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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사고 실화와 교훈 ② 제3신성호 침몰사건<현대해양> 1980년 3월호 수록본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15.10.06 13:47
  • 호수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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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에 휘말려 표류하기 시작

1972년 6월 20일 새벽, 안강망어선 제3신성호는 출어를 위한 마지막 점검으로 술렁이고 있었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낮은 구름이 깔린 하늘을 바라보는 선장 임씨의 얼굴에 약간의 긴장감이 감돈다.

육지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내고 난 선원들의 얼굴이 꺼칠한게 모두들 어지간히 과음을 한 모양이었다.
“선길이 자네 엊저녁에 너무 과로한 것 같아, 왜 그렇게 다리가 휘청거려.”

호탕하게 웃으며 기관장 방씨가 소주궤짝을 들어 나르는 갑판원 김씨에게 농을 건다. 선주 박씨는 선장의 손을 굳게 잡아주며 안전항해와 만선을 기원한다. 이제 제3신성호는 동중국해로 향하여 출항할 준비가 완료된 것이었다.

동일 오전 11시, 제1종 소형 목조어선 29톤급 제3신성호는 선장 임씨와 8명의 선원을 태우고 목적지인 동중국해 어장을 향하여 부산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영도교를 지나 송도 앞바다에 이르러 전속 7노트로 속도를 높인다. 육지에서의 피로가 갑자기 엄습한 탓인지, 아니면 아늑한 바다의 풋풋한 내음에 도취된 탓인지, 선원들의 눈꺼풀이 무겁게 내리깔린다.

진해만을 통과하여 그림같은 한려수도의 푸른 물살을 가르고 지나갈 즈음 기관장 방씨로부터 급한 연락이다. 기관실 안의 발전기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선장 임씨는 충무항에서 고장난 부분을 수리키로 결심하고 동일 17시경에 충무항에 입항하였다.

한시간 정도의 수리공사를 끝낸 후 동일 18시에 충무항을 출항하여 동중국해를 향해 항해를 계속하였다. 꿈과 낭만의 바다요 어민들의 마음의 고향인 한려수도를 벗어나 전라남도의 소리도와 거문도로 야간항해를 강행하면서 통과하였다.

농무가 스치고 검은 구름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기상상태를 불안한 마음으로 관측하면서 기관장 방씨와 선장 임씨는 라디오의 일기예보에 온 신경을 집중시킨다. “선주집 고사날에 촛불이 꺼지더니 이 놈의 날씨가 변덕을 부려쌌네” 하고 뇌까리며 갑판원 김씨는 침을 탁 하고 뱉는다. 불안을 토해내 버리기라도 하듯.

심한 풍랑을 헤치면서 신성호는 동년 6월 21일 17시경에 추자도와 제주도의 중간해상을 지나고 있었다.

불안한 예감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갑자기 기상이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어쩔 수 없이 항해를 계속하였으나 임선장의 생각으로는 안전항해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 추자도 서남방 약 100마일 해상 수심 70미터되는 곳에 안강망용 나무닻을 내렸다.

풍랑을 선수부분으로 받으면서 마침내 제3신성호는 노도같은 파도속을 표류하기 시작한다. 이때가 22일 02시 30분경이었다.

   
▲ 1972년 6월 20일 새벽, 안강망어선 제3신성호는 출어를 위한 마지막 점검으로 술렁이고 있었다. 동일 오전 11시, 제1종 소형 목조어선 29톤급 제3신성호는 선장 임씨와 8명의 선원을 태우고 목적지인 동중국해 어장을 향하여 부산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기관실 침수로 긴급구조 요청

“중국의 양자강 유역에서 발달한 998미리바의 저기압이 동쪽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중앙관상대는 6월 22일 10시를 기하여 서해남부 및 남해서부 해상에 폭풍주의보를 예보했습니다. 풍속은 초소 17 내지 18미터로 바람의 방향은 북동풍이오니 이 지역을 항해하는 선박들은 각별한 주의를 바랍니다.”

아나운서의 다급한 목소리를 불안하게 들어 넘겼던 어제 저녁의 이상한 예감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있는 선장실에 급보가 날아 들었다. 기관장실의 침수가 무척 심하다는 것이었으니 어둠 속에서 침수의 근원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절망적인 일이었다.

기관장 방씨는 주기관에 시동을 걸고 부속펌프를 작동시켜서 배수작업을 시작하는 한편, 필사적으로 침수되는 곳을 찾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에는 주기관이 불어난 물에 휘말려 자연정지되고 말았던 것이다.

다급해진 선장은 무전실로 달려갔다. 불안과 공포로 찌들린 선원들의 눈망울이 무선기에 매달리고, 일순간 삶에 대한 처절한 탄식이 터져 나온다.

“선장! 선장! 교신되었소?”
“주파수가 잘못된 것 아니요?”

알아 들을 수 없는 다급한 목소리들이 뱃전에 부딪치는 거센 파도와 윙윙거리는 바람소리에 묻혀버린다.

“됐다 됐어!”
안도의 탄성이 일제히 터지면서 가벼운 흥분이 일고 긴급구조 요청이 교신된 사실에 한가닥 희망을 걸면서 떨리는 손으로 누군가가 선장에서 담배를 권한다.

긴급구조 요청을 받은 해군 함이 신성호 부근에 당도한 것은 그날 17시 30분경이었다. 그러나 뱃전을 때리는 삼각파도와 거센 바람으로 인하여 접근을 하지 못하고, 뒤따라 달려온 해양경찰 소속 호에 의해 간신히 접근할 수 있었다.

