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장이 된 바다축제장
투쟁장이 된 바다축제장
  • 박종면 기자
  • 승인 2015.11.0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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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도심 속 바다축제’가 열린 지난달 24일 축제 분위기를 기대하고 도착했던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이는 정겨운 시골장터 같은 푸근함과 흥겨운 축제의 장을 기대했던 기자의 상상을 산산이 깨는, 평소 느낄 수 없었던 이질감을 뛰어넘는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노량진수산시장을 찾는 시민, 소비자들과 가장 먼저 마주하는 직판상인들. 이들이 조직적으로 갖춰 입은 빨간객 조끼는 피를 상징하는 듯했고, 그 위에 ‘단결투쟁’, ‘생존권 쟁취’라고 선명하게 적힌 구호는 평소 평범한 시민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두려움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긴 분명 축제장인데 이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강렬한 빨간색 조끼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나눠주며 서명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봤다. ‘노량진수산시장을 시민의 품으로’ 제하의 유인물엔 수협이 돈에 눈이 멀어 시장 종사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시장 기능과 공간을 최소화 해 호텔, 카지노 사업에 주력하려고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현대화사업으로 새로 지은 건물엔 좁아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복합리조트사업의 이익금은 어업인들을 위해 쓰겠다고 수협중앙회장이 애초에 공언한 것이었고, 새 시장 입주는 이미 2009년 협의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 와서 입주를 거부한다니…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주장을 관철하는 방법이었다. 이날은 해양수산부, 서울시, 동구청, 동작구의회, 수협중앙회 등 관련 기관, 단체장을 비롯한 귀빈과 시민 손님들이 참여하는 개막식이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개막식장 주위에 빨간 조끼를 입은 상인들이 몰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행사는 예정대로 시작됐지만 상인들 사이에서 야유가 들렸다.

내빈 축사 중간에 야유도 들렸다. 그러던 중 피켓을 개막식장 주변에 걸겠다는 상인 측과 이를 막으려는 수협노량진수산(주) 직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상인 리더로 보이는 이가 건물 계단에 올라가 확성기를 들고 상인들 모이라고 방송을 했다. 일부 상인들은 구호를 외쳤다. 축제의 장이 소란스런 투쟁의 장으로 변질된 것이다.

바다축제는 수협노량진수산(주)와 동작구청이 수산물 소비촉진을 위해 매년 여는 행사로 해수부와 서울시가 후원한다. 여기 참여 주체는 상인과 시장 관계자들이다. 해마다 20만 명 이상이 축제장을 찾는다. 축제로 가장 많은 수혜를 입는 이는 다름 아닌 상인들이다.

그런데 가장 큰 큰 수혜를 보는 상인들이 잔칫집에 찾아온 손님 앞에서 판을 깨는 것과 다름 아니다. 수산물을 구입하고 먹고 즐기러 온 시민, 축하해주러 온 귀빈들에게 추태를 보인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방법이 잘못된 것임이 분명하다. ‘함께 하는 축제’를 만들자고 해놓고 행사와 관련 없는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집단행동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구호를 외치는 식의 전쟁 같은 투쟁을 어느 누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설득력이 없는 주장은 그냥 주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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