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丁酉年 여명을 밝히는 닭
2017 丁酉年 여명을 밝히는 닭
  • 정상박 동아대 명예교수
  • 승인 2017.01.0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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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계명성(鷄鳴聲)

기원전 17세기경부터 야생 닭을 잡아 가축으로 기르면서 개량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닭이라고 한다. 사람은 가축으로 기르는 짐승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닭은 새벽에 때를 맞추어 울어서 시간을 알려 주기에 신기하게 여긴다. 닭울음은 길조의 상징이다. 설날과 정월 보름날 새벽에 어떤 소리가 처음 들리는가에 따라 새해의 운수를 점치는 청참(聽讖)을 할 때에 힘차게 우는 닭소리가 들리면 태평하고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닭은 많은 알을 품어 병아리를 깐다. 그래서 닭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다. 정초에 세화(歲畵)로 닭과 호랑이를 많이 그려 붙인 것도 나쁜 악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힘차게 홰를 치며 우렁차게 우는 닭의 울음소리는 어둠을 가르며 새벽을 연다. 이처럼 우리 신화의 세계에서도 닭소리는 암흑의 혼돈에서 개벽을 연다. 구전신화인 제주도 무가 ‘천지왕 본풀이’에 태초의 혼돈상태에서 암흑이 계속되고 오색구름만 오락가락할 때에 천황닭(天皇鷄)이 목을 들고, 치황닭(地皇鷄)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人皇鷄)이 꼬리를 치며 크게 우니, 갑을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하였다는 사설이 읊어진다.

옛날 밤바다에는 털이 덥수룩하게 난 엄청나게 큰 손만 바다에서 올라와서 뱃사람을 잡아 들어가는 ‘터럭손’이란 귀신이 있었다. 터럭손에게 상투를 잡혀 발버둥을 치던 어부가 새벽 닭울음 소리가 들릴 때까지 버티자 터럭손이 잡았던 손을 놓고 물속으로 들어가 버려 겨우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현실적으로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항구로 돌아오려고 아무리 배질을 하여도 가마득하여 낙망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닭울음 소리의 방향을 잡아 항해를 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닭은 뱃사람들에게 희망이고, 전기(轉機)였다.

역사의 여명에 등장하는 닭

우리나라 문헌신화에도 닭이 역사의 여명을 열어주고 있다. 문헌에 닭이 처음 나타난 것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왕후(閼英王后)의 탄생담이다.

경주 알영 우물가에 계룡(鷄龍)이 나타나 왼편 갈비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 자태와 용모가 유난히 수려하였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다. 월성(月城)의 북천(北川)에 가서 목욕을 시키니 부리가 빠졌다. 이 여자아이가 박혁거세의 배필이 된다. 이처럼 닭은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예고한다. 신라 김씨 왕계(慶州 金氏)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도 닭이 울어 알렸다고 해서 탄생지 숲 이름을 ‘계림(鷄林)’이라 하고 나라 이름도 그렇게 명명하였다고 한다.(‘三國遺事 券一’ 金閼旨 脫解王代)

‘삼국유사 권3’ 금관성파사석탑조(金官城婆娑石塔條)에 보면 수로왕비 허황옥이 서역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올 때에 파도를 견디기 위하여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에 희미한 붉은 빛의 무늬가 있는데, 이것은 닭 볏의 피를 찍은 것이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닭의 피를 주술적으로 이용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고려 때가 되어도 닭은 여전히 좋은 징조를 알리거나 악한 것을 퇴치하는 신비스러운 능력을 지닌다. 현종이 꿈에 닭소리를 듣고 왕위에 올랐다는 것처럼 꿈에 나타나서 길조로 작용하였다.(‘高麗史 券四’ 世家)

선한 닭과 악한 닭

고려 때 황해도 장연군(長淵郡)에 있는 어떤 절에 날마다 안개가 끼고 스님이 한 사람씩 없어지다가 마지막엔 다섯 스님이 남아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때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흰 닭을 주면서 이것을 길러보면 괴이한 일의 수수께끼가 풀릴 것이라 했다. 이 닭을 기르자 괴변이 없어졌다. 닭의 부리에 늘 피가 묻어 있어 스님이 이상히 여겨 닭을 따라가 보았더니 커다란 땅 구덩이로 가는 것이었다. 스님이 내려다보았더니 큰 지네와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네가 사람을 잡아먹었는데, 닭이 이것을 퇴치한 것이었다. 그래서 계속 닭을 기르고 절 이름도 ‘계림사(鷄林寺)’라 하였다고 한다.

