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⑮ 전북 부안군 배동권 씨
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⑮ 전북 부안군 배동권 씨
  • 장은희 기자
  • 승인 2016.07.04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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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금속 세공사에서 바다 위의 만능 재주꾼으로


▲ 배동권 씨 <자료제공 = 한국어촌어항협회 귀어귀촌종합센터>

귀어 전 거주 지역 : 서울
귀어지 : 전북 부안군
귀어 전 직업 : 귀금속 세공업체 운영
귀어연도 : 2010년
나이 : 49세
귀어 초기자본 : 2억원
연간소득 : 약 6,500만원


손재주가 좋던 아이, 고향으로 돌아가다

눈썰미와 손재주는 타고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재주를 타고난 이들은 다만 한 분야가 아니라 섬세함과 기술을 요하는 모든 작업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려서 친구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종일 뚝딱거려 결국에는 비슷한 장난감을 만들어냈던 배동권 씨는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손재주를 밑천 삼아 금은 세공사가 되기 위해 스무살 어린 나이에 서울로 상경해 견습생으로 귀금속 전문 세공사에서 일을 시작한 배 씨. 견습생에서 초보 기술자로 기술을 다듬은 그는 종로 3가 귀금속 단지로 진출해 스물 셋의 나이에 금 세공을 중심으로 하는 업체를 개업하기에 이르렀다.

타고난 재주와 노력으로 한 분야의 전문가로 자리잡았던 20년. 귀금속 단지 안에서 마이스터(Meister) 대접을 받게 됐지만, 이른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작업대에 앉아 집중해야하는 세공사의 일을 이어가면서 체력은 점차 떨어졌고 시력까지 나빠지게 됐다.

배동권 씨는 “경제에 가장 민감한 것 중 하나가 금 시세인데, 변동폭이 큰데다 경제가 어려워 질수록 안방 장록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시장상황도 점점 나빠졌다”고 설명했다.

직업병과 미래에 대한 불안, 도시생활을 벗어나고픈 갈망…노후에 대해 고민하던 그에게 쉬어가야겠다는 결심이 들게 한 것은 고향 운호마을에 홀로 사셨던 모친이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잠시 쉬어가도 좋지 않을까 라는 마음도 들었고, 비어버린 고향집도 추슬러야했다. 그렇게 배 씨는 2010년 고향인 부안군 진서면 운호리로 귀어를 결심하게 됐다.

첫 조업부터 ‘대박’, 어장 개척하는 젊은 일꾼으로

태어나고 자란 집, 여러 친지들이 주변에 살고 있어 마을에 자리잡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아내가 동생과 함께 하고 있는 화물 특송사업으로 생활비 충당에도 걱정이 없었으나, 배 씨는 귀향 전에 뜻했던 바다 일, 그 중에서도 뱃일에 뛰어들었다. 집안에서 어업을 했던 것을 아니나 어려서 많이 봐온 일이어서 그에게는 무엇보다 친숙한 것이 바다였다.

그는 세공일을 시작할 때 처럼, 견습생의 마음으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바다를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친지와 이웃들의 어선에 동생해 주변 바다 환경과 어장 일을 몸으로 익혀 나갔다.

마을에 자리잡는 것이 비교적 수월했던 것과 달리 뱃사람의 일원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숙달된 어업인들에게는 새로 일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일이 어려워 금세 못하겠다고 포기해버리면 헛수고가 될 터. 물론 거친 바다에서의 사고도 우려됐을 것이다.

▲ 봄에는 봄꽃게, 여름에는 밀젓용 새우, 가을 꽃게 잡이를 지나면 11월부터는 부지런하게 소라껍질 어구를 던지고 거둬내고, 그 속에 든 주꾸미를 잡아낸다. 겨울 칼바람에도 바다에 나가 숭어를 잡고 다시 봄이면 꽃게를 잡는다. 이렇게 빡빡하게 반복되는 어선어업의 사이클이 하나도 빠짐없이 재미있다는 배동권 씨.<자료제공 = 한국어촌어항협회 귀어귀촌종합센터>

그런 사정을 짐작한 배동권 씨는 새벽부터 뱃머리에 나가 읍소하듯이 사정하기도 하고 출어준비에 일손을 보태며 이튿날 동승 승낙을 받아내는 등 의지를 보이며 어업인들을 설득해나갔고 두어 달 동안 동승 실습을 거치며 자망이며 소라껍질을 넣어 주꾸미를 잡는 소호어업 등 어선어업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부부만의 단독 출어에 도전했다. 포구에 방치됐던 이웃의 조만막한 배를 사정해 빌리고 친지에게 중고 통발 40개를 받아 바다로 나간 것이다. 첫 출어의 꿈은 소박했다. 반찬거리 수준의 박하지(돌게)를 잡는 것.

