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할매 이야기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할매 이야기
  •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 승인 2016.02.01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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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고흥군이 두 외국인을 노벨상 후보로 추천하기로 했습니다.

국립소록도병원이 5월 17일로 개원 100주년을 맞습니다. 소록도는 ‘작은 사슴’이란 이름으로 고흥군에 속해 있습니다. 소록도병원은 올해 개원100주년을 맞습니다. 그 기념행사의 하나로 소록도병원에서 43년간 나병환자를 위해 헌신했던 수녀 두 분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로 한 것입니다.

두 분은 실은 수녀가 아니고 간호사입니다. 병원에서는 ‘큰 할매’, ‘작은 할매’로 불렸습니다. 두 할매는 오스트리아인 마리안느 스퇴거(82)와 마가렛 피사렛(81)입니다.

두 사람은 소록도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천주교를 통해 접하고 20대 미혼의 나이에 소록도에 와 평생을 보냈습니다. 마리안느는 1962년부터 2005년까지 43년간, 마가렛은 1966년부터 39년간 나병환자를 돌봤습니다. 이들은 간호사로 왔지만 수녀님으로 불렸고, 환자들로부터는 그냥 할매로 불렸습니다. 언론은 ‘소록도의 천사’로 불렀습니다.

두 사람이 섬에 왔을 때 환자들은 두 번 놀랬습니다. 파란 눈에다가 노랑머리 외국인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치료는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병원의사들도 마스크와 장갑을 겹겹이 끼고도 환자들을 멀리 앉게 하고 원격으로 진료했습니다.

두 사람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하얀 가운만 걸친 채 치료했습니다. 짓물러 달라붙은 환자의 발가락과 손가락을 만지고 몸 구석구석을 직접 소독해 주었습니다.

그것도 맨손으로. 상처의 피고름이 얼굴에 튀어도 담담했으니, 오히려 환자들이 가슴을 쓸어 내렸다고 합니다. “두 수녀님들은 정말 살아있는 성모마리아였습니다.” 완치된 주민의 말입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약이 모자라면 오스트리아에 호소해 약을 가져와 치료했고 소록도의 쓰러져가는 집들을 두 팔 걷어 직접 고치기도 했습니다. 수녀회에서 보내온 생활비는 환자들의 간식비로 썼습니다. 두 사람이 묵었던 3평 남짓한 방에 있는 거라곤 작은 장롱뿐이었습니다. 조용히, 하지만, 꾸준하게 이어온 두 수녀들의 치료는 무려 40여 년간 계속됐습니다. 그 사이 6,000명에 달하던 환자는 600명으로 줄었습니다.

성서에 가장 많이 언급된 질병은 나병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나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알지 못해 나병을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진짜 나병만이 아니라 피부가 손상되는 모든 질병을 나병이라고 불렀습니다. 나균은 열대, 아열대 지방에 서식하는 병원균입니다. 국내에서는 남부지방에서 발생했습니다.

식민지 시절 나병 요양원이 있었으나 규모가 작았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유랑하며 걸식했습니다. 총독부는 환자들을 격리 수용할 방침을 세우고 소록도를 적지로 선정했습니다. 총독부는 섬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1916년 소록도에 나병전문 의원을 설립했습니다.

나병은 지금은 한센병, 환자는 한센인으로 불립니다. 노르웨이 의학자 한센이 1873년 병원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한센병은 정확한 감염경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호흡기나 상처가 있는 피부를 통해 침입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 사람은 한센병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고, 실제 감염되어도 한번의 약물치료로 쉽게 치료 가능합니다.

마리안느, 마가렛 수녀는 한센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치료하는 모습으로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뜨렸습니다. 지금 소록도병원 간호사들은 맨손 치료는 기본이라고 합니다.

또, 두 분의 헌신적인 봉사를 계기로 소록도에는 해마다 전국에서 의료봉사단과 자원봉사자들이 줄을 이어 ‘자원봉사천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수녀님을 모델링하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십수년 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국립병원 내과병동에서 에이즈 환자들을 돌보는 한국인이 있었습니다. 파견간호사 강경애씨입니다.

현지인들과 에티오피아 말인 암하릭어로 쉴 사이 없이 수다를 떠는 그를 보면 10년 이상 이곳에서 지낸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이곳에 온지 불과 1년 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 국립소록도병원의 약사로 한센병 환자들과 17년을 보낸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소록도와 결혼한 노처녀’라고 말할 정도로 한센병 환자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와 같이 밥 먹고, 맨손으로 치료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녀에게는 닮고 싶은 이가 있었습니다. ‘소록도의 테레사’로 불리는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입니다. 그녀는 두 수녀님의 박애정신을 꼭 닮고 싶어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의 그녀의 이런 행동은 바로 두 분 수녀님들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2005년 11월 21일, 두 수녀는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소록도에서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저희들이 천막을 접어야 할 때가 왔다’고, ‘제대로 일할 수가 없고 자신들이 부담을 줄 때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자주 말해 왔’다면서 ‘그 말을 실천할 때’라고 편지에 썼습니다. 그 편지도 공항으로 가는 길에 부쳤다고 합니다.

노벨평화상 받을만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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