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⑯ 울산 동구 권혁석 씨
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⑯ 울산 동구 권혁석 씨
  • 장은희 기자
  • 승인 2016.08.01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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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살던 낚시꾼, 진짜 선장이 되다

▲ 권혁석 씨 부부.<자료협조=한국어촌어항협회 귀어귀촌종합센터>

귀어 전 거주 지역 : 울산
귀어지 : 울산 동구
귀어 전 직업 : 잡화점 경영
귀어연도 : 2013년
나이 : 52세
귀어 초기자본 : 2억 8,500만원
연간소득 : 순소득 약 5,000만원


시대의 변화에 휩쓸려 바다에서 새 삶을 꾸리다

무엇보다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인 취미. 여가활동은 생업의 고단함을 잊게해주고 삶에 활력을 가져다준다. 단어에서부터 ‘여가(餘暇)’, 남는 시간을 뜻하는 취미생활은 소위 밥벌이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저 생업 이외에 남는 시간을 위로해주던 취미가 삶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울산의 통발어선 자선장 권혁석 씨는 오랜 노력으로 배테랑 에어컨 기사로 자리를 잡았지만, 시대의 변화 속에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그때 돌파구가 된 것이 바로 취미였던 바로 바다낚시이다.

권혁석 씨는 울산 시내에서 이름난 에어컨 수리 기사였다. 에어컨 수리기사의 대부분이 남자인데 반해, 권혁석 씨는 아내가 보조로 함께 하는 부부 기사로 주부들이 안심하고 편하게 수리 요청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명성의 비결이었다. 부부의 전용 승합차 옆에는 ‘부부 에어컨 기사집’이라고 붙이고 다녔고 울산 시내를 누비며 수익도 꽤 올릴 수 있었다.

이 때 권 씨가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이게 된 것이 바다낚시였다. 평일에도 찾는 손님이 없는 때에는 혼자 정자로 주전으로 떠나 낚시를 즐기는 그가, 아내는 처음에는 마땅찮았지만, 함께 낚시를 즐기며 바다낚시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수리공구 대신 신형 낚시 도구들을 가득 실은 부부의 차는 수리의뢰가 적은 날이며 울산 바다를 향해 달렸다.

권 씨 부부의 바다낚시의 열정은 방어진, 서생, 강동 등 울산 주변 포구를 모두 섭렵할 정도로 뜨거웠다. 30년의 바다낚시 경력이 말하듯 부부의 낚시는 방파제 낚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업인이 운영하는 낚시어선을 타거나 자신의 고무보트를 타고서라도 바다로 나가서야 비로소 시작됐다.

그러나 여유롭게 취미에 빠질 수 있던 호시절도 시대의 변화에 휩쓸리게 된다. ‘부부 에어컨 기사집’과 비슷한 상표들이 생겨나기 시작해 부부은 원조임을 알리기 위해 ‘부부 에어컨 1호점’이라는 명함을 들고 다녔지만 경쟁업체가 늘어나 일거리도 줄어들게 됐다.

신제품이 계속해서 출시되고 각 제품에 맞는 신기술을 따라잡는 것도 벅찬 일이었다. 부부가 일을 시작할 때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시스템에어컨이 대부분의 건물에 설치된 것이다.

이제는 노후를 준비해야하는 나이. 소득이 멈춰버리면서 시금치 농사로 부업도 했고, 업종을 바꿔 이삿짐 센터, 슈퍼를 운영해보기도 했지만 살림은 날이 갈 수록 작아질 뿐이었다.

▲ 권혁석 씨가 귀어를 결정하고 아내 구옥희 씨가 내건 조건은 함께 배를 타겠다는 것이었다. 배 위에서 권씨는 통발을 올려 어획물을 쏟아 붓고 시쿠 씨는 빈 통발에 새 미끼를 넣고 구 씨는 통발들끼리 줄이 엉키지 않도록 정리해 재투망을 준비한다. 양만한 통발에서 골뱅이를 추려내는 권 씨.

그런 중에 권혁석 씨는 귀어를 결심하게 된다. 권 씨의 아내 역시 귀어에 걱정이 많았으나, 달라진 시장환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의 결정에 따르기로 한다. 귀어를 결정하고 2013년 부부은 1톤짜리 어선을 구입한다. 선체에 엔진 등 설비, 어탐기 등 전자장비, 통발어구 등 1억 2,000만원 이상이 투자됐고 부부가 생활할 보금자리와 적응기간 동안 쓸 생활비도 필요했다.

