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⑫ 전남 광양시 주경래 씨
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⑫ 전남 광양시 주경래 씨
  • 장은희 기자
  • 승인 2016.04.01 16: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어선생님, 비단잉어를 기르다



귀어 전 거주 지역 : 부산
귀어지 : 전남 광양시
귀어 전 직업 : 대입학원 국어교사
귀어연도 : 2011년 단독, 2014년 전 가족 이주
나이 : 53세
귀어 초기자금 : 자담 3억원, 수협대출 1억 5,000만원 등
연간매출 : 약 7,000~8,000만원
▲ 전남 광양시 주경래 씨.











가족들의 응원 속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다

전 고등학교 교사이자 대입학원 국어선생님. 고향인 광양시에서 8살 때 부산으로 이주했고, 대학 졸업 후 고교 국어교사의 첫 임지인 남원에서 10여년을 보낸 후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학원 국어교사로 생활하며 인생의 많은 부분을 부산에서 보낸 주경래 씨. 바다와 가까이 지내면서도 낚시 한 번 해보지 않았다는 그에게 수산업과의 연결고리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주 씨는 고향 광양에서 비단잉어, 붕어, 잉어 등을 기르고 있다. 엄한 선생님으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던 때와 모습은 다르지만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물고기들을 건강한 성어로 길러내는 작업이 그 때의 모습과 닮아 있다.

한편 되짚어보면 주경래 씨와 관상어의 인연은 오래 이어져왔다. 주 씨의 장인이 금붕어 판매를 해왔고 아내와 27년의 결혼 생활동안 그 모습을 지켜봐온 것이다.

그는 “지금 하는 일을 그만 뒀을 때 내가 즐겁게 계속해나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했을 때 생각난 것이 내수면 양식이었다”며 “정년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부산이라는 대도시에서 배테랑 국어교사로 자리잡은 주 씨였지만 노후에 대한 불안은 물론 학생들의 진학성과, 타 학원과의 경쟁 등 압박감을 견뎌내야했다.

고심 끝에 고향 광양으로의 귀어를 결심한 주경래 씨의 새로운 시작을 가족들도 응원했다. 고향의 부모님은 귀향 소식을 듣고 토지를 내어주며 그를 지원했으며 아내 역시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며 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당시 사춘기였던 두 딸의 응원까지. 많은 귀어인들이 가족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는데 반해 주경래 씨는 든든한 지원군들과 함께 귀어의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국어선생님에서 양식장 견습생으로

주경래 씨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직접 양식장을 찾아가며 귀어를 준비해 나갔다. 그는 “요즘에는 인터넷으로도 많은 자료를 찾을 수 있지만, 실제 양식 현장의 사정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며 “내수면연구소는 물론 지인들을 통해 내수면 양식 선배들을 찾아 묻고 배우는 과정을 계속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직도 배워야할 것이 많다고 말하는 주 씨의 ‘직접 해봐야 안다’는 철학은 아직까지 유효하다.

주말마다 소개 받은 내수면 양식장을 찾아 조언을 구하며 양식기술을 배우고 싶은 절실함을 보인 그는 2년 동안 월급 없이 숙식만 제공하는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양식을 가르쳐주겠다는 답을 얻어낸다. 그렇게 2009년, 주경래 씨는 국어선생님에서 양식장 견습생이 된다.

단순히 기술만 전수 받는 것이 아니라 양식장의 모든 일들을 익혀가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벽에 일어나 물고기 밥을 주고 양식장을 관리하는 일이 출퇴근도 없이 매일매일 이어졌고, 부화에서 출하까지 전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1년의 시간이 꼬박 필요한 것이었다.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2년간의 견습생까지 자처한 주 씨의 결심은 단호했고, 이를 알아본 양식장 주인도 견습 2년차에 접어들며 산란과 부화, 먹이생물, 치어와 양서, 수질 관리 등 양식장을 꾸리는데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본격적으로 알려줬다. 주경래 씨만의 양식장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 주경래 씨는 '직접 해봐야 안다'는 생각으로 견습생을 자처하고 2년간 급여도 없이 양식장에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런 과정 속에서 꾸려낸 주 씨의 양식장 '미래수산'의 곳곳에는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사진은 주 씨가 직접 제작한 PE수조.

직접 땅을 일궈 세운 양식장 ‘미래수산’

견습생활을 마치고 귀어준비가 된 그에게 가족들이 5년이라는 기회의 시간을 줬고 주 씨는 먼저 2011년 1월 봉강면 산자락에 혼자 자리를 잡고 양식장을 본격적으로 꾸리기 시작한다.