그러나 그 결과는 놀랍게도 40킬로그램이 넘는 박하지는 어획하며 첫 출어부터 바다와 환상의 궁합을 보였다. 이날 조업을 시작으로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50킬로그램 안팎의 박하지를 어획하면서 배 씨 부부는 본격적인 어업인의 길에 발을 딛게 됐다.

이어 배동권 씨는 귀어 첫해 10월 1억 1,000만원을 투자해 중고어선을 구입하고 새 엔진을 장착한 2중 이상 자망 어업허가, 2.4톤 풀하우스호를 새식구로 맞이하고, 아내를 동승어업인으로 두고 자선장 자격으로 바다로 나섰다.

부부가 찰떡궁합인 어선이라 아끼는 풀하우스호는 첫 날 자망조업에서 단 한번 투망과 양망으로 1톤, 7,000만원어치의 숭어를 잡아냈다. 그는 “부끄럽지만 만선소리를 들을 만한 어획기록을 심심찮게 내면서 손재주도 좋고 수덕까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고 말했다.

귀어 6년차 어엿한 자선장이된 배 씨는 타고난 재주만을 믿지 않고 끝없이 도전했다. 배동권 씨는 “2.4톤 어선을 몰고 동중국해 멀지 않은 어장까지 다 나가봤다”며 “겁도 없이 먼 바다로 나가 여러차례 그물을 내려보면서 어장 개척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노령화된 어촌에서 배 씨는 젊은 에너지이다. 그는 “새로운 어장 개척은 젊은 나의 몫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획량이 줄어 걱정하는 마을 어업인들을 위해 곳곳의 어획상황을 체크하고 어촌계를 통해 새로운 어장 정보는 공유하는 그는 이제 마을에 없어서는 안될 젊은 일꾼이 됐다.

사계절 쉬지 않는 열정으로 새내기 귀어인 멘토까지

어촌계 등 주변 추전으로 부안군 어업후계자로 선정된 배 씨는 이듬해 2011년 지원자금 5,000만원으로 또 한 척의 원하던 어선과 어업허가를 구입했고, 연안복합 어업허가를 가진 0.9톤 FRP어선 풀하우스 2호와 그 해 가을부터 주꾸미 조업을 시작했다.

▲ 친구와 친지를 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배동권 씨 부부(왼쪽 두명)와 초보 어업인 부부들. 배 씨 부부는 어업 기술 뿐만 아니라 집안일까지 챙겨주며 귀어인들이 의지할 곳 없는 어촌에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고 있다.<자료제공 = 한국어촌어항협회 귀어귀촌종합센터>

배동권 선장의 어로 일지를 사철 쉼이 없다. 봄철인 5월 20일부터 초여름인 6월 20일까지는 자망을 싣고 나가 봄꽃게 잡이에 주력하고, 8월 20일 전까지는 밀젓(자하젓)용 새우를 잡으면서 여름을 지나보낸다. 그리고 금어기가 풀리면 10월 20일까지 두 달간 가을 꽃게 잡이에 몰두한다.

11월부터는 가을 주꾸미철로 새벽마다 바다에 뿌려둔 소라껍질 어구를 건져 올려 속에 든 주꾸미를 잡아낸다. 한겨울 칼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배 씨는 바다로 나간다.

겨울 조업은 숭어를 대상으로 한다. 해마다 부안군에서 ‘설숭어축제’를 열고 있을 정도로 숭어는 한겨울 인기어종이어서 봄꽃게 전까지 숭어조업을 하면서 겨울을 보낸다.

육지보다 바다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을 것 같은 배 씨의 어로 일지. 그러나 그는 “매해 반복되는 어선어업의 사이클 중에 재미없거나 싫은 일이 하나도 없다면 믿을 수 있겠냐”고 말할 정도로 누구보다 바다 일을 즐기고 있었다.

이미 마련된 터전에 만족하지 않고 어선어업에 대해 하나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간 배동권 씨. 또한 어장을 개척하고 도전하면서, 바다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는 이제 귀어인의 멘토로도 역할을 하고 있다.

부안군 수산사무소의 소개로 지난해 귀어를 준비하는 두 가족과 연을 맺은 배 씨는 다른 자망어선을 소개해 실습을 시켜주기도 하고 함께 배에 올라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의지할 곳 없이 단독으로 이주한 다른 귀어·귀촌 가족들의 어려움을 봐왔던 터라 우리가 새내기 어업인들에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배동권 씨 부부는 이들에게 다만 어업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주말이면 같이 음식을 해먹고 형, 동생 혹은 언니, 동생하며 집안일까지 챙겨주면서 안팎으로 어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왔다.

그의 손재주와 눈썰미는 조업을 하고 어장을 찾고 어선을 운항하는데에서 뿐만 아니라 바다를 중심으로 어촌의 일원들의 보이지 않는 그물을 만드는데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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