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⑩ 경남 하동군 추호진 씨
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⑩ 경남 하동군 추호진 씨
  • 장은희 기자
  • 승인 2016.02.01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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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다슬기에서 발견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 경남 하동군 추호진 씨

귀어 전 거주 지역 : 서울
귀어지 : 경남 하동군
귀어 전 직업 : 음식점 조리사, 식품회사 직원
귀어 결심동기 : 모친 건강악화
귀어연도 : 2006년
나이 : 37세
귀어 초기자금 : 1,000만원
연간 매출 : 6~7억원
사업규모 : (양식장) 약 4,958㎡
                   (공장) 약 628㎡
                   (식당) 약 330㎡















아무것도 없었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귀어·귀촌을 준비하는 데 있어 금전적인 부분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일에는 새로운 집이 필요하고, 사업을 위한 시설 등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 귀어 초반에는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기에 시행착오 속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 자본이 있어야한다는 것이 많은 귀어인들의 조언이었다.

여기에 조금 다른 이야기가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더 도전할 수 밖에 없었던 청년의 이야기. 경남 하동군 정옥다슬기의 대표 추호진 씨이다.

그의 귀어 이야기는 2006년 시작된다. 하동군은 추호진 씨가 청소년기를 보낸 곳이자, 어머니가 계신 곳이었다. 어머니가 29살, 아버지가 31살. 젊은 나이에 추 씨의 아버지는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홀로 삼남매를 키우며 안 해본 일 없이 고생한 어머니는 몸이 약해시졌고 심장병으로 응급실까지 갈 정도였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추호진 씨는 하동으로 내려가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땅을 빌리고 시설을 꾸릴만한 금전적 준비가 없어서, 처음에는 그저 먹고 살길이 막막하기만 했다”고 회상했다. 연고가 있는 지역으로 귀어를 할 경우 많은 경우 사업 기반이나 윤곽이 갖춰져 있는데 반해, 추호진 씨는 모든 것을 스스로 일궈야했다.

냇가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하던 그는 다슬기가 고가품종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다슬기’를 도전의 시작점으로 삼게 된다.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는지 묻자 추 씨는 ‘다슬기 잡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처음에는 ‘노동을 투자한 만큼 자연에서 돌려 받을 수 있을 것’ 이란 마음으로 무작정 열심히했으나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자연이 허락해야 한다는 말처럼 날씨나 계절이라는 변수 앞에 생각을 전환하게 됐다”고 말했다. 잡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가공을 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는지 묻자 추호진 씨는 ‘다슬기 잡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날씨나 계절이라는 변수가 존재했다. 이에 그는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가공을 해야한다고 생각했고, 2008년 정옥다슬기를 설립하게 된다.

시작은 지금과 같은 기업의 모습은 아니었다. 추 씨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시작했기에 손해 볼 것이 없었고, 욕심 없이 하나하나 시도해볼 수 있었다”며 “다슬기를 기르고 잡고 가공하는 등의 과정을 SNS나 블로그 등을 통해 알리고 아는 사람들을 통해 판매하면서 신뢰를 쌓아갔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2008년 설립된 정옥다슬기(www.agyang.co.kr)이다. 노동의 가치를 믿고 도전하는 청년의 진가를 알아본 이들이 추호진 씨를 한 계단 올라 서게 한 것이다.

다슬기 진액, 다슬기 죽, 다슬기 국, 다슬기 고추장 볶음, 다슬기 강된장 등 정옥다슬기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16가지이다. 이 중 다슬기 진액 추출 신기술로 추호진 씨는 2013년 당시 최연소 수산신지식인에 선정됐다. 신기술을 개발하고 수산신지식으로 선정되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추 씨는 동촌에서는 드물게 지식경제부 지역기반육성기술개발 사업을 통해 연구비 1억원을 지원받을 경력이 있었고, 무작정 경남수산기술사업소 남해사무소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다슬기의 좋은 성분만을 추출해내는 효소를 찾기 위해 그는 전문가들과 밤낮으로 몰두했다. 그 과정 속에 그는 다슬기의 식품적인 기능을 더 알아갈 수 있었다.

추 씨는 당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신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던 일을 예로 들며 청년들도 귀어나 귀촌에 겁먹을 것이 없다고 격려했다. 그는 “금전적인 부분이나 기술, 교육 등은 지자체나 관련 기관에 많은 지원이 열려있으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진취적이고 추진력있는 마인드와 더불어 항상 겸손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 본인의 마음가짐이다”라고 전했다.

받은 만큼 나누면, 배가 되어 돌아오는 귀어

추호진 씨는 다슬기를 중심으로 순환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의 양식장에서는 다슬기 종묘를 생산하는데 냇가에서 무조건 잡아들이기만 하면 개체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으므로, 종묘를 생산해 방류함으로써 계속해서 다슬기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꾸리고 있다. 그렇게 해야 앞으로 더 많은 다슬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이다.

추호진 씨에게 최근에 가장 몰두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냐 묻자, “마을 새마을 지도자가 됐다”고 웃으며 ‘마을회관에서 마을분들과 이야기 하는 것’ 이라고 답했다. 추씨는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주위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공동체 의식이 강한 시골에서는 이미 오랜기간 사시던 분들이 일궈놓은 것들은 존중하며 나의 어머니, 아버지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토착민들이 서로 양보하며 이끌어온 마을이라는 점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 마을의 어엿한 아들이 된 추호진 씨는 최근 마을주민들과 '다슬기 마을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다슬기와 문화, 체험 등의 요소가 연결된 다슬기 테마파크, 일명 '다슬기 랜드'는 그의 장기프로젝트이자 꿈이다.

이제는 마을의 듬직한 아들이 된 추씨와 마을주민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다슬기 마을화’에 관한 것이다. 다슬기와 문화, 체험 등의 요소를 연결지어 마을을 다슬기 테마파크 일명 ‘다슬기 랜드’로 만드는 것은 그의 앞으로의 목표이다.

그는 “다슬기 랜드에서는 다슬기를 잡아 바로 요리를 해먹고 다슬기 껍데기로는 공예품을 만들고, 집에 가져가 직접 키워볼 수 도 있을 것”이라며 “특히 단순히 도시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일회성으로 체험하는 것에서 나아가 다슬기가 옛날에는 어떻게 쓰이고 각 지역에서는 어떻게 잡고, 먹는지를 기록한 다슬기 박물관, 또는 다슬기 캐릭터를 만들어내 이 캐릭터가 고유의 가치를 가지면서 다슬기를 알리는 매체로 활용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 첫 시작으로 추 씨와 마을주민들은 마을 앞 하천을 생태하천으로 개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6차 산업화가 마케팅 도구로만 이야기 되는 점이 아쉽다”며 “노골적으로 상품화 하는 것보다 그 가치를 사람들이 직접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귀어 초반 블로그와 SNS를 활용하며 체득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래서 추 씨가 꿈꾸는 다슬기 랜드에는 다슬기 고유의 가치와 현대의 모던함이 연결돼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미래의 새로운 가치가 탄생한다.

그는 “도시에도 시골에도 위기는 어디에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라며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귀어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마디를 전했다. 추호진 씨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어느 곳에서난 어떤 상황에서나 우리는 꿈을 꿀 수 있다. 그리고 그 꿈은 작은 다슬기 속에서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료협조=어촌어항협회 귀어귀촌종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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