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대접받는 도루묵
귀한 대접받는 도루묵
  • 윤성도 자유기고가
  • 승인 2010.02.0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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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도의 바닷가 이야기>

겨울철 동해안 바다별미는 무엇일까. 이맘때쯤이면 명태가 그 시원한 맛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연안 명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들어졌다. 대신 도루묵과 뚝지, 양미리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옛날, 도루묵이나 뚝지는 생선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자원이 크게 감소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이들 생선이 귀한 대접을 받기 시작했고, 도루묵은 ‘금묵’ 으로 불릴 만큼 그 값도 만만찮게 올랐다. 도루묵은 살이 희고 그 맛이 담백하다. 웰빙바람이 불면서 기름기 없고 담백한 도루묵의 맛은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기름기 없고 담백한 도루묵

70년대 초반까지 만해도 연간 도루묵의 생산량이 20여 톤을 넘어섰다. 2천여 톤에 불과한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어획량이 많다보니 값도 매우 쌌다. 이 때 도루묵은 잡어 취급을 하여 잔돈 몇 백 원에도 한 바구니씩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그 이야기는 먼 옛날 얘기가 되고 말았다.

도루묵은 지방에 따라 두루묵이, 활맥이, 환목어, 돌메기 또는 은어라 부르기도 한다. 등 쪽에 황갈색의 불규칙적인 물결무늬가 있고 옆구리와 배 부분은 무늬가 없이 은백색이다. 몸체는 길고 다소 납작하며, 15~25센티미터까지 자란다.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잡히는 도루묵은 수심 100~250미터의 바다 밑 모래나 진흙 속에 주로 산다. 산란기는 10월에서부터 12월쯤인데, 최성기는 12월이다. 이때가 되면 해조류가 무성한 수심 2~10미터의 얕은 연안으로 몰려와 해조류 줄기를 둘러싸듯 알을 낳는다. 바로 도루묵의 어획 시기다.

지난해에는 도루묵이 근래에 보기 드물게 많이 잡혀 모처럼 도루묵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도루묵은 이제 겨울철 동해안 지방의 별미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강원도 거진항에 있는 ‘제비호식당’은 제철 도루묵을 급랭, 보관해 두었다가 3~4월까지 손님들의 구미에 맞는 도루묵 요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제비호식당은 밑반찬 맛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집. 그 맛은 직접 담근 간장, 된장, 고추장에서 나온다고 한다. 35년간 이 식당을 운영해온 윤숙자(65)씨는 식당일 대부분을 며느리(정석자)에게 맡겼지만, 아직도 된장, 간장, 고추장은 직접 담근다고 한다.

한겨울 동해안 별미 도루묵조림

윤 씨가 만드는 도루묵조림에서도 그 손맛이 느껴진다.

도루묵은 조림과 구이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냄비에 무를 깔고 물을 자작하게 한 다음, 도루묵을 가지런히 얹고 간장을 적당히 치고, 마늘, 양파, 대파와 갖은 양념을 넣어 중불로 조려낸다. 이 때 싱거우면 소금으로 간을 한다. 간장이 많이 들어가면 색깔이 탁해져 좋지 않다.

도루묵은 ‘겨드랑이에 넣었다 빼도 먹는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살이 연해 많이 끓이지 않아도 된다. 도루묵은 살 뿐 아니라, 뼈도 연해 고소한 뼈까지 씹어 먹을 수 있다.

도루묵조림은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맛으로 겨울철 술안주와 밥반찬으로 더 이상 이를 것이 없다. 소금을 뿌려 노릇노릇 구워내는 도루묵 구이도 그 맛이 일품이다. 도루묵의 참맛은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알을 씹는 맛에 있다. 알은 씹을수록 고소한 맛을 낸다. 알 속에는 각종 영양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도루묵은 내장을 빼내고 꾸덕꾸덕 말려서 조림을 하거나 강원도 별미 식해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옛날 도루묵이 지천으로 났을 때는 소금에 절이거나 말려 두었다가 일 년 내내 먹었다고 한다. 소금에 절인 도루묵은 물에 담가 소금기를 살짝 빼고 무청이나 김치, 호박을 넣고 자작자작 졸이면 일품 반찬이 된다.

도루묵에 얽힌 이야기

도루묵하면 먼저 떠오르는 말이 ‘말짱 도루묵’이라는, 조금은 점잖지 못한 표현이다. 애써 노력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원점으로 돌아갔을 때, 무심코 내뱉게 되는 이 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옛날, 한 임금님이 난리를 피해 동해안으로 피난을 갔는데, 전쟁 중이라 마땅히 먹을 것이 없어 ‘묵’이라는 생선을 올렸다. 맛이 하도 좋아 고기를 살펴보니 배 쪽에 은빛이 돌아 은어라고 이름을 붙였다. 서울로 돌아간 임금님이 그 맛을 잊지 못해 은어를 구해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구해온 은어를 막상 먹어보니 허기진 시절에 먹던 맛과는 천지차이라, 호통을 치면 도로 물러라 하여 그때부터 도루묵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도루묵은 분명, 옛날 흔했을 때는 맛이 없었다. 그런데, 도루묵의 맛이 달라진 것인지 아니면 간사한 입맛 때문인지 요즈음 도루묵은 옛날의 무덤덤한 그런 맛은 아닌 듯싶다. 귀하고 비싸면 정말 그 맛까지 달라지는 것인지 다시 한 번 꼼꼼히 맛을 보며 생각볼 일이다.

■ 제비호식당 : (033-682-1970)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287-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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