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18) 경기 화성시 박우상 씨
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18) 경기 화성시 박우상 씨
  • 장은희 기자
  • 승인 2016.10.05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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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농장에서 시작된 귀어귀촌의 새로운 삶

 

▲ 박우상 씨 <자료협조=한국어촌어항협회 귀어귀촌종합센터>

귀어 전 거주 지역 : 경기
귀어지 : 경기 화성시
귀어 전 직업 : 종합인쇄소 경영
귀어연도 : 2013년
나이 : 46세
귀어 초기자본 : 4억원 (대지, 조립식 가건물 구입, 1년 생활비 포함)
연간소득 : 향후 월 200만원 예상 (현재는 어업 외 소득 중심)


삼형제가 맘껏 뛰놀 수 있는 곳, 백미리로 가자

전환점은 뜻하지 않은 순간에 찾아온다. 그러나 그 전환점에서 새로운 길로 내딛기 위한 결정은 이전에 걸어왔던 길에서 보았던, 느꼈던 것들로부터 비롯된다. 경기도 화성시 백미리에서 바지락을 훑고 낙지를 잡으며 천방지축 세아들과 새로운 삶을 꾸리고 있는 박우상 씨의 경우가 그랬다.

전남 보성에서 자란 그는 제약회사 영업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도시에서만 20여년을 보냈다. 제약회에서 그는 판매지역을 개척하고 납품 물량을 늘리는 영업직으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8년을 보냈고, 서른 넷의 나이에 희망퇴직서를 냈다.

주변에서는 박 씨를 말렸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하고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인쇄소였다. 영업 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분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제약회사 영업직인지라, 박 씨는 그동안의 성실함과 의지로 충분히 인쇄소를 이끌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박우상 씨의 인쇄소에서는 인쇄는 기본이고 디자인과 출력, 제본까지 전 과정을 소화하며, 인쇄광고물과 판촉 인쇄물, 업무용 수첩과 판촉달력을 주력 품목으로 꾸려나갔다. 그동안의 영업 노하우를 밑천삼아 박 씨는 창업 축하연을 가진 다음날부터 발로 뛰어다니며 거래처를 넓혀갔고, 디자인과 인쇄 노하우가 쌓여가는 것과 동시에 거래처와 납품 물량도 늘어갔다.

그의 발로 인쇄소를 이끌어 온 11년. 문을 열 때 중고였던 인쇄기도 독일산 신형으로 바뀌었고, 넓은 아파트로 이사도 했다. 주말에 여유를 즐기기 위해 주말농장으로 들렀던 백미리에는 땅과 창고를 구입했다. 그만큼 사업은 순항을 이루고 있었다.

다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인쇄업이 평생 직업이 될 수 없다는 작은 불안이 싹튼 것도 이 때였다. 이왕 마련한 주말농장에 아이들이랑 자주 가보자는 아내의 말에 귀촌이라는 새로운 생각이 문득 마음에 자리한 것도 이 순간이었다.

농사를 지어본적은 없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에 반했던 백미리에서 박우상 씨는 여기에는 고추씨를, 저 너머에는 배추와 파를 심으며 주말농장에 재미를 붙여갔다. 또한 백미리의 자신의 공간이 생기면서 이곳의 일원이 된 것 처럼 느낀 박 씨는 자주 주말농장을 찾게됐다.

▲ 박우상 씨의 단란한 다섯가족. 삼형제가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다는 것이 귀어 결정에 큰 이유였던 만큼, 아이들은 마을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자료협조=한국어촌어항협회 귀어귀촌종합센터>

아직 귀어귀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던 때, 갑작스럽게 결정의 순간은 찾아왔다. 지난 2012년 아이들의 개교기념일인 평일에 박우상 씨의 아내와 아이들은 백미리 주말농장을 찾았고 근처 초등학교를 들르게 됐다. 학년당 한 학급씩인 학교. 수업중인 교실을 들러보던 박 씨의 부인 조정선 씨는 도시와는 다른 수업 분위기에 놀랐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유대감을 가지며 가까이 지내는 모습에서 도시의 갈등의 해결책을 본 것이다. 삼형제일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웃을 수 없는 환경 속에 계속해서 제재만을 가해야 하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던 터였다.