닭은 집안에 기르면서 인간과 너무 가까운 자리에 있기 때문에 설화의 세계에서 의인화되거나 신령스러운 것이 되는 경우가 흔치 않다. 그러나 다음 민담처럼 오래 묵으면 영물이 되어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는 전언이 있다. 그래서 ‘계불삼년(鷄不三年)’이란 말처럼 우리 풍습에서는 닭을 오래 동안 기르는 것을 금기시하였다. 옛날 어느 곳에 십년 묵은 닭 한 마리가 있었는데, 요술을 부려 밤중에 주인에게 “문안드립니다.”라고 인사말까지 하였다. 이상하게 여긴 주인이 어느 날 밤 몰래 지켜보니까 닭이 버꾸를 몇 번 넘더니 예쁜 계집으로 둔갑을 하였다.

주인이 놀라 여인을 쫓아내었더니, 그녀가 산으로 가서 여우에게 청을 하였다. “내 주인집으로 가서 세 번만 울어주면 자기가 가서 원수를 갚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여우는 “그 청은 어렵지 않으나 내가 울 때에 적두 팥잎을 절구에 찧어 귀에 넣으면 내가 죽으니 염려된다.”고 하였다. 그 말을 엿들은 주인은 얼른 집으로 와서 준비를 하였다가 여우가 와서 막 울려고 할 때에 찧어둔 팥잎을 여우 귀에 넣었더니 죽었다. 여인도 다시 닭으로 변하여 닭장을 들어가는 것을 주인이 잡아 죽였다고 한다.

닭에도 오덕(五德)이 있다

「심청가」에 “닭아 닭아 울지 말라/네가 울면 날이 새고/날이 새면 나 죽는다”라는 애절한 한탄이 있다. 심청이 아버지와 이별하고 죽으러 떠나야 할 시간이 닥쳐옴을 안타까워하는 구절이다. 이처럼 민요나 시조에서는 밤에 임과 함께 지내다가 날이 새면 이별해야 하는 것이아쉬워서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를 원망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민담의 세계에서는 닭의 울음소리가 구원의 소리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어둠과 음기(陰氣)에서 힘을 쓰던 귀신이나 도깨비가 광명과 양기(陽氣)를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나자 도망을 가버려서 곤욕을 당하던 주인공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기르는 가축 중에서 닭은 소보다 덩치가 작고 힘도 약하다. 개나 고양이보다 영리하지도 않은 미물이다. 그러나 선비들은 닭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했다. “머리에 관을 쓴 것은 ‘문(文)’이요, 발에 갈퀴를 가진 것은 ‘무(武)’요, 적에 맞서서 감투하는 것은 ‘용(勇)’이요, 먹을 것을 보고 서로 부르는 것은 ‘인(仁)’이요, 밤을 지켜 때를 잃지 않고 알림은 ‘신(信)’이다.”(韓詩外傳)라고 칭송한 것이 닭의 오덕(五德)이다.

닭은 어둠을 쫓고 광명을 부른다. 닭은 악귀와 도깨비를 쫓고 지네를 퇴치하여 인간을 구원한다. 닭은 풍요다산의 상징이다. 닭울음은 좋은 일을 예고한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격랑에 흔들리고 있다. 어둠을 걷고 정유년(丁酉年), 밝게 솟아오르는 신년의 태양을 희망찬 가슴으로 맞이한 뒤, 전환하는 새 시대 역사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하여 각자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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