며칠씩 지내고 가는 단골손님들이다.

 섬 입구, 겨우 선착장 모양새만 낸 자리에서 집으로 올라가는 길엔 계단을 설치해서 가파르나마 올라가기가 한결 수월하다. 물론 짐이 없을 경우다. 어획물을 올리거나 제주와 추자도에서 구입한 생필품을 들고 이고 올라가기엔 버거웠는데, 다행히 도에서 모노레일을 설치해 준 것에 부족한 일손 해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정씨 일가가 깊게 뿌리내린 섬 추포도엔 한 해 2,000여 명의 낚시꾼들이 들고 난다. 그러나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정소영 씨는 “자가발전기를 돌려 간신히 버틸 만큼의 전기를 얻고 있는 정도다. 선착장 시설도, 상수도 시설도, 탈의실도 없어서 불편한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내게 바다는 ‘포장조차 풀지 않은 선물’이다. 청정한 이 바다의 매력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다”고 환한 미소를 드리운다. <글=김보연 기자, 자료협조=한국어촌어항협회 귀어귀촌종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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