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경제학, 조조와 합리적 기대
삼국지 경제학, 조조와 합리적 기대
  • 이준후/시인, 산업은행 팀장
  • 승인 2008.12.26 2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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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인물과 사건의 집합인 삼국지, 삼국지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은 적벽대전(赤壁大戰)이 아닐까. 황개의 사항계(詐降計)와 고육지계(苦肉之計)에서 방통의 연환계(連環計), 공명의 동남풍에 이르기까지 적벽의 싸움은 그 시작전부터 이미 불꽃이 튄다. 결국 조조는 예견된 패배에 이어 제갈량의 신묘한 매복작전으로 패주길에 세 번에 걸쳐 농락당하고 급기야는 관운장에게 목숨을 구걸하게 되는데...

 그렇게도 당당한 기세를 자랑하는 대군을 다 잃은 조조는 불과 몇 백 명의 패잔병을 이끌고 쫓겨 간다. 그러다가 어느 곳에 이르러 잠시 쉬게 되었는데 조조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바보 같은 주유(周瑜)와 제갈량(諸葛亮) 같으니. 나 같으면 바로 이 곳에 매복을 시켰을 거다.”
그런데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북소리가 진동하며 조자룡(趙子龍)의 군대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조조는 혼비백산해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밤을 새워 도망가던 조조는 새벽녘이 되자 어느 곳에 이르러 군사들에게 밥을 지으라고 명했다. 그러면서 주위를 돌아보던 그는 또 껄껄 웃으며 말한다. “주유나 제갈량이 꾀가 없긴 마찬가지군. 바로 이런 곳이 병사를 숨기기에 제일 좋은 장소 아니겠는가?” 이번에도 그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장비(張飛)의 군대가 사방에서 들이닥쳤다. 조조는 갑옷을 차려입을 틈도 없이 또 다시 혼비백산 달아나고 말았다.

 이윽고 갈림길이 나타났다. 큰 길과 좁은 산길, 게다가 비까지와 산길은 진창인데다 멀리서 매복이 있는 듯 연기까지 피어오른다. 그러나 조조는 일부러 화용도(華容道)로 가는 좁고 험한 산길을 택한다. 연기를 속임수로 판단한 것인데 그 점이 조조의 한계이고 그 한계를 이용한 공명의 허허실실(虛虛實實) 전략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그 진창길을 끌고 밀고 힘들게 지나 계곡에 이르러 한숨을 돌린 조조는 또 웃으며 한마디 한다. “아무리 봐도 공명은 부족해, 바로 이런 곳에 매복을 시킨다면 내가 어떻게 살아나겠어?” 그러자 또 포성이 울리더니 이번에는 관운장(關雲長)의 군대가 나타나는 게 아닌가? 조조는 여기서 더 이상 달아날 힘을 잃는다. 조조는 계면쩍은 낯빛으로 관운장에게 옛날 관우가 자기에게 의탁했던 시절의 환대를 생각해 살려 달라고 사정한다. 결국 관운장은 조조를 살려 보내고 만다.

 관우는 귀대하여 목이 달아날 만큼 혼나지만 그것은 하나의 제스처에 불과하다. 실은 공명은 전황의 전개와 조조군의 패배, 그 이후 조조의 패주로를 정확하게 예상하고 휘하의 장수 3인에게 길목에 매복하라고 명령했던 것. 아울러 관우가 예전에 입었던 후의와 그 성정(性情)상 조조를 살려 보낼 것이란 것까지 예상했다고 소설은 적고 있다. 

 

 

 이렇게 제갈공명이 세 번에 걸쳐 조조의 패주로를 정확하게 예상하고 농락한 것을 경제학의 ‘합리적 기대이론’에 비유할 수 있겠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를 필두로 일군의 학자들이 제시하여 경제학계에 일대 혁명을 몰고 온 이론이다.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s)란 경제주체들이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활용해 경제상황의 변화를 합리적으로 예측해 행동하기 때문에 정부가 내놓는 어떤 대책도 예상과 달리 무력화되거나 그 예상한 정책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것. 한마디로 민간경제주체인 개인과 기업이 정부정책의 움직임의 낌새만 있어도 척하니 알아채고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마치 포커게임에서 상대방의 표정 변화만 보고도 패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도박의 고수처럼.

 루커스는 간단한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이런 예기치 못한 결과가 빚어진 까닭을 설명했다. 사람들은 정부의 경제운용정책을 미리 예측할 줄 알게 되고 그 ‘합리적 기대’를 바탕으로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었다.

 예를 들어  경기가 후퇴하여 실업이 증가하면 정부는 고용의 확대를 위하여 감세정책을 추진한다. 정책의 수용자인 기업으로 하여금 내려간 세율만큼 이익이 늘어날 것이므로  더 많은 이익을 위하여 생산량을 늘리고 생산을 늘리기 위하여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정부의 감세정책은 성공하게 된다. 관리들은 이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은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치뤄야 하는 대가로 간주한다.

 그러나 정부의 전략이 빗나갔다. 노동자들은 올라가는 물가를 상쇄하기 위해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은 정부의 정책의도와 반대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경험이 있는 ‘합리적 기대’를 가진 정책의 소비자들은 정책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조조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진 공명이 조조가 아무리 적절한 선택과 행동을 하더라도 공명의 합리적 기대를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경험이 많은 정책소비자들의 ‘합리적 기대’를 극복하고 소기의 목적을 견인해 낼 방법은 무엇일까. 애오로지 정책과 아이디어어의 정치성(精緻性)과 창의성만이 그 해답이 될 것이다.

200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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