초기에 많은 비용이 들어갔지만 아내 구옥희 씨는 두말하지 않고 권 씨가 필요할 때마다 모아둔 돈을 내놓았다. 귀어를 하며 아내 구 씨가 내놓은 조건은 다름 아니라 배를 타면 멀미가 있지만 그래도 함께 배를 타겠다는 이야기였다.

통발 필수 승선어업인은 두명. 승선어업인은 승선용품, 주부식비 별도로 최소 월 200만원, 외국인 고용선원이라도 먹이고 재우려면 140만원을 줘야하는데, 부부가 함께 조업을 하는 것이 경제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 울산 바다 곳곳을 누비며 바다낚시를 하며 알게된 친구들은 좋은 선생님이자 조업의 파트너가 되었고, 취미의 공간이던 바다는 그의 삶, 그자체가 되었다. 권혁석 씨의 나이스호 어장기가 수면위에서 펄럭이고 있다.

바다낚시 친구들을 선생님으로, 부지런함을 원동력으로

1톤급 낚시배 ‘나이스호’를 마련하고 연안통발자망 허가권까지 얻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귀어생활. 그러나 권 기사에서 권 자선장이 된 그의 첫 항해는 녹록치 않았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의 동남해안. 주중에 내리 날씨가 좋다가도 주말에 바다 날씨가 궂으면 결항…모아둔 돈으로 한 해를 버텨냈다.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가 싶던 이듬해에는 몸을 다치기도 했다. 어구실명제 표시 작업을 하던 권 씨의 입에 물려있던 담배 불똥이 하필 시너통으로 날아갔고 오른쪽 다리에 중화상을 입어 3개월 입원치료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이런 곡절 속에서도 권혁석 씨는 ‘부지런함’ 만으로 어촌에 적응했고, 선배 어업인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통발 일을 배워나갔다.

통발 일을 배우는 일에도, 실제 조업에 나가 통발이 분실되는 등 어장에 사고가 있을 때도 도움이 된 것이 바다낚시를 하며 알게된 친구들이다. 울산의 곳곳을 누비며 바다낚시를 즐기며 만난 낚시선 선장인 친구들은 이제 권 씨의 어업 밑천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취미로 즐기는 낚시와 실전 어업은 다른 법. 권 씨는 시간을 쪼개가며 통발 일을 배우기 위해 2년이 넘는 시간을 뛰어다녔다. 낚시 예약 손님이 없을 대는 정자로 건너가 친구배를 타고 조업에 나섰고 좁은 배안을 쫓아다니며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과정에 대해 꼼꼼히 물어가며 일을 배웠다.

이런 그의 열정에 친구는 통발을 꾸미고 엮어 투망하고 양망, 보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일주일간 집중적으로 가르쳐줬다. 권혁석 씨는 바다 일은 생각보다 단순한 작업이 아니어서 아직도 배우는 중이라고 말한다.

새벽 바다를 한 시간여 헤지고 나가야 통발어장에 도착할 수 있다. 캄캄한 공기와 더 검은 수면위를 살펴 어장표시 깃발을 찾는다. 선박용 서치라이트에 의지해 어장표시 깃발을 찾아내면 통발양망작업이 시작된다.

▲ 골뱅이 선별중인 부인 구옥희 씨와 티모르 출신 선원 시쿠 씨.

단순해보이지만 오랜 시간을 요하는 작업의 반복. 오른쪽 선수 양망기 아래 권 씨가 버티고 서서 통발을 올리고 골뱅이 등 어획물을 컨테이너에 쏟아 붓는다. 빈 통발을 건네받은 나이스호의 고용선원 시쿠(SIKU) 씨는 새 미끼로 준치 한 마리를 넣어 통발 입구를 정리하고, 이물 중간에 자리한 구 씨에게 넘겨준다. 구씨는 통발들끼리 줄이 엉키지 않도록 차곡차곡 쌓아 재투망을 준비한다.

나이스호의 하루 평균 작업량은 북통발 500개 양망과 투망. 통발 100개당 한 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되므로 오가는 시간까지 포함해 하루 작업 시간은 여덟시간 정도. 날씨 탓에 조업이 어려운 날도 있고, 조류로 통발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가 통발을 찾으나 애를 먹기도 하지만 권 씨는 가능한 모든 시간을 부지런하게 살아가고자한다. 주전마을에 어부가 되면서 인사를 했던 노어부가 권혁석씨에게 한 말처럼 ‘바다가 저금통장이라 생각하고 그저 부지런히 바다를 돌아다니면 먹고 살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다에 나서는 것이다.

한 때 권 씨에게 여가의 즐거움이었던 바다는 이제 그의 삶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자료협조=한국어촌어항협회 귀어귀촌종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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