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얼음을 보관하던 ‘석빙고’
귀한 얼음을 보관하던 ‘석빙고’
  • 장은희 기자
  • 승인 2015.08.0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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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더위가 더해질수록 많은 사람들이 시원한 음식이나 음료를 찾게된다. 달큰하면서 차가운 빙수, 속까지 시원해지는 냉면, 잠을 깨우는 아이스 커피…이 모든 음식과 음료의 공통점은 ‘얼음’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대의 우리는 얼음이 없는 여름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냉동, 냉장 기술이 발전 하기 이전에 얼음은 겨울에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천연 얼음 뿐이어서 여름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공적인 얼음의 첫 탄생은 1876년 독일의 칼 린데가 발명한 암모니아를 냉각제로 사용하는 압축냉장장치와 함께한다. 이후 1913년 미국에서 최초의 가정용 전기 냉장고가 출시됐고, 냉장고가 모든 가정의 필수품이 되면서 얼음 역시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됐다. 현재는 따로 얼음을 얼리는 수고없이 정수기나 냉장고에서 바로 얼음을 얻을 수 있는 제품들도 보급화 됐다.

옛 선조들에게는 지금의 냉장고와 같은 얼음 창고가 있었다. 바로 ‘석빙고’이다. 정확히는 얼음을 얼리는 것이 아니라, 겨울철의 얼음을 잘 보관해 여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이었다.

삼국유사에는 서기 1세기 신라 3대 노례왕때 이미 얼음창고(氷庫)를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는 서기 505년 지증왕 6년 겨울에 해당 관서에 명해 얼음을 저장토록하고 얼음창고를 관리하는 빙고전(氷庫典)이라는 관청에 대사 1명, 사 1명의 관원을 뒀다고 기록돼 있다.

삼국시대 얼음창고의 모습은 ‘일본서기’ 인덕천황 62년조(374년)에 기록된 빙실(氷室) 기록을 통해 옅볼 수 있는데 ‘빙실은 땅을 1장(1丈: 약 3m) 정도 파고, 구덩이 바닥에 이엉이나 억새를 깔고 그 위에 얼음을 두고 얼음 위에도 풀을 덮어놓는다’고 기록한다.

고려시대에는 해마다 6월부터 8월초(입추)까지 벼슬에서 물러난 공신들에게는 3일에 한 번씩, 복야, 상서, 경, 감, 대장군 이상에는 7일에 한 번씩 얼음을 나눠주는 반빙(頒氷) 제도가 시행돼기도 했다.

1396년 조선 한양에는 서빙고와 동빙고가 지어진다. 서빙고가 동빙고보다 13대 이상의 얼음을 저장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동빙고는 음력 3월 1일부터 가을 상강까지 왕실 제사에 필요한 얼음을 공급하고, 서빙고 얼음은 왕실과 고급관리들에서 나눠줬다. 종친들과 대신들, 각 관아에 하사된 빙표(氷票)를 장빙고에 가져가면 해당하는 만큼의 얼음을 받을 수 있었다.

18세기 영·정조 시대 이후에는 물동량의 왕래가 많던 한강변과 전국 각지에 생선 보관용 얼음을 공급하던 개인 빙고가 존재했다. 석빙고는 1898년 폐지될 때까지 조선에 귀중한 얼음을 공급하는 창고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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