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자인가 가난한가
우리는, 부자인가 가난한가
  • 이준후 시인/BCT 감사
  • 승인 2017.03.07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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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후 시인/ BCT 감사

 수입 맥주 소비량이 국산 맥주 소비량을 넘어섰습니다. 대형 마트에서 최근 발생한 현상입니다. 집에서 혼자 맥주를 즐기는 이른바 ‘혼맥족’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우리나라 현재 1인 가구가 전체 2,121만 가구의 34.8%인 739만 가구, 1/3이 넘습니다.

 

 행정자치부의 통계이니 믿어도 되겠습니다. 집에서는 당연히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겠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혼자 술 마시고 밥 먹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혼술’, ‘혼밥’입니다. 식당에 1인용 식단이 많아졌으며, 혼자 주점에 가는 것도 예사로운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부(富)가 증가할수록 사람들은 개인적이 됩니다.
 
 부자나라 사람들은 개인적입니다. 반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집단적이겠지요. 시골에서는 공동우물, 도시에서는 공동화장실을 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먼 옛날은 아닙니다. 지금은 아무리 벽촌이라도 공동우물, 공동빨래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시에도 공중화장실은 있어도 공동화장실은 없습니다. 화장실이며 우물이며 빨래터가 모두 각 개인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가, 자가용을 이용하는가, 집단학습을 하는가, 개인학습을 하는가, 단체여행인가, 개별여행인가, 모두 부와 관련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집단적 해결책은 비용이 더 적게 듭니다. 개인적 해결책은 비용이 더 들지만 자신만의 여유가 있습니다. 자산이 적은 사람은 집단적 해결책을 선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면 개인의 자유라는 효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공동체적 가치가 개인적 가치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는 공동체적 가치가 우위를 차지합니다. 공동체의 목표를 같이 이루기 위해 개인의 소망은 뒷전이기 십상입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나서기보다는 적응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미덕으로 인정받습니다.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 규율에 복종해야 하고 자신을 포기해야 합니다. 가정과 집단, 단체와 조직, 국가를 위해 참아야 합니다.
 

 부유한 사회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개인의 창의성과 책임감이 존경받습니다. 자아실현이라는 개인적 가치가 더 중요합니다.
 
 가족의 형태도 대가족에서 소가족, 핵가족으로 변합니다. 행복을 위해서 결혼하고 가정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혼을 한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부가 서로 의견차이 있다고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그 차이를 인정합니다. 서로 관대해지는 것입니다.
 
 생활이 궁핍할수록 집단적 규범을 강요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반대로 부가 증가할수록 전통적 관념을 벗어나 자신만의 개인적 관심을 추구하는 경향을 갖습니다.
 
 부유한 사회의 경우 노동조합 활동과 교회 참여가 줄어듭니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종교적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제시하는 문제해결 설교에 회의적이라는 것입니다. 노조의 집단적 해결책보다 개인적 해결책에 관심이 증가합니다. 시대상황은 변하는데 전통적 규범에 강조하는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높아집니다. 부자가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면 그것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부자가 된다면 많은 것이 변할 수 있습니다. 조직된 여가활동보다 즉흥적이며 가변적인 활동을 선호할 것입니다. 남녀가 같이 살지만 부부는 아닌 관계를 설계합니다. 선행을 하지만 대규모 구호단체를 통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외국여행을 좋아하지만 단체로 가는 것은 싫어합니다. 삶의 의미에 관심이 많지만 교회의 설교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개인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이지는 않습니다. 자선과 기부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또 재산에 대한 침해보다 인격 침해에 아주 민감합니다. 명예손상에 대한 소송제기가 많아지는 것과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행위에 대해 중한 처벌이 그 반증이 될 것입니다.   부가 증가할수록 위험에 대한 의식도 달라집니다.
 
 원래 위험은 수익과 비례합니다. 수익이 높은 곳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 2만 5,0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익을 추구하던 시대가 아닙니다.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안전을 우선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예전에는 웬만한 재해는 ‘하늘의 뜻’으로 치부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천재지변이란 없습니다. 사전에 예방하고 사후라도 수습에 기민하면 피해를 거의 없앨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모두가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산 신항의 컨테이너 터미널은 세계적인 시설을 자랑합니다. 우리나라 컨테이너 화물 75%이상을 처리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방파제 안쪽 그 병목에 해당하는 항구 입구에 선박주유소 건설을 고시했습니다. 주유소 시설은 제 아무리 안전하게 한다해도 위험물시설입니다. 다른 대안이 충분히 있는데도 비용이 덜 든다는 사유로 이를 추진토록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 그 자체일 것입니다. 지금은 위험을 감수하는 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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