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교지불여졸속(巧遲不如拙速)
구조조정, 교지불여졸속(巧遲不如拙速)
  •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 승인 2016.05.30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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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우스개가 하나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조선(造船)을 잘하는 이유가 뭘까, 하고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그야, 우리나라 예전 이름이 조선(朝鮮)이니까 그렇지’라고 다른 누군가가 대답했습니다.

그 조선업종이 해운업과 함께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최근 천문학적인 적자를 낸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도 살 길이 막막하다는 것이 더욱 문제입니다.

그냥 두어서는 망할 지경입니다. 급기야 정부가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채권은행으로 하여금 행동을 채근하고 나섰습니다. 사실 경제성장과정과 단계에서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소위 구조조정은 두 차원이 있습니다. 기업차원의 구조조정은 원래 기업개선작업(work-out)으로, 기업이 스스로 해 나가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당연히 하는 과정입니다. 성장가능 부문에 투자를 집중하고 경쟁력을 상실한 부문은 도태시켜 장기적인 존속과 성장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사 스스로 그 능력을 상실했을 때, 또 그 회사가 기간산업에 속한 경우는 정부와 채권은행이 기업개선작업 임무를 맡을 수밖에 없습니다.

산업차원의 구조조정(restructuring)은 그 양상이 다릅니다. 산업의 재편과 기업의 재배치를 의미합니다. 당초부터 정부나 정책금융기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업의 재편은 그 규모가 크고 당사자가 많으며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해운과 조선업종의 문제는 기업개선작업과 산업구조조정, 그 어떤 것일까요.

조선업종이나 해운업종은 기간산업에 해당합니다. 모두 국가경제에 필수적인 산업입니다. 산업구조조정은 어불성설, 산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하니 산업내의 구조조정, 즉 회사 간에 합병하느니 M&A를 추진하느니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하지만 대주주 모두가 손사래를 치고 나섭니다.

그것보다 기업개선작업이 먼저라고, 우선 회사를 살리고 보자는 의견이 무성합니다. 정부와 채권은행 또한 먼저 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기업개선작업과 산업내의 구조조정을 동시에 진행하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선후를 따질 계제가 아닙니다. 물론 기업개선작업도 관련 이해당사자가 많아서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급하기 때문에 먼저 진행하는 것입니다. 이 기업개선작업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손실 최소화입니다. 금융기관과 다양한 채권자, 그리고 이해관계자들의 손실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이는 결정과 진행의 신속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둘째, 손실 분담의 원칙입니다. 채권자와 주주간의 손실 분담이 문제됩니다. 대주주는 경영실패의 책임으로 경영권 포기와 지분에 대한 감자로 손을 털려고 합니다. 하지만 채권은행은 대주주의 추가적인 손실 부담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될지 두고 볼 일입니다. 일반채권자의 손실 분담도 골칫거리입니다.

손실 분담에 있어서 결정적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이 용선료입니다. 두 회사는 매년 1조원이 넘는 어마무시한 용선료를 해외 선주들에게 지급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장 용선료의 5배가 넘는 용선료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용선료가 최고가 이던 시기에, 또 장기적으로 용선을 했기 때문입니다. 두 회사는 30% 정도의 인하를 요청하고 있는데, 그 협상이 여의치 않습니다. 협상 상대도 22개사, 23개사로 너무 많습니다. 두 회사의 기업개선작업은 이 용선료 협상 결과에 달려 있습니다.

셋째는, 공평성의 원칙입니다. 구조조정 작업은 이해관계자간의 양보와 합의를 도출해내는 작업과정입니다. 채권보유액을 기준으로 한 의결권에 공평한 대우를 해줘야 합니다. 공평이란 무조건적인 공평이 아닙니다. 담보채권자와 무담보채권자간의 차이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 차이를 어떻게 두느냐 하는 것도 공평의 문제입니다.

넷째는, 신속성의 원칙입니다. 문제기업을 법정관리에 의하지 않고 기업개선작업을 추진하는 이유는 바로 기업개선작업의 신속성 때문입니다. 기간이 오래 걸릴수록 기업의 영업활동이 위축돼 부실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구조조정과 기업개선작업은 부실화에 대한 책임추궁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크게 보아 모두 경영미숙이고 관리부실입니다. 당연히 정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할 입니다. 실사와 조사, 부담해야 할 책임의 결정과 당사자들의 수용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그런 시간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구조조정은 시간을 다투는 문제입니다. 시기를 놓치면 실패할 것입니다.

경제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 있습니다. ‘최선은 올바른 결정을 빨리 하는 것이요, 차선은 그릇된 결정이라도 빨리 하는 것이요, 차악은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입니다.

진행이 늦으면 다른 산업으로 불똥이 튀게 되어 있습니다. 불안한 기운이 전 산업에 걸쳐 있습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으로 튈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의 부담을 중소기업에 떠넘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조조정의 처리결과가 가계로 옮겨 가서는 큰 일 납니다. 우리나라 가계는 1,200조원이 넘는 부채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화약창고나 다름없습니다.

‘巧遲不如拙速(교지불여졸속)’, 병법의 달인 孫子가 한 말입니다. ‘정교하더라도 늦는 것은 졸렬하더라도 빠름만 못하다’라는 말입니다. 전쟁은 졸렬하더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조조정도 전쟁과 같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도 승리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속, 졸속이더라도 신속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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