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魯肅)의 상상력, 천하삼분지계
노숙(魯肅)의 상상력, 천하삼분지계
  • 현대해양
  • 승인 2015.10.0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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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현하(現下)의 북한 문제를 둘러싼 정세를 삼국지의 형세에 비유하면 과장일까요. 적벽대전 전후의 과정에서 오나라의 노숙의 구상을 보면 형세를 쫓기보다 상황을 만들어 가는 전략가의 진면목을 보는 듯합니다.

삼국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삼분천하입니다. 조조는 시종 우세한 전력을 이용하여 삼분천하를 구조를 깨 통일하려 했고, 촉은 오매불망 삼분의 한 축으로 서고자 했으며, 오의 손권은 유리한 지리적 기반에서 촉을 일면 견제하고 일면 이용하면서 조조에게 대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원대한 구상이 제갈량에게서 나왔다고 합니다만 실은 오나라 노숙(魯肅)의 상상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나관중의 붓 아래 표현된 노숙은 온화하지만 좀 아둔해 보입니다. 제갈량이 짚 배로 10만 개의 화살을 얻으려고 할 때도 그의 계책이 뭔지 몰랐으며 주유가 고육계로 황개를 매질할 때도 제갈량이 알려주어서야 깨닫습니다. 그러나 노숙은 그렇게 아둔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적벽대전에서 오·촉의 연합을 이끌어 낸 사람도 실은 공명보다 노숙이었습니다. 노숙은 적벽대전의 승리한 후 삼분천하, 삼국정립을 실제로 만들어 냈으며, 유비의 힘을 빌려 조조를 견제함으로써 오나라 정권을 탄탄하게 다지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입니다.

원소를 물리치고 화북을 평정한 조조는 208년 가을에 100만 대군을 거느리고 형주를 치려고 남하합니다.
형주는 조조와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형주에 이어 양양을 점령한 조조는 길을 재촉하여 다시 강릉을 차지하고 계속 동쪽으로 진격할 채비를 합니다. 오나라에 비상이 걸리고 손권은 서둘러 대신들과 대책을 상의합니다. 대신과 장수들은 모두 조조를 환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말이 환영이었지 실제로는 조조에 투항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던 노숙에게 손권이 묻습니다. "경은 무슨 할 말이 없는 게요?". 노숙이 대답합니다. "저 노숙은 조조에게 항복할 수 있지만 주군께서는 안 됩니다. 조조는 저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거나 아니면 낮은 관직이라도 줄 것입니다. 잘 하면 고위 관직에도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군께서 조조를 환영한다면 조조는 주군을 어떻게 대접할 것 같습니까?"

손권은 한숨을 내쉬며 말합니다. "그대의 말은 나의 생각과 일치한다." 노숙은 대장군 주유에게도 유비와 손을 잡을 것을 설득하고 스스로 유비에게로 갑니다.

당시 유비는 황망히 남쪽으로 도망쳐 장강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노숙은 당양 장판에서 유비를 만나 동오와 합작하여 함께 조조에 대항하자고 자신의 구상을 설명합니다. 유비는 이 구상을 듣고는 몹시 흥분합니다. 공명의 삼분지계를 펼칠 기회가 온 것입니다. 곧 유비는 공명을 오나라로 보내 구체적인 전략을 협의하게 합니다.

이후 동남풍을 몰아오는 공명의 활약 등은 노숙의 구상에서 부록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연합은 성공하고 적벽에서의 싸움은 승리하며, 유비는 형주를 손에 넣습니다. 삼국에게 형주는 아주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조조가 대군을 동원한 것도 우선 형주가 목표였습니다. 노숙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명에게 선수를 빼앗겨 형주를 놓친 주유는 하늘을 탄식하며 피를 토하고 죽습니다. 공명도 형주는 천하를 차지하는 노른자 같은 땅이라고 유비에게 말합니다.

싸움에서 거의 객에 불과했던 유비가 형주를 차지하자 전투 전반을 책임졌던 손권은 당연히 형주를 돌려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때도 노숙이 등장합니다. <삼국지연의>에 보면 노숙은 제갈량의 손바닥 안에서 대책 없이 놀아납니다. 서천을 뺏으면 형주를 돌려준다는 문서를 써 주자 노숙은 그냥 그 문서를 받아 옵니다.
그러나 노숙의 태도는 소설과 달랐습니다. 형주 문제를 둘러싼 노숙의 생각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것이었습니다. 대신과 장수들은 유비에게 형주를 용납해서는 아니 된다고 반대합니다. 노숙을 잘 아는 주유조차 극구 반대하며 말합니다. "유비는 당대의 영웅이며 관우와 장비 등과 같은 용장들이 보좌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그들에게 땅을 떼어 주다면 이는 용이 구름과 비를 만난 것과 같습니다. 저들은 결코 연못 속에 갇혀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노숙만은 형주를 유비에게 빌려주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조조는 막강한 강적입니다. 형주를 유비에게 빌려주어 민심을 다독거리게 하고, 또 조조에게 또 다른 적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유비를 형주에 두어 조조를 막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유비가 우리를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책입니다."

손권은 노숙의 견해를 받아들입니다. 조조는 손권이 형주를 유비에게 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깜짝 놀라 글을 쓰고 있던 붓을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전략이란 그런 것입니다. 작은 이익을 취하기보다는 큰 손실을 막는 것입니다. 형주를 취하기보다 유비에게 주어서, 조조의 병력은 분산시키고 유비와 연합하여 조조를 방어하는 것입니다. 노숙의 삼분지계에 많은 사람이 반대합니다. 그러나 노숙은 동분서주하여 이를 실현해 냅니다. 주는 것은 당장이고 얻는 것이 나중이라 해서 이를 손해라 생각한다면 이는 전략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중국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라고 대통령이 말합니다. 여기에는 많은 함축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유비’이고 누가 ‘형주’인가요. 중국이 ‘유비’이고 북한은 ‘형주’인가요? 아니면 그 반대인가요? 그리고, ‘노숙’은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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