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법, 떼법 - 이제는 그만하자
탈법, 떼법 - 이제는 그만하자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16.02.2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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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욱 본지 발행인
‘비정상의 정상화’ 없이는 국가 발전도 없다

언제 부터인가 한국사회는 편법과 탈법, 그 위에 떼를쓰고 억지를 부리면 안되는 일이 없는, 이른바 떼법이 판을치는 기형적인 국가가 되고 말았다. 보편적 가치, 합리적 판단,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도덕적, 윤리적 가치마저 짓밟히는 이상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마저 저 모양이니 나라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리가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적 이념인 다수결의 원칙조차 대한민국 국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통과 합의의 정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 사고(思考)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편향된 이념과 흑백논리에 함몰되어서는 나라가 더 이상 발전할 수도 없고, 국민들이 행복해질 수도 없는 법이다. 시공(時空)을 뛰어넘는 절대선(絶對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시대에 맞는 차선(次善)의 가치라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책무요 사명인 것이다. 선동과 우민정치(愚民政治)에 함몰되어가는 대한민국의 정치, 대한민국의 미래가 심히 걱정스럽다.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는 노력없이 대한민국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한 나라의 정치수준은 다수 국민의 의식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낮에 촛불을 밝히고 현자(賢者)를 찾아나섰던 소크라테스의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을 거울 삼아, 앞으로 닥칠 20대 총선에서 건전한 시민의식이 큰 횃불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노량진, 가락동 도매시장 빗나간 주인의식으로 수산업 망친다

난데없이 주인 논란에 휩싸인 곳이 있다. 바로 노량진수산시장이다. 지난달 15일 노량진수산시장에 정당 관계자들이 대거 모였다. 현역 지역구 의원이 소속되어 있는 제1야당은 물론 지역구 탈환을 노리는 집권 여당과 원내 진출자 한 명 없는 군소정당까지, 이 지역 정치꾼들이 모두 모였다. ‘노량진수산시장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현비연)’ 발대식 및 궐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현비연은 신축된 시장으로 이전을 반대하는 노량진수산시장직판상인 위주의 임시 조직체다.

이날 참석한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시장 상인들의 편에 서고 있었다. 그들의 논리는 현비연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시장의 주인은 상인을 비롯한 시장 종사자들이니 이들의 의사에 반하는 이전을 할 수가 없다는 취지의 지지 연설을 했다. 표를 얻기 위한 정치쇼라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었다.

노량진수산시장은 농안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의거 지난 1971년 건립됐다. 이후 2002년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수협중앙회에서 인수해 운영하고 있는 국내 최대 수산물 전문 도매시장으로 40여 년간 수산물 유통 메카의 역할을 해왔다. 시장 유통인들이 주인의식을 갖는 것도 좋고 정당인들이 그들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다. 이전을 반대하는 상인들은 처음에는 신축시장의 장사 공간이 협소하고 임대료가 비싸다는 이유로 소매자리를 경매장 쪽으로 확대해 달라는 주장을 펼쳤으나, 지금은 노량진수산시장만이 가진 역사적, 사회적 가치를 거론하며 현 시장을 리모델링해 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수협이 시장의 전통적인 가치에 대해선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시설의 현대화만 생각하고 있다면서 유서 깊은 노량진수산시장을 평범한 수산마트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수협은 현대화사업 시작 전 부터 상호간에 맺은 신뢰를 바탕으로 상인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공사를 마쳤는데 이제와서 당시 협약사항을 완전히 뒤집고 입주를 거부하니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노량진시장은 2009년에 시장 유통인들과 수협이 이전에 합의를 하고 양해각서까지 체결했으며, 그들이 좁다고 주장하는 판매자리 또한 지금처럼 지어질 것이라는 걸 인지하고 고급,대중,냉동,패류 등 부류별 상우회장들이 서면으로 시장 상인인들에게 확인시켜 준 사항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서명된 문서가 엄연히 존재한다.

수협의 입장은 확고하다. 현비연이 요구하고 있는 현 시장 리모델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또 시설 유지·관리비는 물론 현 시장건물 철거사업 지연으로 매달 수십 억 원의 피해를 입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입주를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굳이 소유권을 따지자면 문서상 노량진수산시장의 소유권은 수협중앙회에 있다. 수협중앙회는 일선 회원조합의 연합체이며, 회원조합은 어업인 조합원들의 출자로 세워진 협동조직체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불편함이나 거부감이 생기게 된다면 곧 어업인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일부 상인들이 현대화건물 입주를 거부하는 곳이 또 있다.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이다. 가락시장 운영주체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가락시장 현대화를 위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2,806억원을 투입해 1단계 공사인 가락몰(판매동)을 신축했다. 하지만 작년 말 문을 연 이곳은 회센터와 주방용품점 등만 입주해 있다. 이곳은 지하 1층으로 이전하게 될 청과 직판상인들의 반대가 심하다. 조합원 약 60%가 가락몰 입주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상인들은 가락몰이 도매업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됐다고 주장한다. 이제 겨우 1단계 공사를 마치고 2단, 3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이전이 늦춰지니 다음 공정에 들어가지 못하는 공사 측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협상의 원칙은 상대방이 수용 가능한 조건들을 내세우는 것이다. 5,200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새 건물을 완공해 놓았는데 이를 무시하고 기존 시장을 리모델링해달라는 허황된 요구로는 어느 누구도 설득할 수가 없다.

수협노량진수산(주)은 당초 일정을 두 달 연기해 3월 15일까지 입주 절차를 밟으라고 유통인들에게 통보를 했다고 한다. 법인 사무실은 이미 현대화 건물로 옮겼고 D-Day인 3월 15일 바로 다음날인 16일 0시 경매부터는 새 시장건물에서 진행하겠다고 공표했다. 상인들로부터 저지당했던 이전을 위한 자리 추첨도 온라인 추첨을 고안해 오프라인 추첨과 병행 진행했다. 상당수 상인과 중도매인들이 추가 추첨에 참여한 걸로 알려지고 있다.

상인을 비롯한 시장 유통인, 시민 모두 시장의 주인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약속을 저버린 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펼친다면 그는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주인 자격조차 의심받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수산업은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 일선에서 고기를 잡는 어업인들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어업인들이 힘들게 생산해서 위판을 의뢰한 수산물이 시장 유통인들의 잘못된 주인의식으로 소비자에게 외면 받는다면 어업인들이 시장 유통인들을 원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시장 유통인들의 올바른 주인의식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금은 내 이익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대화, 배려, 양보가 필요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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