조 씨는 바로 전학 상담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박우상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대답 역시 긍정적이었다. 귀어귀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급작스레 결정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미 오래 백미리를 오가며 터를 가꿔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박 씨의 가족들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귀어귀촌 준비를 시작했다. 귀어귀촌 관련 교육을 받고 인터넷에서 먼저 귀어한 이들의 사례를 찾아보며 귀촌생활의 그림을 그려갔다. 어촌계와 체험센터를 중심으로 마을 어업인 등 주민들과도 친분을 쌓아갔고 아이들과 함께 매주 길게는 2박 3일에 걸쳐 갯벌체험을 하는 등 백미리의 일원이 되기 위해 준비했다.

그리고 2013년 12월 백미리로 온 가족이 터전을 옮겼다. 인쇄소는 동료에게 양도하고 4년간 월 1,000만원을 받기로 했다. 상대는 목돈이 나가는 부담이 없고 박우상 씨는 안정적인 어업소득을 얻기 전의 생활자금을 확보해 시간을 번 것이다.

맨손어업부터 레저어업까지 어촌 먹거리 찾기 몰두

아직 어업활동으로 순소득이라 할 수 있는 이익은 없는 상황으로 부인 조 씨는 걱정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귀어에 성공할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귀어귀촌에서 많은 경우 어려움을 겪는 것이 마을주민들과 어우러지고 생활에 적응하는 것인데, 이미 백미리를 오래 드나들고 귀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마을의 일원이 되는데 공을 들였으니 그렇게 말할만 하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하는데, 본래 이곳에 살고 그 일을 생업으로 해오던 이들의 긍정적인 시선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큰 도움이 된다.

▲ "성공할 귀어인"이라고 마을 주민들이 입모아 말하는 박우상 씨. 그의 성실함과 진실됨을 알아본 백미리 '선수' 정 씨가 가르쳐준 낙지잡이로 박우상 씨가 큰 낙지를 잡아올리고 있다. <자료협조=한국어촌어항협회 귀어귀촌종합센터>
박 씨는 바지락을 채취하는 공동작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바지락을 채취 할당량을 다 채우고 뻘낙지를 잡아내는 숙달된 어업인을 백미리에서는 선수라고 부른다. 본업인 바지락보다 부업인 낙지 수입이 많을 정도의 선수가 박 씨에게 ‘사람이 진국’이라며 낙지 잡이를 가르쳐 줄 정도이니 마을 주민들은 그에게 든든한 지원군인 것이다.

이렇게 마을 주민들의 신임을 얻은 것은 박우상 씨의 노력이 있어서 였다. 낙시잡이를 알려주는 어업인 정 씨는 도시생활의 이야기를 들어도, 백미리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봐도 알찬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낙지잡이를 가르쳐달라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쫓아다니니 알려주지 않을 수 있냐는 것이다.

두세살 터울의 삼형제도 마을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도시에 지내며 구입한 ‘백미리 농기구 공동보관창고’라는 긴 이름의 공간이 집이 됐지만 성장기인 남자 아이들에게는 그저 마음대로 뛰어다니고 놀 수 있는 것이 최고이다.

바지락 채취와 낙지잡이는 물론 어촌의 먹거리를 찾아다니고 새롭게 배워나가느라 정신이 없을법하지만 박 씨 역시 백미리에 지내며 몸도 더 좋아졌다고 말한다.

도시에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운동하는 것보다 갯벌에 일하러 다녀오는 것이 건강이 더 좋다고 하는데 건강검진때 마다 주의를 받던 몸 상태도 좋아졌다니 괜한 너스레는 아니다.

진짜 어업인이 되기 위한 준비기간 4년. 박 씨는 낙지나 바지락, 갯굴 등 맨손 어업을 배워나가고 있지만 레저어업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지난해에는 동력 수산레저기구조정 1급 면허를 따놓았는데 이 면허가 레저어업을 운영할 수 있는 기본 자격이라고 한다.

도시에서도 발로 뛰어가며 일을 배우고 해왔던 터라, 레저어업에 대해서도 백미리, 갯벌과 비슷한 조건의 타 지역의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갯벌의 환경이 특수하다보니 여러 사례를 통해 답을 찾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낚시어업과 어선어업을 염두에 두고 소형선박조종사 면허도 받으려고 하고 있다.

자칫 무모해보였을지도 모르는 박우상 씨의 귀어 선택. 도시에서 일을 하며 백미리에 주말농장을 꾸리고 그곳에서 가족들이 각자의 매력을 찾아 마을에 이주해 어업을 꾸려나가기까지. 이전의 삶과 동 떨어진 것 같지만 백미리로 향하는 길은 사실은 박 씨가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 아닐까.

<자료협조=한국어촌어항협회 귀어귀촌종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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