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賊에 대한 몇 가지 고뇌
海賊에 대한 몇 가지 고뇌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0.05.1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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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일반선박은 非武裝이다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전투력 보유가 우선적인 군함(軍艦)과 달리 일반선박은 모두 비무장(非武裝)이다. 반면 수많은 승객을 탑승시킨 일부 여객선에서는 묵시적으로 무장이 허용되고 있다.

빙산과 충돌한 ‘타이타닉’ 호가 침몰을 앞둔 순간, 퇴선(退船)을 지휘하던 1등항해사 머독이 권총을 사용한 게 그 한 예다. 배가 침몰의 위기에 처하자 머독은 연소자와 여자부터 먼저 구명보트에 오르라고 소리쳤지만, 어느 비겁한 남자 승객 하나가 차례를 무시하고 먼저 보트에 기어오르려고 하자 권총을 발사했던 것이다.

어린아이와 여자 등 상대적으로 연약한 사람들을 먼저 고려하게 된 것은 타이타닉 사고가 있기 훨씬 전 풍랑으로 침몰한 여객선 ‘버킨헤드’ 호 이후에 비로소 정착된 일종의 신사협정이었다. 이전까지는 그 같은 약속이 정립되어 있지 않아 승객들이 서로 먼저 구명보트에 오르려고 뒤엉킨 나머지 90퍼센트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던 것이다.

타이타닉 사고 때 항해사가 권총 한 자루나마 소지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구명보트 개수가 절대부족인 상황에서 어떻게 이성을 잃은 승객들을 제어할 수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머독의 권총 한 발 덕분에 2,223명의 승선원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706명이나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타이타닉에서처럼 여객선 항해사라면 누구나 무기를 휴대해도 좋다는 법조문은 어디에도 없다. 여객선에는 무엇보다도 승객이 우선이므로 행여 발발할지 모를 납치행위나 혹은 선내질서를 깨트릴지도 모를 범법자들을 제어하기 위해 그저 암묵적으로 무기휴대를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또다시 불행에 처한 삼호드림 호

조용한가 싶더니 다시 소말리족(族)이 한국 국적의 유조선 한 척을 납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난 달 4일, 해적 놈들은 소말리아 동쪽 800마일 거리의 인도양 한복판에서 원유를 싣고 미국 루이지애나로 향하던 ‘삼호 드림’ 호를 따라붙은 한국 청해부대(구축함 ‘이순신’ 함)의 위력시위에도 불구하고 유유히 그들의 본거지로 끌고 간 것이다. 총톤수 32만 톤인, 크기로 치면 세계 유조선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드는 VLCC(초대형 유조선) 한 척이 메리야스 런닝셔츠 차림에 소총을 든 야만족에게 꼼짝없이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피랍선은 지금 웬만한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소말리아 해안 ‘호비호’라는 곳의 1km 앞바다에 닻을 내린 채 기약도 없는 정박선 신세가 되어 있다. 

한국인 5명을 비롯한 모두 24명의 선원이 승선한 그 유조선은 해적의 공격을 받자 곧 인도양에서 작전 중이던 유럽연합(EU) 함대 등에 신고했다. 그 보고를 접한 우리 정부도 즉시 청해부대에 최선을 다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선박과 인질을 구출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당시 오만의 ‘살랄라’ 항에서 군수품을 적재하고 있던 이순신 함은 곧 30노트 이상의 속력으로 일단 따라 붙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선원들은 이미 AK소총과 로켓포 등으로 무장한 해적에게 인질이 된 데다가 피랍선이 원유를 만재한 상태여서 함부로 작전을 펼칠 수 없어서 그만 속수무책이 되고 만 것이었다.

이제 상선도 무장할 때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는다. 다른 무엇보다도 삼호드림 호처럼 야만족의 제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해적 놈들에게 장악되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놈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거액의 협상금(協商金)을 지불하지 않고서는 배나 인명을 구해낼 어떤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가령 원양 항로를 뛰는 대다수 선장들은 해적과의 조우 등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얼마 되지 않는 비상 선용금부터 선내 이곳저곳에다 나누어 보관하는 궁리가 고작이고, 그러다가 정작 해적이 나타날 때면 물대포를 쏘든가 아니면 적재하고 있던 화물 가운데 기껏해야 귤이나 감자 등속을 투척하는 게 유일한 대응방안인 형편이다. 도대체 그 같은 소극적 대응으로 원정(遠征) 길에 오른 중무장의 해적을 어떻게 퇴치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비하여 최근 유럽연합 함대가 궁리해낸 게 ‘위험지역 항해 시 준수하여야 할 매뉴얼’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해적의 습격을 받으면 우선은 기관을 정지시킨 다음 승무원들은 모두 안전 구역으로 대피하여 구출되기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선박 전체가 온통 유류탱크인 유조선 어느 곳에 안전지대가 존재할 것이며, 설령 군함이 출동하더라도 삼호드림 호처럼 중무장한 야만인들을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가 최근에 만난 어느 항해사의 호소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앞 항해에서 그가 승선한 배가 말라카해협을 통항하는 동안 해적으로 보이는 쾌속선 하나와 조우하였는데, 정선(停船)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궁여지책으로 조난 시 사용하는 로켓신호기 수발을 발사하여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난신호기를 발사하여 해적으로부터 벗어난 경우는 지극히도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말라카해협은 통항선이 많아 은연중 그 덕을 톡톡히 보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항해사 견해다.
“우리 일반 선박에도 타이타닉 호처럼 최소한 자위(自衛)가 가능한 무기소지를 허용하는 건 어떨까 합니다. 선원들 대부분이 병역의무를 마친 상태이므로 무기를 다루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러면 물대포를 쏘거나, 귤이나 감자를 투척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지 않겠습니까? 가령 열차나 여객기에서는 별도의 보안요원(保安要員)을 추가로 태우고 있지 않습니까?”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외롭게 대양을 항해하는 선원들의 해적공포증이 오죽하면 그 같은 발상까지 하게 되었는가 싶어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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