산자락을 다듬고 산길을 내고, 평지를 파서 노지 양어장을, 육상수조를 만들고…양식장을 만들어가는 데 주경래 씨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게 오로지 땀과 노력으로 일궈낸 것이 지금의 ‘미래수산’. 고향의 산자락에 그의 미래와 수산의 미래를 위한 보금자리를 꾸린 것이다.

양식 품종은 해마다 조금씩 다르다. 지난해에는 은어, 참게, 비단잉어, 난주, 붕어, 잉어, 강호금 등을 양식했다.

첫해 비단잉어와 붕어, 시범양식으로 관상어를 육상수조 양식장에서 키우기 시작해 한 해, 한 해가 지나면서 미래수산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종묘생산을 위주로 붕어, 잉어, 메기, 쏘가리 네 품종에 대해 나라장터 조달청에 전자입찰에 응찰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응찰 건 중 세 건이 낙찰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관상어의 경우 중도매상을 거쳐 판매되고 있는데, 관상어산업이 부흥했던 90년대에 비하면 소비가 아쉬운 실정이나, 부가가치가 높다고 알려진 난주 등의 관상어를 양식하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경래 씨는 “앞으로는 차별화된 비단잉어 품종을 개발해 경쟁력을 키우는 한편 난주나 강호금 등 중국과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품종들에도 좀 더 매진해볼 계획이며 장어 등 식용어류도 품종을 다변화 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특히 “어렵더라도 친환경적인 양식으로 먹거리를 생산하고 싶다”고 소신을 보였다.

▲ 배테랑 국어교사에서 양식인이 되기로 결심한 주경래 씨를 가족 모두는 응원했고 가족들의 지지는 그에게 가장 든든한 힘이 되어 주었다. 지난 2014년 온 가족이 함께 살게된 부저리의 보금자리 모습.

양식을 통한 수산업 부흥 기대

아직 어려움도 많다. 종묘를 생산하는 노지양식장의 경우 월동이 불가해 월동용 육상수조 제작에도 투자가 필요하며 은어, 참게는 바다에서 자라는 어종으로 왕복 36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트럭으로 오가며 해수 60톤을 실어와야 하는 고된 노동도 따른다.

주경래 씨는 계속해서 아직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기술을 배우는 것이 어려운 일임은 맞지만 또 알고 보면 누구나 배우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식도 결국에는 자연의 이치에 따른다는 것을 이해하고 먼저 시작한 이들에게 노하우를 묻고 경험해 나가면 된다”며 “어종별로 세부적인 양식기술은 모두 다르지만 응용이 가능한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와 같이 그가 양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전제조건은 ‘현장에서 직접 배운 것’ 이다. 주 씨는 귀어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무작정 시설을 꾸리는 것보다는 먼저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분들을 찾아 일을 배우고, 현장을 살피고 정착할 곳도 수없이 찾아가봐야 한다”며 “그런 중에 틈새시장을 발견하고 그 때 시설을 꾸리고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내수면양식의 경우 환경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많으므로 오폐수 시설과 같은 부분을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씨는 “내수면연구소에 매년 교육이 있는데 그곳에서 ‘미래의 보고는 바다’라는 말을 들었다”며 “지금 우리가 먹는 수산물의 대부분이 양식인데, 농업의 하우스농사처럼 수산업에도 양식이 더 발전하고 나아가 수산업 전체가 부흥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기대를 표했다.

처음 내수면 양식을 시작할 때에도 ‘내수면 양식은 너무 어렵다’, ‘2년으로 수많은 어종의 양식기술을 배울 수 없다’ 주변에서 쓴소리를 들었을 때도 소신을 지켰던 그에게는 스스로를 믿는 긍정의 에너지가 있었다.
그런 그를 믿고 지난 2014년 가족들이 내려와 봉강면 부저리에 자리를 잡았다. 주 씨를 닮은 두 딸은 이제 아버지를 도울 수 있을 정도로 훌쩍 자랐다. 동업자로 이름을 올린 큰 딸은 강화도의 농장에서 친환경농업을 배우고 있다. 내수면 양식을 하는 경우 농업을 겸하는 경우가 많은데 계획을 묻자 주 씨는 “아직 양식만으로도 벅차다”며 “딸이 이번에 농사기술을 배워오면 딸에게 배워야하지 않겠냐”며 웃었다.

<자료협조=어촌어항협회 귀어귀촌종합센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