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노량진수산시장 비대위
사면초가 노량진수산시장 비대위
  • 박종면 기자
  • 승인 2016.07.3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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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패왕별희(霸王別姬)’라는 경극이 있다. 우리에게 초한지 인물로 알려진 항우와 유방의 전투에서 항우가 유방에게 쫓기다 몰락 직전까지 가서 애첩 우희와 헤어지는 장면을 그린 슬픈 연극이다. 항우가 사면이 유방의 군사로 포위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사자성어가 탄생했다.

지금 사면초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이들이 있다. 노량진수산시장현대화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 상인들이다. 이들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낸 ‘점유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다. 비대위는 지난 5월 17일자로 서울중앙지법에 “수협이 구시장에 남아있는 소매상인의 영업을 방해한다”며 옛 노량진수산시장 점유를 방해하지 말라는 취지의 점유 방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서울중앙지법은 청구사항 전체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번 법원 결정에 앞서 비대위가 감사원에 공익감사 청구를 제기했지만 이 또한 기각됐다. 믿을만한 사정기관과 사법부에서 비대위의 의견을 ‘이유없음’의 이유로 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이는 곧 비대위의 주장이 일방적이거나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인 것이다. 비대위의 주장처럼 저들이 억울한 약자의 입장이라면 사정기관이나 사법부에서 손을 들어주지 않을 리 없다. 연이은 사정기관과 사법부 결정을 놓고 비대위 측 상인들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수십 년 간 한 곳에서 장사를 하며 시장을 지켜왔는데 일방적으로 옮기라 압력을 행사한다고 호소했는데 어느 공익기관에서도 이들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으니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 정당(특히 야당)에서는 비대위가 주장하는 것처럼 상인을 약자로만 보고 힘없는 노동자, 소시민을 보호해야한다는 동정심이 발동했을 수 있다. 아니면 비대위 주장이 옳든 그르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옹호하겠다는 일방적 사고로 점철되어 있었을 수도 있다. 팔은 안으로 굽으니 내 형제 동료가 길을 가다 다툼이 있으면 누구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무조건 내 형제 동료 편을 드는 것과 같은 형국이었을 것이다.

시장 관계자는 “애초에 비대위는 새 시장 자리가 좁고 임대료가 비싸다는 이유로 건물이 완공되고 난 뒤에 입주를 거부했다. 리모델링이나 증축이라는 현실성 없는 주장을 해오다 뒤늦게 ‘전통시장 사수’라는 그럴듯한 정서로 시민들을 현혹했다”며 전통시장을 지키겠다는 명분 뒤에 숨겨둔 속셈이 집단 이기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머리 숙이고 소매상인 자리 추첨에 응해보려고 해도 이미 수협 측에 많은 피해를 입힌 ‘강성’이라는 낙인까지 찍혀 이전에 협조한 상인들과 똑같이 받아줄 수는 없다는 거부 의사가 강하게 전해져 오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전통시장 사수’가 궁극의 목적이었다면 현대화사업 사작 전, 즉 새 건물을 짓기 전에 구시장 리모델링을 요구했어야 했다고 꼬집는다. 구성원 75%가 이전을 마친 상황에서 막무가내로 버티는 건 법원 판단처럼 너무 속보이는 행동이라는 일침이다.

그 잘나가던 항우가 유방의 군사에 둘러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에 몰려 우희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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