신성호가 이처럼 몇시간 동안의 표류 속에서도 견딜수 있었던 것은 날이 밝은 후에 침수장소를 발견해내어 수리작업을 서둘렀던 덕택이었다. 그러나 배 밑부분에서 빠져나온 푸라그(木栓)는 다시 고쳤으나 주기관이 이미 침수된 상태여서 항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가까운 항구로 예인해 줄 것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 제3신성호는 한시간 정도의 수리공사를 끝낸 후 동일 18시에 충무항을 출항하여 동중국해를 향하여 항해를 계속하였다. 꿈과 낭만의 바다요 어민들의 마음의 고향인 한려수도를 벗어나 전라남도의 소리도와 거문도로 야간항해를 강행하면서 통과하였다.

방심이 빚은 침몰

제3신성호는 해경 ○○호로부터 32미리짜리 와이어 예인색을 전달받고 빠른 속도로 묶어 나갔다.

갑판원과 어로원들이 총 동원되어 선수 우현 3미터거리에 위치한 ‘스토커’에 ‘와이어로프’를 동여매고 다시 4미터의 후방의 ‘빗트’에 결박한 다음 우현 상갑판 중간점에 있는 ‘카프스탄’에 예인색을 단단히 묶었다.

그 후 신성호에 탄 선원들을 ○○호에 이승시키려 했으나 격심한 풍랑으로 배를 붙일 수가 없어서 일단 포기하고 두 배의 위치를 170미터 정도로 유지하면서 예인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이때가 6월 22일 19시 10분이었고, 예인선 ○○호는 시속 4노트의 침착한 속도로 항진을 계속해 나갔다.

생사를 가르는 처절한 투쟁이 끝나자 선원들의 육신은 물먹은 솜덩어리 같이 무거워져 선실 바닥에 고꾸라진다. 거센 풍랑과 악마의 휘파람소리와도 같은 세찬 바람, 허기진 뱃속에 쏟아넣은 몇 모금의 소주가 수면제처럼 잠을 부른다. 조타실에는 선장과 갑판원 김선길만이 배를 지키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급히 서둘러 뺀 예인색도 힘의 균형이 맞지 않아 선체는 우측으로 기울고 선수는 왼쪽으로 회전하는 상태에 있었다. 이처럼 선수가 좌회전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선장은 타를 우측으로 회전시킨 채로 운항을 계속해야만 했다.

바다가 내려앉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드는 순간 선체가 뒤집히고 바다가 쪼개진다. 죽음의 미소가 입가에 흐르고 텅 빈 머릿속에는 육지의 신기루가 떠 오른다.

1972년 6월 23일 01시 10분 마라도 서남방 45마일해상에서 쫓고 쫓기던 죽음과 삶의 처절한 대결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풍랑을 선수부분으로 받으면서 마침 제3신성호는 노도같은 파도속을 표류하기 시작한다. 이때가 22일 02시 30분경이었다. “중국의 양자강 유역에서 발달한 998미리바의 저기압이 동쪽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중앙관상대는 6월 22일 10시를 기하여 서해남부 및 남해서부 해상에 폭풍주의보를 예보했습니다. 풍속은 초소 17 내지 18미터로 바람의 방향은 북동풍이오니 이 지역을 항해하는 선박들은 각별한 주의를 바랍니다.”아나운서의 다급한 목소리를 불안하게 들어 넘겼던 어제 저녁의 이상한 예감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

해경 ○○함의 선교에서 당직 근무 중이던 갑판장은 01시 10분경에 신성호의 등불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주기관 정지명령을 내리고 함장에게 보고했다. 탐조등에 포착된 신성호는 선저를 물위에 드러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대원들은 넋을 잃고 말았다.

선원을 구조하라는 함장의 불같은 명령에 따라 탐조등이 엇갈리고 곧 이어 “저기다! 저기!”하는 고함소리가 뒤범벅이 되면서 두 사람의 생존자가 구조되었다.

선장 임씨와 기관장 방씨만이 극적으로 구조되었고, 샅샅이 뒤진 수색작업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7인의 행방은 영영 찾을 길이 없었다.

○○함 함장의 가슴 속에는 쓰리고 아쉬운 감정이 솟는다. 주기관이 정지상태에 있었던 신성호의 예인색에 대한 구조상의 결함이나 선원들의 기능정도를 왜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하지 못했던가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그와 같은 악천후 속에서 불안전한 상태로 예인되면서도 왜 구명동의를 착용하지 않았단 말인가? 실종자 자신들의 과오라고 넘겨 버리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점이 많다.

최고 지휘자로서 양쪽 선박의 선장과 함장은 무엇보다 먼저 구명동의 착용을 명령해야만 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다급한 상황 속에서 당황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선장으로서는 예인색을 어떻게 매어야만이 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정도는 기본적으로 판단하고 있었어야 했다.

더 나아가서 32미리짜리 ‘와이어 로프’ 170미터가 신성호의 선수를 누르고 있었으니, 4~5미터의 거센 파도에 의하여 선수가 물 속으로 잠길 때는 그 무게가 하행력을 가속적으로 더해준다는 사실은 배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제3신성호의 선주 박씨는 물론이요, 행방불명된 7인의 선원 유가족들이 겪게된 불행과 비극적 생활은 당하지 않은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다. 사소한 방심과 작은 것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위험에 대처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이 결여된 곳에는 이렇게도 큰 불행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찮은 부주의로 이렇게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으니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선원의 실수로 선주도 망하고 자기 처자는 가난과 슬픔에 빠지게 되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인가 말이다.

사고 예방에는 지나침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성욱 본지 발행인  hdh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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