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참치잡이배’ 탄생
‘꿈의 참치잡이배’ 탄생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08.12.2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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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산업의 현주소 ⑦

 ‘꿈의 배 - 오션 에이스’의 탄생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어언 반세기 연륜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원양어업을 회고해보면 허다한 선각자들이 해양제패(海洋制覇)의 꿈을 안고 세계의 바다에 도전하였건만, 지금까지 줄기차게 개척과 도전의 역사를 쓰면서 살아남은 회사는 손을 꼽을 정도. 기타는 황파 속 물거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가운데 지금껏 요지부동하게 개척자(開拓者)다운 면모를 과시하면서 온갖 기록을 갱신함은 물론, 일취월장 새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회사가 있으니 곧 ‘참치의 대명사’인 동원산업(東遠産業)이다. 이 회사는 오늘도 중단 없는 새 장(章)을 펼쳐 보이면서 세계 수산인(水産人)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 핵심이 곧 ‘꿈의 원양어선’이라고나 할 참치잡이 선망선(旋網船) ‘오션 에이스(OCEAN ACE) 호 탄생(誕生)’이다. 총톤수 2,200톤급의 이 배는 한 차례 투망으로 대량어획이 가능한 자선(自船)의 강점에다, 비록 소량일망정 혁신적 냉동법인 독항선(獨航船)의 초급속·초저온 냉동처리 시스템을 접목시킴으로써 단번에 종전 어가(魚價)를 50% 이상 끌어올리면서 엄청난 부가가치(附加價値)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1년 동안 오션 에이스 호가 잡은 어획량은 모두 1만2천여 톤. 그 가운데 1만여 톤이 가다랭이였고, 나머지 2천여 톤이 횟감용으로 최고의 어종인 ‘황다랑어’와 ‘눈다랑어’였는데, 오션 에이스 호는 이 두 가지 어종을 지금까지의 선망선 방식인 ‘브라인(Brine; 소금물) 냉동법’으로 처리하여 그 고귀한 어획물을 통조림용으로 공급(供給)함으로써 아주 헐값에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 고귀한 어획물에다 독항선의 전매특허(專賣特許)인 초급속·초저온 냉동법을 적용하면 어떨까. 바로 그 같은 발상의 전환이 세계 최초로 꿈의 참치잡이배를 탄생시킨 단초였던 것이다.

 

 선망선과 독항선의 오묘한 접목(接木)

 지금까지 세계의 모든 선망선들은 어획물을 선상 처리함에 있어서 종래의 브라인 냉동법만이 유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브라인 냉동법이란 녹을 때 주변의 열을 빼앗아가는 소금의 조해성(潮解性) 특성을 원용하여 어체온도를 -15℃ 내외로 떨어트리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세계의 선망선들이 브라인 냉동법에 만족한 것은 그 어로 방식이 미국이나 스페인을 비롯한 선진 수산국들의 선점물(先占物)이었고, 그리고 그렇게 잡은 어획물은 그들의 기호식품인 참치캔 원료로만 전용(專用)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고급스러운 선도 유지(鮮度維持)가 필요치 않았던 때문이었다. 참치캔 재료는 횟감에 비해 다소 선도가 떨어지더라도 충분한 가열(加熱)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영양가나 미각(味覺) 면에서 별다른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종래의 선망선들은 통조림공장에다 어획물을 양륙할 때까지 웬만큼 선도를 보존·유지하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으므로 아주 원시적이라고나 할 빙장(氷藏) 시스템에서 겨우 한 단계 발전된 기왕의 브라인 냉동법만으로도 그 실효(實效)를 충분히 담보할 수 있었다.

  따라서 독항선들의 초급속 냉동법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브라인 냉동법이 가장 최선의 선상처리 방식이었다. 그리하여 선망선들이 출항할 적이면 수십 포대씩의 소금자루를 선적하는 풍경을 우리는 쉽게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우리 동양인들처럼 ‘사시미(さしみ)’를 선호하지 않았다. 그러니 초급속 냉동법이 요긴할 리 만무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60년 중반, 일본인들이 참치회에 유별난 관심을 표명하면서 보다 원형(原型)에 진배없는 선도를 요구하게 되자 독항선 시스템이 개발되면서 비로소 오늘날 보는 것처럼 초급속·초저온 냉동법이 창안되기에 이르른 것이었다.

 

