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양보다 맛, ‘도치알탕’
겉모양보다 맛, ‘도치알탕’
  • 윤성도 자유기고가
  • 승인 2008.12.26 2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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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도의 바닷가 이야기>

 

 뚝지가 제철을 만났다.
 비늘이 없고 미끄덩거리는 뚝지는 배가 볼록하여 마치 바람들어간 큰 올챙이 같다.
 뚝지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 많이 잡힌다.
 깊은 바다에 살다가 이때쯤 알을 낳으러 연안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횟집 수족관에서 배가 볼록하여 뒤뚱거리는 뚝지 모양은 볼품이 없다.
 몇 년 전 까만 해도 그 생긴 모양 때문에 생선대접을 받지 못했다.
 오죽하면 어민들이 잡히면 재수 없다고 그 냥 던져버렸을까.
 그러나 지금은 없어서 못파는 귀한 생선이 되었다.
 동해안을 찾는 겨울철 관광객들이 많아지고 뚝지의 담백하고 독특한 맛이 입소문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자연히 값도 비싸졌다.

 

 

 천대받다가  없어서  못파는  귀한 생선으로

 뚝지의 주 어장은 동해안 북부 연안인 강원도 고성, 간성연안. 강원 북부지방에서는 뚝지를 ‘도치’ 또는 ‘싱퉁이’로 부르고, 강릉에서는 ‘뚝저구’, 함경도에서는 ‘오르쇠’ 또 동해안 다른 지방에는 ‘멍텅구리’라 부르기도 한다. 

 뚝지는 도치과, 뚝지아과에 속하는 냉수성 어종으로 수심 100~200m의 깊은 바다에 사는데, 산란기가 되면 연안으로 올라와 갯바위에 알을 낳아 붙인다. 주 산란기는 2~3월이고 한 번에 낳는 알의 수는 6만개 정도가 되는데, 부화할 때까지 수컷이 이를 보호하는 부성애가 강하다.

 몸통은 둥근 공에 가까울 정도로 배가 볼록하고 몸에는 비늘과 돌기물이 없으며 피부는 매우 부드러우면서 점액질이 많고 물렁물렁하다. 몸 색깔은 연녹색, 흑갈색, 황갈색과 같이 여러 가지가 있고 마치 호랑이가죽 같은 검은 점무늬가 배 부분을 빼놓고 온몸에 흩어져 있다.

 아래턱이 위턱보다 조금 나와 있고 양턱에는 작지만 날카로운 이빨이 한 줄로 나 있고 입술은 두툼하다. 크기는 25cm 정도가 되고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는 꼬리자루에서 아래위로 마주보고 있으며 배지느러미가 빨판으로 탈바꿈되어 있는 것이 큰 특징.

 뚝지의 빨판은 둥근 형으로 비교적 크고 두꺼운 테로 이루어져 있는데, 새끼나 암컷은 피부가 얇고 빨판도 작으나 숫컷은 피부가 두껍고 빨판도 크다. 이 빨판으로 바위에 단단히 붙어 심한 파도를 견뎌내고 바위로 위장하여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거나 먹이 사냥을 하기도 한다. 움직임이 둔한 결점을 이 빨판이 보완해 주는 것이다. 

 뚝지는 십 여 년 전 만해도 연안의 크고 작은 바위 틈새에 도치가 끼어있거나 바위에 붙어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뚝지는 생긴 모습그대로 몸짓이 둔한데다 알을 배었을 때는 몸을 더 가누지 못해 옛날 해안에 사는 사람들은 발로 툭툭 차며 그냥 줍기도 했다 한다. 뚝지가 생선 대접을 받지 못하던 시절의 얘기다.

 뚝지의 처음 이름은 도치였다 한다. 강원도 어떤 어부가 어려운 살림에 제삿날은 돌아왔는데 제물을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중 하필 잡힌 고기가 도치였다. 제사에는 ‘치’자가 들어가는 생선은 상에 올리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 어부는 고심 끝에 도치를 ‘신퉁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제사상에 올렸다고 한다. 도치를 싱퉁이로 부르기 시작한 연유다. 지금도 강원도 지방에서는 도치알을 곱게 쪄 제사상에 올리기도 한다.

 

 

 

 제사상에도 오르는 뚝지알

 뚝지의 참맛은 그 알로 끓인 알탕에 있다. 강원도에서는 ‘도치알탕’으로 통하는데 도치알탕은 겨울철 강원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토속 별미음식이다. 시큼한 김치를 넣어 끓이면 얼큰하면서 시원한 국물이 맺혔던 속까지 확 풀어준다. 바로 묵은 김장김치와 뚝지와의 환상적이 만남이다.

 맛난 수산물 요리로 소문난 거진항 ‘소영식당(033-682-1929)’ 이춘란(48)씨는 뚝지알탕은 알 밴 뚝지와 김치만 있으면 요리준비는 끝난다고 한다. 알이 밴 뚝지의 배를 갈라 알과 내장을 빼내 따로 준비해 놓고 몸체는 뜨거운 물에 4~5분 가볍게 데쳐 적당한 크기로 썰어 놓는다. 큼직한 냄비에 알과 썰어 놓은 몸통을 한데 넣고 시큼한 김장 김치를 숭숭 썰어 넣어 고루 주물러 알을 섞은 다음 물을 약간 붓고 그대로 끓이기만 하면된다. 주물러 섞지 않으면 알이 서로 엉긴다.

 삶으면 푸짐해지는 뚝지알탕은 시큼한 김치와 한데 어우러져 비린내가 나지 않고 개운한 맛을 내는데 톡톡 터지며 씹히는 알과 졸깃하게 씹히는 육질의 맛이 그만이다. 암놈은 알 탕으로 많이 끓이고 수놈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숙회로 많이 만들어 먹는데 육질이 아귀처럼 부드러우면서 졸깃하여 또 다른 맛을 낸다. 내장을 들어내고 햇볕에 꾸득꾸득 말려두었다가 쪄먹기도 하는데 그 쫀득쫀득한 맛이 일품이다. 알은 따로 들어내 그릇에 담아 쪄서 두부처럼 썰어 간장에 찍어먹는데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소리가 별나고 생선 알 특유의 고소한 맛이 별미다.

 뚝지는 평소에는 뼈가 굳어 먹지 못하고 초겨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물렁해져 먹게 되는데 음력으로 구정 전이 가장 맛이 있을 때다.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살이 빠지고 뼈가 억세 맛이 떨어진다. 이 겨울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동해일출을 감상하고 바닷바람도 상큼하게 맞아본 다음, 뜨끈한 아랫목에 앉아 얼큰한 도치알탕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지.    

                 
200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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