 통조림과 횟감용 참치의 차이

 하지만 오션 에이스 호처럼 대부분의 선망선들이 한 해 동안 잡아 올리는 황다랑어와 눈다랑어의 어획량이 2천 톤에 육박한다면 문제는 확 달라진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독항선들이 1년 동안의 고군분투 끝에 잡아 올리는 어획량이라야 고작 3~400톤에 불과한 반면, 선망선은 그 네댓 배를 더 잡고 있으면서도 그처럼 고귀한 어획물을 상대적으로 값이 싼 통조림 재료로 처분하는 우를 범하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동원산업은 오래전부터 이 같은 모순에 깊은 회의를 품어 온 게 틀림없다. 필자는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현재 본지에 연재중인 <불타는 오대양>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독항선 선장 출신인 필자가 동사 소속 선망선인 ‘엘스페스’ 호에 편승하고 있으면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포획되고 있는 어획물 가운데 상당량이 사시미 감으로도 유용한 황다랑어와 눈다랑어임을 보고 이를 안타까이 여긴 나머지 당시의 선장(차용우)에게 물었더니, 선주(김재철 회장)도 진작부터 공감하고 있는 바라며, 그리하여 한때는 인근에서 조업중인 독항선을 불러서는 앞서의 두 어종만을 선별하여 넘겨주기도 여러 번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절차가 워낙 번거롭고 또 두 어종이 자주자주 포획되는 것도 아니어서 그만 유야무야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참고로, 우선 독항선이 적용하고 있는 초급속 냉동법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생물인 물고기는 포획되는 순간부터 생명을 다하면서 곧바로 부패(腐敗) 단계로 접어든다. 흔히 어시장 좌판대에 진열된 생선을 예로 들면, 그 보존 상태라는 것이 겨우 해서 잘게 빻은 얼음 부스러기 따위로 덮어두는 게 고작이어서, 그 환경(온도)이라야 겨우 ±0℃ 안팎에 머무르는 데 불과하다.

 이 상황을 냉동학적(冷凍學的)으로 엄밀히 말한다면 ‘한창 부패가 진행중에 있는 생선’이라는 지극히도 비관적인 분석 결과가 나온다. 따라서 어시장 좌판대에서 몇 시간씩이나 방치된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보건위생상으로도 여간 위험하지 않다.

 하물며 원양 어장에서 잡은 어류라면 식탁에 오르기까지 적어도 서너 달은 더 어창에 묵혀져 있었던 만큼, 도대체 그처럼 빙장 처리된 어획물이 사시미 재료로 당키나 할 것인가. 그 결과로 초기적 불과 한 달여 만에 만선 귀항한 빙장선의 경우, 양륙 물량의 10% 가량이 통조림용으로도 적합하지 않다 하여 ‘리젝트(Reject ; 거절) 판정’을 받기가 예사였던 것이다.

 

 동원산업 선주의 개척자적 발상

 그렇다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생선을 처리하여야 당초 잡은 순간의 선도를 원형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여 도입된 선상처리법이 곧 독항선이 채택하고 있는 초급속·초저온 냉동법인데, 이는 아주 강력한 기능의 냉동기를 가동시킴으로써 최단시간(30시간) 내에 어체 중심온도를 부패방지 절대온도인 -70℃까지 낮추는 방식이다.

 그 같은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른 물고기는 그 신선도가 원형(原型) 그대로여서, 식탁에 올려져서까지도 ‘포획한 순간 그대로의 맛과 때깔’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선도를 길게는 1년도 더 오래 유지시킬 수 있다.

 따라서 통상 500톤급 독항선들이 이와 같은 냉동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50마력 이상의 견고한 냉동기를 서너 대는 더 가동시켜야 하고, 이를 운용함에 있어서도 심지어는 양륙이 끝나고 어창이 비는 순간까지 단 한 대의 냉동기도 고장을 일으키는 등으로 운전에 하자가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독항선들이 잡아 온 어획물이 천정부지로 고가일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차례 투망에 많게는 수백 톤씩의 포획이 가능한 선망선의 어획물을 독항선의 초급속·초저온 냉동 시스템으로 처리하면 어떨까. 바로 그 같은 발상이 곧 우리가 오늘날 보는 ‘꿈의 원양어선- 오션 에이스 호’를 탄생시킨 단초였으며, 그 막후에 김재철 회장의 개척자적 발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오션 에이스 호는 지난 1년 동안 톤당 2,000~2,300달러씩을 받는 데 그쳤던 2,000여 톤의 황다랑어와 눈다랑어를 일거에 3,500달러로 어가를 수직 상승시킴으로써 추가적으로 획득한 이익금만 300여 만 달러에 이르는 일대 혁신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오션 에이스 호의 조업실적을 지켜본 동원산업은 그 성공적인 데이터에 힘입어 금년 안으로 지금 한창 대만의 ‘칭푸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두 척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라 한다. 우선 오션 에이스 호와 동급인 ‘블루 오션’ 호는 다음 달 취항을 앞두고 목하 시운전 과정에 얹혀 있고, 그 뒤를 이어 이 달 중으로 진수식을 치를 ‘장보고’ 호 역시 11월이면 태평양으로 달려 나갈 채비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동원산업은 지금껏 조업에 투입하고 있던 기존의 여타 12척 선망선 모두를 오션 에이스 호처럼 ‘독항선 식 선망선’으로 개조해나갈 공산이 크다.

 오늘날 세계의 바다는 지난날 선각자들이 그토록 운위(云謂)하던 개척과 도전의 시대는 이미 과거지사(過去之事)로 흘려보내고 있다. 이제 바다는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누가 어떻게 활용하고, 그 효용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얼마나 더 많은 부가가치(附加價値)를 창출하는가에 그 성패가 달렸다. 동원산업의 오션 에이스 호가 그 좋은 사례다. 곧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를 실증한 좋은 예인 것이다. 

200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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